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의 정체성과 교회 연합 운동의 방향
정준모(콜로라도 말씀제일 교회 Ph.D & D.Miss)
1. 들어가는 말
2020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세속적 정치적 상황이 기독교 교계의 상황으로 선거 열풍이 거세게 내몰아치고 있다.
진보, 보수 진영의 신학적, 신앙적 문제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판단이 없이, 무조건 상대측을 정치적 흑백논리로 몰아쳐 난장판, 진흙탕이 되어버리고 있는 현실이다. 온갖 쇼설 네트 웤을 총 동원하여 흑색 선전을 하고 있다.
상황적 현상에서 이슈를 찾고 세속 정치의 잣대로 상대를 비방하지 말고, 진정성있는 성경적 가르침과 역사적 신학적 맥락에서 원리을 찾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난 제 10차 WCC 총회가 대한민국 부산 개최로 선정된 이후 한국 교계의 신학적 뜨거운 감자로 이슈가 된 것은 바로 WCC에 대한 상반된 입장들 때문에 무조건 반대 아닌 반대, 비판 아닌 비판의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다.
합동 교단 94회 울산 총회에서는 WCC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고, 이에 따른 10차 WCC 총회 대책위원회 구성, 세계개혁교회협의회 추진위원회 구성, 한기총 후보의 WCC에 대한 상반된 입장으로 파생된 갈등, 고신 교단을 비롯한 보수교회의 반대성명서 등 교파 간 큰 회오리바람이 일어 났었다.
지난 제 10차 WCC 총회를 앞두고 1959년에 있었던 보수, 진보 양측의 편가르기 악몽이 염려하는 대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보, 보수 교단의 임원 상견례 혹은 예배 정도의 모임으로 끝나고 후속적 조치가 없다. 교회 연합 운동 자체가 악으로 보는 극단주의가 있기 때문이고, 교회 연합의 역사적 신학적 평가가 잘 이루어 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소한 신학적, 교회적, 선교적 대립 양상을 자숙하며 성숙된 신학적 토론과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들이 사전에 마련되어야 하겠다. 이런 목적과 입장에서 본고는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본 WCC 태동 이래 현재까지 역사적 발전과정과 그 신학적 입장, WCC의 종교 다원주의 입장과 그에 대한 개혁신학의 비판,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본 교회 연합 운동 그리고 한국교회의 교회 연합 운동의 현주소와 원리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2. WCC의 역사적 개요
WCC(세계교회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제 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8년 8월 23일부터 9월 24일까지 화란 암스텔담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와 동구의 희랍 정교회를 제외한 대다수의 서구 프로테스탄 교회들이 모여 초교파, 범교회적 대표회의로 발족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 헌장에 WCC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란 성경을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친교(Felloship)이다. 그러므로 세계교회협의회는 한분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한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되어 있다.
WCC는 1948년 암스테르담 1차 총회 이후 지금까지 매 7-8년마다 총회가 개최된다. 현재 유럽, 남북미,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태평양 지역 110여 개국 정교회,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개혁교회, 오순절교회 등 349개 교회·교파·교단들이 가입해 있으며 5억 8천만 기독교인들의 대표적인 연합기관이 되었다.
WCC 운동을 역대총회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 1차 총회-“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란 주제로 1948년 네델란드 암스텔담(Amsterdam)에서 147개 회원 교단에서 351명이 참석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의 휴유증으로 무질서한 인간 세계를 하나님의 계획적인 다스림이 필요하다고 전제하 “국제난민국제기구”를 발족하였다.
(2) 제 2차 총회-“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희망(Christ the Hope of the World)”이란 주제로 1954년 미국 일리노이 주 에반스톤(Evanston)에서 161개 회원 교단에서 502명이 참석하였다. 세계 평화 주창이 주된 내용이었고 공산주의에 대한 관심을 극대히 표명하였다.
(3) 제 3차 총회-"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Jesus Christ -the Light of the World)"이란 주제로 1961년 인도 뉴델리(New Delhi)에서 198개 회원 교단에서 582명이 참석하였다. 그리스도의 보편성을 주장하면서 종교 혼합주의, 세속주의, 용공주의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4) 제 4차 총회-“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니(Behold, I make all things New)”라는 주제로 1968년 스웨덴 웁살라(Uppsala) 235개 회원 교단에서 904명이 참석하였다. ‘인종차별’, ‘해방’, ‘경제 및 사회 정의’으로 강조하는 ‘인간화’, ‘새 인간성’ 실현을 촉구하였다.
