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뉴욕지구한인원로목사회(회장 정익수 목사)는 9월 월례 예배를 20일(목) 오전 11시에 든든한교회(담임 남일현 목사)에서 드렸다.
20여 명이 참석하여 드린 예배는 임인환 목사가 인도했다. 이인식 목사가 기도를, 사모들이 특송을, 회장 정익수 목사가 광고를, 김수천 목사가 축도를 담당했다.
설교는 남일현 목사가 했다. 남 목사는 누가복음 2장 25-38절을 본문으로 “민감함과 민첩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남 목사는 “오늘 설교 제목은 어르신들께 어울리는 제목은 아닙니다. 어르신들께 민첩함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설교를 하는 제가 먼저 어르신들께 민감하고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한 것에 사과를 드립니다. 진작 깨닫고 민첩하게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죄송하죠. 앞으로는 민첩하게 행동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했다. 원로목사회원들을 좀 더 일찍 초대하여 같이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에 용서를 구했다.
“본문은 주로 성탄절 즈음에 많이 살펴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아기 예수를 만나는 복을 누렸는데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아기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봤느냐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온갖 기적을 베푸신 이후에도,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많은 사람들과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라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은 그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기일 뿐이었습니다. 눅2:24절을 보면 마리아의 정결예식에 사용된 예물이 나오는데 원래 해산한 여인이 정결 예식 때 드리는 예물은 번제로 어린 양 한 마리와 속죄제로 비둘기 한 마리였습니다. 다만 매우 가난하여 어린 양을 번제로 바칠 수 없는 경우에는 비둘기로 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지 40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볼 때 그 아기가 메시아인 줄 간파할 정도면 시므온과 안나가 영적으로 엄청나게 민감한 사람들이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가난한 집 아기이니 별 볼일 없는 아기였지만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그 아기는 그들이 평생 기다렸던 메시아였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민감하면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고, 남들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민감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민첩하기도 했습니다. 그 아기가 메시아인 것을 깨닫자 28절.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시므온은 일단 민첩하게 아기를 안았고 시므온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지금 이 때가 아니면 평생 메시아를 안아볼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민첩하게 행동한 겁니다. 영적으로 민감하니 영적인 민첩성도 저절로 따라오게 된 것이죠.
안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8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안나도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했습니다. 아기 예수를 보자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즉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보자마자 하나님께 감사드렸는데 죽기 전에 메시아를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말했다고 나옵니다. 38절에 나오는 ‘말하니라’는 표현은 미완료 시제입니다. 이것은 안나가 예수님에 대해서 한 번 말하고 그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증거했음을 알려줍니다. 안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 증거했을 겁니다. 영적으로 민감했던 안나도 영적으로 민첩하게 행동한 겁니다.
제가 오늘 어르신들께 말씀드리려는 것도 영적인 민감함과 민첩함입니다. 나이가 들면 육신적인 민감함과 민첩함은 조금 떨어집니다. 마음은 젊은 사람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고 민첩하게 행동하고 싶은데 몸은 민첩성이 떨어집니다.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영적으로는 계속해서 민감하고 민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할 수 있는지 본문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시므온과 안나가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25-27절까지 시므온을 소개하며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빠지지 않고 썼던 단어가 성령입니다. 25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성령이 그 위에 계셨던 사람인데 이것은 시므온이 성령의 임재 속에서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26절을 보면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사람이고, 그래서 27절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시므온이 성령의 통제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시므온은 평생 메시아를 기다렸던 사람이었는데 만약 그가 본문 당시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그 시간에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몸은 성전으로 들어갔더라도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면 아기 예수를 못 알아 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 충만에 관하여는 언제나 현재형이 되어야 합니다. 직분은 은퇴 연령이 있지만 신앙생활에는 은퇴 연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도 지도자로서는 은퇴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는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계속해서 영적으로 민감했겠죠.
영적인 민감함은 직분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함에 따라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한 삶을 살고 싶다면 무엇보다 성령의 통제를 받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 삶을 사십시오. 성령 충만으로 영적인 민감함을 누리길 바랍니다.
2. 시므온과 안나가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하게 살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경건한 삶 때문입니다. 26절을 근거로 보면 시므온도 고령이었고, 또한 안나 선지자는 매우 고령이었습니다. 그런데 25절을 보면 시므온이 경건했다고 나옵니다. 어떤 모습이 경건한 모습입니까? 37절.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7절처럼 기도하고 성전을 지키고 금식하는 모습도 경건의 모습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 중에는 나이에 따라 체력 때문에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경건생활은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경건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나이가 들면 몸으로 하는 섬김은 하기 힘들겠지만 기도로 섬길 수 있지 않습니까?
원로목사님들이 뉴욕을 위해서,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서,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민감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어서는 부족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영적으로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래서 경건생활에 힘쓰면 나이와 상관없이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보물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경건생활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경건에 힘쓰자는 겁니다. 우리가 경건생활을 열심히 해서 영적인 민감함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3. 시므온과 안나가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하게 살 수 있었던 세 번째 이유는 그들이 성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이 있었기에 성전에 들어간 것이지만 이것은 그가 평소에도 성전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7절처럼 안나는 아예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성전,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로서의 성전을 사랑했던 것이죠.
물론 하나님은 성전에서만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만나주실 수 있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입니다. 물리적으로만 하나님의 전에 잠시 들르는 사람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의 전에 항상 머무는 사람이 나이에 상관없이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하고, 경건에 힘써야 하고, 성전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함으로 시므온과 안나가 누렸던 복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복은 예수님을 만난 겁니다. 그날 예수님을 본 사람은 그들 외에도 많았겠지만 그분이 메시아인줄 깨닫고 메시아로 만난 사람은 오직 그들뿐입니다. 영안이 열린 사람에게만 허락된 복이었습니다.
또한 시므온와 안나의 삶이 성경에 좋게 기록된 것도 영광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들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어도 그들의 노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영적인 민감함과 민첩함을 놓치지 않았기에 이러한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자리에 있는 어르신들에게 몸이 민첩할 것을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민감하고 민첩한 어르신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생 동안 영적인 민감함과 민첩함으로 사명에 충실하길 바랍니다. 뉴욕과 후배 목회자들, 교회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로 섬기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에게 영적인 어른이었다고 인정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회장 정익수 목사는 광고 시간에 든든한교회의 아픈 과거와 자신이 든든한교회에 쏟았던 기도와 관심을 상세히 설명했다.
든든한교회는 월례 예배 참석자들에게 정성이 듬뿍 담긴 삼계탕을 중식으로 대접했다.
든든한교회의 원래 이름은 서울장로교회(개척 조정칠 목사)였다. 조정칠 목사가 한국에 있는 신용산교회로 부임해 감에 따라 박순오 목사가 2대 담임으로 부임했었다. 박순오 목사의 뒤를 이어 김상근 목사가 담임으로 부임해 왔고, 그 후에 오랜 기간 아픔을 겪었었다. 2년 여 전에 남일현 목사가 부임했고, 교회는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든든한교회는 141-33 33rd Ave., Flushing, NY 11354 에 위치하고 있다. 문의 전화 번호는 808-348-4655(남일현 목사)이다.
김동욱 기자ⓒ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