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한준희] 목사들이 보여 준 방관자 효과

한준희 목사 0 2021.10.19 07:51

 c9597d15ce47380648594aa5f3e5ba2c_1634643948_8754.jpg


 

제목 : 목사들이 보여 준 방관자 효과 

 

며칠 전 펜실바니아 교외 통근 열차 안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열차 안에서 일어난 이 사건에 충격을 준 것은 당시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도 어느 누구도 이를 저지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신문에서도 이 현실을 냉혹하게 지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라고 기사를 게재해 놓았다. 그런데 이 문제가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이곳 뉴욕에서 발생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1964년 우리가 사는 퀸즈 지역에서 한 여성이 새벽 귀가 길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었고 그 당시 피해 여성은 소리를 지르면서 구조요청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파트 여기저기서 이 소리를 듣고 불이 켜졌다는 것을 피해자는 보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창문을 열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없었고 도움을 준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여성은 강간을 당한 후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 심리학에서는 방관자의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가 생겼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이다.

 

지난 주 목요일 뉴욕 교회협의회 총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총회 현장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총회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회원들의 발언권을 30초로 제한하여 발언을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조금만 시간을 지체하면 종을 치고, 마이크를 꺼 버리고 심지어 힘으로 강단에서 발언하는 분을 끌어내리는 모습도 보았다. 물론 총회를 은혜스럽게 진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렇게 진행할 수 있다고 본다. 과격해지는 회원들의 막말을 막는 최후의 수단을 미리 봉쇄한 사회자의 지혜로움이 엿보이는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하는 사회자를 탓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당연히 내가 사회자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또 하나 많은 분들이 후보자의 자격 문제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몇 분이 후보자 자격 여부를 문제 삼아 발언도 했다. 그런데 그 발언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문제 삼지도 않았다. 당연히 법대로 회장 투표를 해야 함에도 한사람의 은혜스러운 발언에 모두 박수로 회장을 추대했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방관자의 효과라는 사회 심리적 현장을 보게 되었다.

분명히 사회자에게 회원의 권리를 30초로 제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해야 한다. 모두가 그렇게 발언해야 옳은 것이다. 또 그런 발언을 하려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도 많았다. 나 역시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누군가 일어나서 발언을 하겠지 라는 안일함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안 해도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이 방관자 효과가 들어 난 것이었다.

 

더욱이 목사이다 보니, 그리고 평신도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있다는 목사들의 권위로 인해 혹시 회원으로써 정당한 발언을 했다가 30초 안에 제대로 발언을 못하면 의미도 없어질 뿐더러 평신도들에게나 평소에 잘 알지도 못하는 목사님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만 나빠질까 하는 불안 때문이라 할까, 모두가 침묵해 버렸다, 결국 모두가 괜히 내가 나서서 한마디 해 본들 무슨 효과가 있겠나 하는 마음이 방관자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답답해하는 회원 몇 사람이 나와 발언을 해도 발언에 대한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저지당하니 발언한 분 입장에서는 당연히 열을 받을 수밖에 없고, 동시에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보니 큰 소리를 치게 되고, 소리친 그 목사는 거룩한 총회를 방해하는 자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더 있겠는가,

 

결국 여러 의혹을 가진 후보가 당선이 되었고 그 의혹들은 은혜로 덮어지는 아름다움(?)이 총회에서 나타나게 된 것 아닌가 보여진다.

 

이렇게 총회가 진행되는 모든 과정들의 책임은 방관하는 회원 목사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었는데도 누구 하나 그 의혹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방관 수수한 것이 회원 목사님들이 아니라고 누가 부인하겠는가?

 

방관자들이란 나서지만 않았을 뿐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총회가 끝나고 나면 왜 너는 발언을 못 했느냐고 서로 추궁한다. 왜 끝까지 따지지 않았냐고 상대방을 지적한다. 이게 방관자들의 모습이다.

 

이제 교협이 거듭나려면 회원들의 권익이 살아나야 한다. 일년에 한번 총회에 나와 발언 한번 못하고 그저 투표나 하고 도시락 하나 들고 떠나야 하는 그런 총회가 아니라 그야말로 축제의 총회, 모두가 박수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그런 총회, 당선된 분들만 꽃다발을 받는 그런 총회가 아니라 회원들 모두 가슴에 꽃을 달고 축하를 받는 그런 총회가 되어지길 오늘도 기도해 본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2:14)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