(5) 제 5차 총회-“자유케 하시며 하나되게 하시는 그리스도(Jesus Christ Frees and Unites)”라는 주제로 1975년 케냐 나이로비(Nairobi)에서 286개 회원 교단에서 747명이 참석하였다. 사회 및 정치적 해방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인권, 성, 인종차별 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또한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고 대화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WCC 총회 대변인 ‘로버드 브라운’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슬렘, 힌두교, 불교, 공산주의자들의 말도 들을 수 있는 때가 왔다”라고 하였다.
(6) 제 6차 총회-"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Jesus Christ-the Life of the World)“라는 주제로 1983년 캐나다 뱅쿠버(Vancouver)에서 300여 교단에서 930명이 참석하였다. 또한 이방종교 대표자들, 천주교 사제들과 바티칸 기자단 등 820면과 소련 대표 61명과 다수의 동구 공산권 대표들 등이 참석하였다. 제 1세계인 서방과 제 3세계인 후진국가 간의 평화와 정의의 갈등 문제 해결이 핵심의제가 되었다. 나이로비 총회 때보다 더 혁명적이고 타종교에 대한 이해가 급진적 성향을 띄었다.
(7) 제 7차 총회-“오소서, 성령이여-만물을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Renew the Whole Creation)”라는 주제로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316개 회원 947명이 참석하였다. 구 소련 및 동구 공산권 붕괴로 탈 이데올로기 상황에서 ‘화해’의 색채가 강하게 나타났으나 반자본주의, 반서방주의를 강하게 표출시켰다.
또한 일치의 영, 타종교와의 화해와 맑시즘 신봉자와 만남을 진지하게 다루었다. 특별히, 이 때 논의 된 성령은 삼위일체의 성령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 때 주장된 성령은 압제받고 고통받는 모든 ‘민중들의 영’을 대변하는 ‘영’이었다. 이 때, 한국의 정현경은 흑인 영성의 영, 무당들의 영, 토착민의 영, 순교당한 영들을 불러가며 ‘초혼제’를 드려 억울하게 죽은 영들을 달랬다.
(8) 제 8차 총회-“하나님께로 돌아오라-소망중에 기뻐하라(Turn to God-Rejoice in Hope)"라는 주제로 1998년 짐바브웨(구, 로디지아) 하라레(Harare)에서 340개 회원 교단에서 960명과 5천여명의 옵저버가 참석하였다.
2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체성과 교회 일치에 대한 논의가 주요의제였다. 그러나 상호간의 신학사상과 교리의 차이로 긴장과 갈등을 보였고 동성애 및 일부다처주의 허용하는 등 성 문제를 두고 천태만상의 논쟁이 있었다.
(9) 제 9차 총회-”은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세계 변혁(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이란 주제로 2006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348개 교단에서 4000여명이 모였다. ‘기독교 연합 일치’, ‘예전 의식의 일치’, ‘사회 경제 정의’, ‘종교다원화’, ‘청소년 폭력’ 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10) 제 10차 총회-2013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전세계 140개국에서 총대 830여명을 비롯, 단체 대표와 참관인 등 5000여명이 참석한 WCC 총회에서는 ‘한반도 평화선언’,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성명’ 등 다양한 국제적 이슈에 대한 입장이 발표됐다. 또 일치, 선교, 정의, 평화를 주제로 한 4대 기본 문서를 공표했다. WCC는 이들 문서를 통해 전세계의 정치, 종교, 사회, 경제적 갈등과 분쟁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행동지침을 표명했으며, 세련되고 지적인 회의문화와 내용을 통해 국제적 회의의 모델을 보여줬다. 그러나 보수교단들에서 염려하던 소위 종교다원주의, 용공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성경의 권위에 대해 모호하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3. WCC 종교다원주의와 개혁신학
1) WCC 종교다원주의 역사적 발전
(1) 1948년의 제 1차 암스텔담 WCC 총회: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연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교회간의 협력을 통하여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긍정적 면이 있었으나 명확한 신학적 교리적 진술이 선행되지 못하여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취할 여지를 남겨 놓게 되었다.
