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에 따라 부회장이었던 원도연 목사를 회장으로, 총무였던 송호민 목사를 부회장으로 추대했다. 회장단은 김종국 목사를 총무로, 정광희 목사를 회계로 추천하여 총회의 승인을 받았다. [편집자 주 : RCA 동남부 한인교회협의회는 최근에 가입한 회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회원들이 이미 회장을 역임했다. 모든 회원들이 협의회의 운영에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에 따라 고참 회원들도 순서에 따라 임원을 맡고 있다. 지난 회기의 회계는 남봉우 목사였다]
회의는 회장 황성현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특별한 잇슈가 없었기 때문에 회의는 간단히 끝났다.
회의에 앞서 드린 예배는 부회장 원도연 목사가 인도했다.
남봉우 목사가 기도를, 인도자가 성경 봉독을, 회장 황성현 목사가 설교를, 총무 송호민 목사가 광고를, 정광희 목사가 축도를 담당했다.
황성현 목사는 야고보서 3장 13-18절을 본문으로 "위로부터 난 지혜"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아래는 황성현 목사가 전한 말씀이다.
세계적인 종교들이 생겨난 지역은 두 곳입니다. 인도와 팔레스타인인데, 인도에서 힌두교와 불교가 생겨났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교로 비롯해서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세 종교의 모두의 성지입니다. 그렇다보니 서로 예루살렘을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인도에서 생겨난 종교에 비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겨난 종교들이 분쟁이 심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겨난 종교들은 타종교와의 분쟁도 심할 뿐 아니라 자기네 종교의 내부적 종파 분쟁도 심한 편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와 이슬람 간에도 분쟁이 있는데, 기독교 안의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 각 교파별, 각 교회에서 싸움이 많았습니다. 이슬람도 수니파 시아파가 나누어져서 국가간에 전쟁을 일으킬 만큼 1500년 이상 계속해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서 생겨난 종교들은 갈등과 다툼이 많다는 걸 부인할 수 가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생겨난 종교들의 이러한 특징이 왜 그런가? 잘 설명해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선생님 집에 어떤 친척이 찾아왔습니다. 오면서 빈손으로 오지 않고 오리한 마리를 선물로 들고왔습니다. 그리고서 그 집에서 몇일을 묵게 되었는데, 이 선생님이 오리를 자기 혼자 먹을 수 없어서 잘 요리해서 친척하고 나눠먹었습니다.
그 친척이 가고 나서 얼마 있다가 친척의 친구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여기 우리 친구가 오리를 갖다 주었다고 들었는데, 그 오리를 좀 먹을 수 있겠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오리를 요리해서 내줬어요. 그리고서 몇일을 묵고 갔습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또 어떤 손님이 찾아왔어요. “내가 그 친척의 친구의 친구입니다. 여기오면 오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래서 또 오리를 내 놓주고 몇일 민폐를 끼치다가 돌아갔습니다.
몇일 있다가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저는 그 친척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인데, 여기 오면 오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이 선생님이 하도 기가막히니까 어떻게 했냐면, 그냥 맹물을 끓여다 주었어요. 그 사람이 놀래가지고 “아니 이게 뭡니까?” 그랬더니 “일전에 우리 친척이 갖다 준 오리를 끓인 그 국물의 국물의 국물이 국물입니다. 드시고 가시죠.”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어떤 의미냐면, 오리를 직접 먹던가 한번 정도 삶아 먹어야 오리 요리인데, 그걸 국물에 국물에 국물에 국물이라면 그게 무슨 오리 요리냐는 것입니다. 그건 맹물을 끓인 물이나 같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신의 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야 하지, 그 사이에 사람의 개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신앙의 본질이 희석되거나 왜곡된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팔레스틴에서 생겨난 종교들을 가만히 보면 그들이 믿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의 개입이 많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유대교가 율법이 어려우니까 랍비가 가르칩니다. 그래서 ‘율법이 이런거다’라는 율법의 의미를 가르치는 율법의 해석서가 나옵니다. 미쉬나 같은 랍비의 율법 해석서가 그렇죠. 그런데 그 해석서의 해석서도 또 나옵니다. 그리고 해석서의 해석서를 또 해석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여기에 비해서 인도에서 생겨난 종교들은 명상을 많이 가르칩니다. “네가 깨달아라! 네가 말씀대로 깨닫는대로 행하라!” 고 가르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힌두교에서 나중에 불교가 나오는데, 누구나 깨달으면 해탈할 수 있다. 중간에 사람의 개입이 거의 없이 직접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불교나 힌두교가 좋다는 얘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사람의 개입이 많아지면 다툼과 분쟁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4-16장 오늘 말씀인데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사람은 악하기 때문에 사람이 개입하면 생각할수록 시기와 다툼과 혼란이 가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 보다는 그 집단의 이익과 집단의 결속을 강하게 하는 쪽으로 변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의 개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종교는 무섭게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어 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죠. “이 선악과를 절대 먹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나중에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찾으셨을 때, 하와가 이렇게 말합니다.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먹지 말라 하셨는데,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람이 개입이 되면 늘 이런 식으로 자꾸 하나님의 생각이 달라지고 왜곡이 되는 것입니다.
