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황현조 목사가 집회 첫날, 첫 집회에서 전한 말씀의 요지이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신 1:30-33
설교중 찬송 384,새585 내주는 강한 성이요 /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전도서 7:14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A man cannot discover anything about future.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신비라고 하잖나요? 올 한해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일 아침 신문, TV 뉴스 헤드라인이 무엇이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변화무쌍한 인생이라 한다.
미국 신문들 2,500개 신문사에서 매일 그 신문지면에 Horoscope Column을 싣는다. Horoscope 라는 것은 점성술을 말한다.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인간의 운수, 행복과 불행을 알아서 독자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길래 미국의 2,500개 신문에서 매일 이 점성술 칼럼을 싣고 있겠나? 비단 그 뿐인가? 손금 보는 가게도 거리에 많다. 한국에는 이보다 더 한 실정이다.
사람이 미래를 모르면 이와같이 불안하기 마련이다. 변화무쌍한 인생에서 모든 사람들은 불안을 안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생은 불안의 존재라고 정의했다.
인생은 왜 불안한가?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들, 그중에 대표적인 사르트르의 설명에 의하면 인생은 아무런 목적과 방향이 없이, 다시 말해서 인생은 그 본질이 규정되지 않은채 그냥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을 했다. 성경과 전혀 반대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에게 본질을 주시고 인생이 살아야 할 목적과 방향을 주셨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믿으니까 이렇게 성경과 전혀 반대되는 엉터리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사르트르는 ‘하나님이 죽었다’라고 주장한 무신론적 염세주의 철학자 니체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하나님이 죽었다.(니체의 말) 했지만, 하나님은 ‘니체는 죽었다’ (하나님이 말씀) 니체는 절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불행하게 죽었다.
그들의 제일 큰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여러분, 기독교 성경을 공격하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공격하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비방하고 안믿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들은 이 광대한 우주에 비해 자기 좁살만한 이성과 생각을 자기의 하나님처럼 믿고 하나님이 없다하고 성경의 이적을 안믿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안믿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말하는 이성주의 합리주의다. 자기의 이성의 칼을 휘두르면서 성경을 도마위에 올려 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난도질 하는 것이다. 자기 이성의 절대화 (영화: 태평양 어부, 수박에 붙은 개미)가 문제다.
기독교 신학은 과학을 배척하지 않는다. 과학의 교만과 과학의 세속화, 과학의 절대화를 배척하는 것이다. 진화론은 과학이 아닌 허구이다. (과학의 필수 요소는- 관찰/반복 Observation, Repetition 인데 진화론은 이 두가지가 결여 되어 있으므로 과학이라 할 수 없다). 진화론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 싫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17세기 합리주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선언. 아주 그럴듯 하지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셔서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니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 인간이 창조되어 생겨나지도 않았는데 생각은 무슨 생각을 한단 말인가?
성 어거스틴은 인간은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고 했다. 무신론/합리주의/이성주의 모순과 잘못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 좁살만한 생각과 이성을 최고로 여기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인생은 허무하고 불안한 존재라고 말하고, 인간이 자기 힘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다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도 기독교 신앙인들은 인간이 불안해 진 근본적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난 불순종의 죄악때문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곧 성경의 가르침이다.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킬케골도 성경의 교훈을 받아 들였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절대자 하나님을 만나야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와같이 이 죄악세상을 불안속에 살아가며 장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반가운 굿 뉴스가 있다. 우리가 믿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장래와 미래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내일과 장래를 모르고 불안속에 시작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걸어가는 장래를 이미 알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에서 모세는 말하기를 ‘너희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Your God is going before you! 라고 했던 것이다.
신약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선포하신 말씀도 요한복음 10:10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와같이 선한목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요 14:6에서 선포하신 것이다. 선한 목자 예수님을 따라가면 불안이 없고 풍성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오늘 본문 신명기 1장에 보면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우리 앞길을 선하게 인도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3가지를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1. 1. 너희를 위해 싸워 주시겠다 (30절을 읽어보자) I will fight for you!
어떻게 싸워 주시겠다고 하셨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면서 온갖 고생과 핍박을 받을 때에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악한 바로 왕과 싸워 애굽땅에 10대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 앞구절 신 1:2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보고, 너희는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 애굽의 바로 왕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마귀를 예표, 상징한다. 악한 마귀는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며 성도들을 괴롭히고 잡아 먹으려고 하고 있다. 마귀의 최대의 목표는 성도를 넘어지게 하고 해꼬지 하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성도가 가는 길을 막고, 웅덩이를 파고, 장애물을 설치하여 실족하여 죽게 한다. 자신이나 가족에게 재앙을 일으키며, 질병에 걸리게 하고, 사고를 당하여 상처와 죽음을 당하도록 한다. 여기에다 마귀의 더 큰 목표는 성도의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교회생활을 잘못하도록 온갖 방해를 한다. 예수 믿고 천국가지 못하도록 우는 사자와 같이 으르렁대면서 성도를 잡아 먹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무서운 원수 마귀를 대적하여싸워 주시도록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찬송가 384 (새 585) 함께 부릅시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신약 히브리서 2:14-15에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없이하시며 일생동안 무서운 죽음에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은 원수 마귀 불신 세력과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힐 때에 자기 백성들을 위해 싸워 주시는 사건이 많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애굽의 바로왕과 싸워 주신 하나님께서, 출 17장에서는 아말렉과 싸워 주셨다. 아말렉 침략군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할 때, 모세는 산에서 손들고 기도(아론과 훌이 보좌)—17:15에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격파하니라. 그래서 15절: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내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더라”
여호와 닛시’ Jehovah Nisshi = The Lord is my victory, my Banner! 라는 뜻이다.
