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꼭 참석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체 모임에 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모임에 열심히 참석했던 때가 있었다. 자주 참석했던 모임에 안 나가기 시작한 지가 15년 정도 되는 것 같다. 내가 참석했던 모임들은 주로 금요일 밤에 있었다. 모임의 일정이 금요 기도회와 겹치는 일이 많아서, 금요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모임에 나가는 것을 그만 두었다.
교회와 연관이 있는 모임들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예배'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행사였다. 이런 행사성 예배에는 '설교'들이 줄을 이었다. 설교라는 이름이 붙은 진짜 설교, 축사라는 이름이 붙은 '설교'들, 권면이라는 이름이 붙은 '설교'들... 몇 편의 '설교'들이 줄을 잇는데, '설교'자들은 하나같이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말 같지 않은 '설교'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불분명한 '설교'들, 내가 왜 그 자리에 앉아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장황설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조차 이해할 수 없는 '설교'들, 제발 좀 빨리 끝내고 밥이나 먹게 해 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설교'들, 그런 '설교'들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아서, 교회와 연관이 있는 모임들의 참석을 피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 혼자만의 기준에 따라 살아갈 수는 없는 곳이라서, 예배 또는 행사 주관자의 초청이나, 초청을 받지 않았어도, 관계성 때문에 참석해야 하는 예배나 행사들이 있었다. 작년 10월부터는 취재를 목적으로 참석한 예배와 행사들이 제법 많았다. 이런 예배나 행사에 참석하면서 느꼈던 점들 중에서, 이런 것들은 꼭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같이 나누려고 한다.
첫째,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각자의 전화기를 확인하기 바란다. 전화기의 벨소리가 나지 않도록, 메시지(카톡, 문자, 메신저 등등) 또는 이메일 도착 신호음이 나지 않도록 셋팅되어 있는지를 꼭 확인하기 바란다. 예배를 드리는 도중에,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전화벨이 울리고 "카톡 카톡" 소리가 들려올 때가 많다. 이런 현상은 목사들만 참석하는 예배나 모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둘째, 축사나 권면을 맡은 사람들은 자기가 주(Main)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축사나 권면을 맡은 사람들은 악세사리와 같다. 악세사리는 보조이다. 악세사리가 너무 크면 어울리지 않는다. 축사나 권면은 짧을수록 좋다. 축사나 권면은 대개 예배나 행사의 마지막 부분에 하게 된다. 참석자들 모두가 "이제 끝났으면" 하고 바랄 때이다. 그런 판국에 일장 연설을 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설교'가 될 수 밖에 없다. 작년 5월이었다. 어느 신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했었다. 축사를 하는 사람(어느 신학교의 학장이었다)의 장황설이 계속되자, 초청자가 그 사람의 뒤에서 바지 자락을 잡아 당겼다. 그만 끝마치라는 신호였다. 그런 정도라면 축사가 아니라 공해이다.
셋째,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개 목사님 나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해 주시겠습니다."라는 소개를 받고 나온 성경 봉독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해 드리겠습니다."라고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할 이유가 있을가? "아무개 목사님께서 예배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겠습니다."라는 소개를 받고 나온 기도자가 "기도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가?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쓸 데 없는 소리다.
넷째, 목적에 합당한 기도를 하자. 봉헌 기도를 맡은 사람은 헌금에 관한 기도만 하고, 식사 기도를 맡은 사람은 식사에 관한 기도만 하는 것이 좋다. 봉헌 기도를 하는 사람이 단체사(史)를 개괄하고, 전 세계의 선교지를 순방한다. 식사 기도를 하는 사람이 인물사(史)를 강의하고 사랑가(歌)를 부른다. 기도 경연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아주 낮은 점수를 줄 것이다.
위에서 같이 나눈 이야기들은 고치기에 어려운 것도, 지키기에 어려운 것도 아니다. 고칠 마음만 있으면, 지킬 마음만 있으면, 고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 같이 고쳐보자!
우리, 같이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