한번 정도 해석이 되는 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게 두번 세번 네번 개입이 되게 되면, 그건 하나님이 처음으로 얘기한 것 하고는 많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술취하지 말라.” 그 성경 말씀을… 사람이 개입을 해서 해석을 하면 “기독교인은 가급적이면 술 마시지 않는게 좋아!” 이렇게 해석하면 한번 오리를 끓여 먹는 거예요. 그런데 두번 끓이게 되면 “술 먹는 건 죄 짓는 거야!”가 되고, 한번 더 끓이면 “술 마시는 사람은 다 사탄이야” 이렇게 되면 배타적으로 정죄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한번 해석을 하면 “주일 성수 해야 되겠구나! 예배 빠지지 말고 드리자.” 그렇게 한번 요리하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한번 더 해석을 하면 “모든 예배를 드려야 복 받는다. 출장 가서도 예배 때는 와야 된다.” 이런 애기 하잖아요. 하지만 근거가 없습니다.
한번 더 끓여가지고 이렇게 까지 되는 거예요. “새벽예배 안나오면 벌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개입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사람의 욕심이 짙어집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고 가르치는 교회도,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교인들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뜻을 쫓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쫓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열정적인 사람일수록, 열정적인 집단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그 구원받음으로 이 세상에 메이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갖고 영원한 나라를 보며 사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 땅을 살면서 평안할 수 있는 것이고, 자유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진리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맛보게 되고, 그 자유함을 통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신앙 생활할수록, 목회를 하면 할수록… 자유가 없어지는 것 같고, 평안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왜 하나님을 더 믿는데 왜 자꾸 불편해집니까? 왜 교회의 리더, 목회자로서 왜 더 고집이 세집니까?
제가 목회해오면서, 분쟁과 다툼도 겪어 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교회에 사람의 말이 너무 많다. 우리의 목회에 목사의 생각이 담긴 목사의 말이 너무 많다. 삶과 나눔은 없고 말만 많은 목회가 되고 있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이익, 사람의 가르침이 자꾸 개입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작아지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15절에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를 가져야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그 땅위의 것, 정욕의 것을 가지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많이 사람의 개입이나 교회의 정책이 들어가서 “이렇게 가야 된다. 저렇게 가야 된다.” 하면서 새로운 룰을 만들어 버리면 그건 국물입니다. 국물의 국물의 국물의 국물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제가 한 해를 섬기면서 평안하고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별말씀 없이 지켜봐주시고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의 손길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우리 한인교협 목회자 공동체가 사람의 말만 난무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로 인해 참된 평안과 자유가 있는 공동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목회를 오래 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영혼이 잔잔해지지 못하고 불안한 이유는 아직도 내 안에 사람의 말과 가르침이 너무 많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이 주는 평안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위에 것을 구하며 하늘의 지혜를 얻어 언제나 주님으로 인해 진리로 인해 내 마음이 우리의 목양이 자유하게 하옵소서.
화평의 공동체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참석자들은 얼마 전에 내린 눈이 얼어 미끄러운 도로에서 넘어져 고생하고 있는 김종윤 목사의 빠른 회복을 바라는 기도를 함께 드렸다.
참석자들은 시온제일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감자탕으로 오후 6시부터 저녁 식사를 하고, 7시 30분부터 예배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