(2) 1961년 제 3차 인도 뉴델리 WCC 총회: 타종교를 다른 신앙체(Other Faiths)로 보고 그들과 대화(Dialogue)를 통하여 효과적인 복음 전달 방법을 소개하였다. 또한 이때, IMC를 WCC에 통합하여 세계선교와 전도분과 위원회를 창설하였다. 그 결과 선교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무시하게 됨으로 선교 사역의 위축을 가져오게 되었다.
(3) 1968년에 WCC가 발간책:《타자를 위한 교회와 세상》책자에서 “그리스도의 현존”(Christian Presence) 개념을 도입하여 세상 속에서 살롬을 구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세속기관과 타종교인들의 삶속에서 그리스도가 우주적 주님(Cosmic Lord)로 현존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분의 뜻에 교회는 세속기관과 타종교인들과 함께 순종해야 한다고 하였다.
(4) 1968년 제 4차 스웨덴 웁살라 WCC 총회: 성령의 일반적 역사와 구속적 사역을 구분하지 않고 일원화 시키고 기독론은 수직적 차원에서 신학적이고 신앙고백적 기독론 즉 십자가과 부활의 신학을 배제시키고 수평적이고 인본주의적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인간성의 모델로 제시하였다.
(5) 1973년 방콕 세계선교와 전도 분과 대회: 웁살라에서 제기된 WCC의 선교 신학 정립을 위한 모임이었다. 이 때, 구원을 죄와 사망과 사탄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구원의 총체성을 강조하면서 개인과 사회 구조속의 압박에서 총체적으로 해방되어야 된다고 보았다. 이는 남미의 해방신학을 강하게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또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로서 타종교간인에게 일방적 선포와 충돌이 아닌 대화를 강조하였다. 이처럼 방콕대회는 선교개념을 하나님의 구원계시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세속기관과 타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종교적 혼합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로 향하게 되었다.
(6) 1975년 제 5차 케냐 나이로비 WCC 총회: 복음의 총체성을 논하면서 전인적 인간, 온 세상, 전체 교회를 논하였다. 개종없는 선교는 무의미하고 혼합주의는 배격한다는 등 복음적인 진술이 선명하고 진술되었다. 그러나 혼합주의를 배격한다고 하면서 타종교인의 영성을 인정하고 그 영성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특히, WCC 중앙위원회 의장인 엠 엠 토마스((M. M. Thomas)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혼합주의(Christ-centered Syncretism)을 주장하였고, 모티머 아리아스(Mortimer Arias)는 불신자속에 숨어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우주적 그리스도의 개념을 주장하면서 종교 혼합주의 내지 종교 다원주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WCC 총회 대변인 ‘로버드 브라운’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슬렘, 힌두교, 불교, 공산주의자들의 말도 들을 수 있는 때가 왔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개혁주의 및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제 5차 WCC 총회는 인간 중심적, 삶의 수평적 차원만 강조하는 신학적 노선을 따르므로 WCC의 신앙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하였다.
(6) 1980년 멜베른 세계선교와 전도분과 대회: 하나님은 교회로 하여금 투쟁하 인간들 가운데 살게 하신다고 보았고 종교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권리 그리고 사회정의를 갱신시키고 평화와 해방을 가져온다면 하나님이 이미 그곳에 일하고 계신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말씀을 통한 전도보다 선행를 통한 전도를 강조하고 인간 불행의 근본 문제인 죄에 대한 복음적 치유와 회복보다 현세의 삶의 구조 개혁과 제도적 악을 타파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7) 1983년 제 6차 캐나다 뱅쿠버 WCC 총회에서는 중요한 신학입장이 담긴 두 종류의 문제 즉, “세례, 성만찬, 직제(BEM)”와 “선교와 전도:에큐메닉 입장(Mission and Evangelism: An Ecumenical Affirmation)” 등이 발표되었다.
이 문서는 수직적 신앙고백보다 수평적 친교교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매우 짙게 드러났다. 본 총회에서는 이방종교 대표자들을 초청하였고 나이로비 총회 때보다 더 혁명적이고 타종교에 대한 이해가 급진적 성향을 띄었다.
(8) 1991년 제 7차 호주 캔버라 WCC총회: 일치의 영, 타종교와의 화해와 맑시즘 신봉자와 만남을 진지하게 다루었다. 특히, 성령은 삼위일체의 성령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 때 주장된 성령은 압제받고 고통받는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