목양칼럼

[조진모] 개혁 정신

조진모 목사 0 2017.11.01 21:52

개혁 정신

혁명과 개혁
오래전 지인과 ‘혁명과 개혁’의 차이점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서로 비슷해 보여도, 근본적으로 다른 두 단어의 의미를 잠시 살펴본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사건들 대부분이 혁명 또는 개혁이었다는 것입니다. 익숙해 있던 기존의 것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원동력이 된 것이지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맞게 되면, 보다 적극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혁명과 개혁은 근본적으로 같습니까? 아닙니다. 혁명은 매우 급격히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을 손꼽으라면 18세기의 프랑스혁명이지요. 정치 권력의 전환점으로 인해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사건입니다.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전통적 사회가 마감되었습니다. 그 대신 자본가 계급이 힘을 가지게 되는 새로운 모습의 사회로 재출발하게 된 것이지요.

개혁은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변화가 아닌,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점차 고쳐가는 형태를 가리킵니다.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모든 수고와 노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개혁을 삶의 질을 높이는 방편이라 이해하여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종교개혁
1517년 10월 30일, 올해가 2017년이니, 정확하게 500년 전 같은 달에 마르틴 루터가 주도한 종교개혁이 독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가 실행하던 면죄부 판매가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이탈되었음을 깨닫고, 토론을 통해 잘못된 점을 짚고 넘어가자는 의미에서 ‘95개 조항 반박문’을 제시하며 개혁의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루터는 독일의 한 마을에서 성경 연구에 몰두한 젊은 신학자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존 교회의 현실에 대한 깊은 번뇌와 고민 끝에 성경에서 말하는 답을 얻게 되자, 자신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개혁에 뛰어든 것입니다.

사실 루터의 개혁은 달걀로 바위를 깨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는 1000년의 중세를 걸쳐오면서 전통과 관습으로 단단히 굳어져 있었습니다. 교회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유럽 사회를 주도하였습니다.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를 포함한 사회의 모든 영역이 교회의 통치를 받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물며 교회 내의 조직을 통치하는 힘을 견제할 수 있는 대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루터의 개혁을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어권에서는 “The Reformation” 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루터를 포함하여 당대와 후대에 활동했던 모든 개혁자의 활동을 총괄적으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의 개혁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에 비교할 때 더 훌륭한 모습으로 만들어보자는 의지를 표출하거나, 다른 종교에서 개혁하는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이 한마음으로 추구하였던 것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점을 개선하자는 ’교회개혁‘이었습니다.

교회개혁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사람마다 생각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도 수차례에 걸쳐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자신들이 지녔던 전통과 기본 사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오랜 시간 회의와 토론을 거듭하면서 자성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높인다고 하여도, 기존의 뼈대 안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만일 루터의 종교개혁을 ‘교회개혁’으로 정의한다면, 다른 개혁 운동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달랐을까요? 다시 말해, 교회의 잘못된 점을 개선하는 개혁하는 도구가 어떤 것이었을까요? 16세기 이후의 종교개혁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최대 관심거리는 이것이 되어야 합니다. “과연 무엇이 교회개혁을 가능하게 하였을까?”

‘교회개혁’은 사람이 세운 전통과 힘을 제거하고, 유일한 진리인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개혁’은 성경에 근거한 ‘신앙개혁’입니다. 루터를 포함한 개혁가들은 한목소리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것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된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지속적인 ‘신앙개혁’의 비밀을 성경을 떠나지 않는 데 있습니다.

개혁 정신
루터가 활동하던 때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5세기라는 긴 간격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혁명과 개혁이 각 사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혁명과 같은 근본을 바꾸는 여러 사건이 생겨난 것입니다. 모든 방면에서 변화가 생겨났지만, 아마도 가장 커다란 변화가 이뤄진 것은 ‘정신적인 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의 정신은 눈에 보이는 것이 영역에 속한 것이지요. 요즘 들어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가 있다면, 그 사람의 정신 상태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해 아래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시대정신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모방하고,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5세기 동안 주님의 교회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다원주의를 걸쳐오면서 수많은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지금도 이런 정신이 혼합되어 신앙의 길에 서 있는 우리를 심히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이 시대의 정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이 시대의 정신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성경의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종교개혁’으로 불리는 ‘신앙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이것은 5세기 동안 교회를 지킨 ‘개혁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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