그래서 시편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신약 로마서 8:31 바울 사도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위를 대적 하리요?” If God is for us, who can be against us?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세상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선언하셨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확실히 당부하셨다. 요 16:33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닫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 2. 너희를 안아 주시겠다 (31절 같이 읽자) 부모가 자식을 품에 안음 같이 너희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아 주시겠다. As a father carries his son, I will carry you!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복지를 향해 진군해 가는 40년동안 광야에서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친히 가슴에 안고 등에 업어 주셨다.
성경은=구원사 Salvation History/Redemptive History이다. 여기 광야== 우리의 인생을 예표, 상징. 애굽=사탄마귀의 왕국/ 홍해=구원받아 세례 받음 /광야=우리가 천국 가기전 장막치고 잠시 머무는 이 세상의 삶, 교회생활을 예표/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 천국을 예표. 미리 그림자 (Foreshadowing) 처럼 예표해 주신다.
그러므로 원래 우리가 구원 받기전 애굽과 같은 사탄의 속박에 매여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홍해를 건늠(세례) 고전 10:1-2 “형제들아 너희가 다 알기를 원한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서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바울 사도는 여기에서 구약 출애굽 홍해 광야 생활, 가나안 복지 입성을 우리가 구원의 여정인 것으로 구원사적으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이 어려운 광야생활은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잠시 장막치고 살다가 떠나는 것을 예표적으로 상징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적들의 공격을 받고 광야 사막에서 때로는 전갈, 뱀, 독충들에게 해를 받고, 추위와 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한 것은 바로 우리가 천국으로 향해 걸어가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당하는 마귀의 시험과 어려움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을 고해라고 하지 않나요?
Simon n Garfunkel “Bridge over troubled water” 1970년 당시 세계적으로 최고 히트곡 미국, 유럽, 아시아.. 빌보드 차트 1위를 장기간 –원래 이곡은 당시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복음송 Gospel Song에서 영감을 받아 작사한 곡 Swan Silverstone 복음성가 그룹의 Claude Jeter의 I will be your bridge over deep water. 예수님=다리, 험한세상 건너주는 다리 가사 첫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와 흡사하다.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ll dry them all
(all)
I'm on your side, oh, when times get rough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주님은 우리에게 험한 세상 건너 주는
다리와 같으신 분이다.
오늘 성경본문 신 1:31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안아주신다는 말씀에 은혜받고 쓴 유명한 시가 하나 있다. 모래위에 새겨진 발자국 (Footprints on the Sand) 이란 시는 Mary Stevenson 여류시인이 쓴 시로서 너무나 은혜롭고 좋은 시인지라 벽에 걸수 있도록 사진 액자로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 거실이나 서재의 벽에 걸어 놓고, 또 기도 카드로 나와서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꺼내 읽고 힘을 얻기도 한다. (예화: 시에 대한 설명)
One night I dreamed a dream.
As I was walking along the beach with my Lord.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혼자 걷도록 버려 주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품에 안아서 걸어 주신다. 우리가 역경과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모래 위에 한 발자국만 보일 때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발자국이 아니고 여러분을 안고 걸으시는 하나님의 발자국임을 믿으시라.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그래도 안믿는 사람들이 있다. 3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한탄하신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한심한 인생들이지..
I carried you! 사람이 자식을 안음같이 하나님은 너희 행로중에 너희를 안으사 광야길을 통과하게 하시는 것을 꼭꼭 믿으시기 바란다.
3.하나님은 너희를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시고 광야 길을 잘 가도록 지시해 주시겠다. 33절 읽자. (I will show you the way you should go)
사막 광야 길을 갈 때 제일 힘든 것이 낮에는 뜨거운 땡볕 때문에 더위가 극심하여 행군하지 못하는 것이요, 밤에는 일교차가 심해서 너무 기온이 추워서 벌벌 떨게 되고 잠을 편안하게 자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햇볕을 가려서 시원하게 해서 행군에 지장이 없게 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난로 히터처럼 따뜻하게 하셔서 사막의 추위를 이기게 하시고 장막치기에 좋은 곳도 미리 찾으셔서 그곳으로 인도해 주셨다..
시 121:5-8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하시며 또 내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히 지키시리로다.
이 말씀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찬송이 있지요.
찬송: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 이 찬송을 같이 부릅시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지켜주신다.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광야 길을 걸어갈때 어느 길을 걸어가야 안전한 길인지를 우리에게 지시해 주신다.
이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였다. 이 한해를 걸어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행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신줄 믿으라. 그러므로 모든 불안과 염려를 다 주께 맡겨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원수 대적 마귀와 싸워 주신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험한 인생을 길을 걸어 갈 때 품속에 안아 주신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주시고 안전하게 걸어가야 할 길을 지시해 주신다. 그 좋으신 하나님, 우리 앞서 행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붙잡고 새해를 살아 가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한다. 할렐루야!
통성기도 합시다.
김동욱 기자ⓒ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