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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죽(溫竹) 황상하 목사 <계시와 역사의 길에서> 출판감사 기념회

편집인 0 2017.06.0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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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연구모임이 주최한 '온죽(溫竹) 황상하 목사 출판감사 기념회' 5 30() 오전에 뉴욕만나교회(담임 정관호 목사)에서 있었다.

 

저자 황상하 목사가 속해 있는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뉴욕 동노회와 서노회의 목회자들,  목사와 가깝게교류하며 지내는 목회자들이 함께 했다.

 

허민수 목사가 예배를 인도했고, 정관호 목사가 기도했다. 동료 목회자들이 조문휘 목사의 반주에 맞추어축하의 노래를 불렀다. 이신권 목사가 봉독한 마태복음 3 1-3절을 본문으로 하여 이길호 목사가 "광야의소리"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만수 목사와 조영길 목사가 축하의 말을 했고, 황상하 목사의 답사를 들은후에,  목사의 친형 황은영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길호 목사는 청중이 목사들이기에 할 수 있는 설교를 했다. 


우리 인간이 성경을 읽고, 말씀의 진리를 이해 할 때에, 항상 자기가 처한 상황속에서 성경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성경의 택스트와 동시에 그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을 올바로 알아야합니다. 본문(Text)과 상황(Context)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오래전 구티에레츠 (Gutierrez)는 “현재 세상의 실제적인 문제에 반응하려면, 계시로부터 출발하는(Text) 고전적인 신학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현재 삶의 현장에서 요구되는 질문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신학의 출발과 기초는 인간의 삶의 정황, 곧 context, 상황이 신학을 하는 텍스트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구티에레츠는 당시 남미의 상황을 Text 해서 해방 신학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되면 상황을 절대화시키고, 성경의 진리를 해체시켜, 상대주의에 빠지게 만듭니다. 해방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성적 소수자 신학 등, 모두 상황이 텍스트가 되어 세워진 신학입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상황을 무시하고, 성경 본문만 말하는 메시지도 문제가 있습니다. 종교 개혁의 슬로건 가운데 “오직 성경(sola scriptura)”는 성경만 전하고 상황을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만이 진리 분별의 유일한 기준이 되며, 진리를 분별하는게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입니다(Sufficiency of Scripture). 


“오직 성경” 슬로건에서 인간이 처한 상황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 개혁자들은 더 많은 인문학을 공부했고,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자유의지 논쟁>을 보면 종교 개혁자들이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뛰어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세기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드” 책들을 보면, 얼마나 풍성하고 해박한 인문학의 지식을 가질지 모릅니다. 에드워드는 철학, 논리학,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과 같은 과학적인 지식도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성경해석학의 고전, 클래식이 되었지만, 지난 30여 년간 성경 해석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교재로 사용된, 당시 영국 University of Sheffield 교수였던, 안토니 씨슬톤 (Anthony Charles Thiselton)의 저서 <두 지평(THE TWO HORIZONS)>이라는 책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해석학에 있어서는 해석자가 문법, 어휘, 문체들을 포함한 텍스트의 언어로부터 출발했다. 텍스트의 언어적, 문화적, 역사적 문맥을 조사함으로써 해석학을 시도한다. 전적으로 텍스트의 의미만을 조사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 해석학이란, 텍스트와 해석자 사이의 관계성에서 이루어진다.”


종교개혁 이후, 17세기에 일어난 계몽주의(Enlightenment) 사상의 영향으로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으로가 아니라, “오직 이성만(Sola ratione)”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든 진리는 이성의 검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고등비평이 등장하게 되었고, 성경도 다른 문서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지배적인 흐름이었습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이 신학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성경해석학에 있어서도 텍스트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씨슬톤의 <두 지평>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을 “철학적 성경 해석학” (philosophical hermeneutics)이라고도 합니다. 씨슬톤은 성경의 지평과 해석자의 지평, 이 두 지평이 융합 (Fusion)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해석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씨슬톤의 <두 지평>은 가다머(Gadamer)의 해석학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텍스트의 의미는 독자의 지평과 저자의 지평이 만나는 지점”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가다머는 “두 지평의 융합”을 통해 해석학이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본문 지평과 해석자 지평의 “융합”(fusion)을 시도하지만, 중요한 포인터는 항상 본문지평으로 해석자 지평을 해석해야합니다. 본문인 텍스트 (Text)의 잣대로 역사적인 사건들(context, 상황)을 해석해야합니다.


죤 스토트 (John Stott)도 마찬가지입니다. 존 스타트 <Between two World>에서도 두 지평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스타트는 특별히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 (Text)과 삶의 정황 (Context)의 전문가가 되어야함을 강조합니다. 죤 스토트는 설교를 할 때도 그리고 성경을 강해 할 때도 두 지평을 생각하며 성경을 강해하고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Stott는 현대문화 (Contemporary Culture)를 연구하는 일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항상 변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 (Unchangeable Word)을 늘 변하는 세상 (Changing world) 에 적용시키기 위하여 늘 연구하고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보아도 천국을 설명하면서 천국의 진리 (Text)를 세상의 삶의 정황속 (Context)에 적용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시면서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사람”을 언급하시면서, 당시의 시사 문제(Current event)를 언급하시면서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시카코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현대적인 감각을 가지고 설교한다고 합니다. 그 분은 예화집에 나온 설교 예화는 거의 사용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빌 하이벨스는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들이 아주 좋은 롤스로이스 차를 타고 교회에 오셔서 파킹 해 놓았는데, 누가 이 좋은 자동차에 충돌하여 body를 상하게 했다면, 여러분들은 자동차를 상하게 한 사람에게 따져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요? 아니면 이해하고 용서해 주어야하는가요?” 이렇게 청중들에게 접근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지금 내가 처한 상황 (Here and Now) 의 문제”에 적용시킵니다. 그런데 빌 하이벨스 목사는 현실의 상황에 너무 치우치다보니 두 지평 가운데 말씀 (Text)이 약하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설명합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광야의 소리”입니다. 광야의 소리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게할더스 보스에 의하면, 성경은 계시는 항상 점진성, 유기성(Progressive, Organic)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선지자 보다 더욱 분명하게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전하기 위하여 세례요한의 메시지의 내용은, “나는 그 분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He must increase, I must decrease)"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전하기 위하여 “자신은 쇠하고, 주님만을 높이는” 삶을 즐거워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사역은 “예수님이 드러나고, 자신이 감추어지기”를 노력했습니다.


황상하 목사님의 <계시와 역사의 길에서> 책의 출판을 축하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설교집도 아니요, 단순한 에세이도 이니요, 우리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을 쉽게 풀이하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개혁주의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많은 예화를 들어서 쉽게 설명합니다. 물론 이 책은 아멘넷에 연재한 글 가운데 뽑아서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이 사이트를 통해서 더 많은 황목사님의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황상하 목사님의 글은 오늘날 이 시대의 광야의 소리와 같습니다. 마치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와 같습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 있는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생수와 같은 복된 소리입니다. 우리 노회, 우리 총회에 이렇게 글을 쓰는 목사님이 있다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황 목사님의 글은 “하나님의 전 뜻” (whole counsel of God)을 외칩니다.


이 책의 글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다스림이 우리의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 시키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종교 개혁의 메시지이며, 개혁주의의 메시지이며, 바울이 전한 메시지이며, 나아가서 오늘날 21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황상하 목사님의 글은 “계시의 지평(Text)과 역사의 지평(Context)” 모두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특별히 내세웁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언제나 우리의 영원한 텍스트 (eternal word)입니다. 역사의 지평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서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런데 타락한 우리는 항상 특별계시인 성경을 가지고 일반 은총을 바로 이해, 적용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와 역사 우리에게는 모두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의 전 영역(개인, 가정,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과학 등)에서 그리스도가 주가 되심(The Lordship of Christ)을 강조합니다. 바라고 기도하기를 이 책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 예수 그리스께서 주가 되시고 (Lordship),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가 크게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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