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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자들의 향기를 맡으며 9 - 백의흠 목사

백의흠 목사 0 2019.09.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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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텔은 아주 작았다. 방도 작고 bathroom도 작았다. 이렇게 bathroom이 작은 호텔은 보지 못했다. 더구나 추웠다. 난방도 틀었는데 되지 않았다. 밤에 자면서 “춥다. 춥다" 하면서 잠을 잤다. 12시에 잠자리에 누워 2시에 깨었다가 또 잠을 청해 6시까지 잠을 잤다. 아침에 다른 목사님들에게 물어 보니 다들 따뜻했다고 한다. 아마 우리 방의 커텐 뒤의 문이 열려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작고 깨끗한 호텔에서 상쾌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이 동네 한 가운데 붙어 있는데 아담하고 깨끗한 동네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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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30분에 호텔을 떠나 Eisenach의 Wartburg로 향했다. 지난 번 종교 개혁지 탐방을 와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을 준 곳이 바로 바르트부르크 성과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다. 바르트부르크 성은 루터가 성경을 번역함을 통해 독일의 표준어가 만들어 진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오기 전부터 아내에게 바르트부르크 성에 대해 자랑을 많이 했다. 버스로 산 중턱의 주차장까지 가고 15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성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도 여기서는 멋있다. 지난번 왔을 때는 루터의 종교 개혁 500주년 때이고 정오 조금 지나서 와서 사람들이 많았는데 오늘은 아침 일찍 와서 사람들이 한산했다. 들어가면서 우리 가이드인 김귀권 전도사님이 대략적인 설명을 하고 안에서는 한국말로 녹음된 설명을 그 곳의 안내원과 같이 다니면서 방마다 틀어 놓는다. 지난번 500주년 때문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난 번에는 그 설명을 못 들었다. 지난 번에는 내부에서 사진을 못 찍게 했는데 이번에는 2유러를 내면 그 사람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우리 팀에서는 네 분이 대표로 찍었다. 바르트부르크 성은 1067년 Graf Ludwig Von Schauenburg 백작의 지시로 짓기 시작하여 이후 14세기 까지는 지방 영주의 거주지였다. 그 후 파괴되었던 것을 19세기에 대대적인 복구를 하였다. 처음 들어 간 방에 처음 지었던 기둥의 조각품들을 일부를 전시해 났다. 이 성은 1999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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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 보름스 종교 회의에 참석한 루터를 위해 작센 선제후인 Friedrich 3세는 독일 황제 Karl 5세에게 루터의 신변의 안전과 황제 군사에 의한 호위를 약속 받는다. 보름스 회의를 마치고 황제의 의해 보호를 약속받은 장소를 지나면 루터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매복되어 있었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3세는 황제의 군사가 호위하기로 한 장소의 끝부분에서 자기 군사를 파견하여 비밀리에 루터를 납치하여 바르부르크 성으로 모셔온다. 루터는 프리드리히의 보호를 받으며 이 곳에서 융커 외르크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기고 10개월 동안 이 곳에 머무르면서 신약성경을 헬라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여 8개월만에 완성한다. 이번에 이 곳에 가서 다시 한번 타일로 모자이크를 만든 벽화를 보면서 감탄했지만 설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13세기에 성주의 아내이며 헝가리 공주였던 엘리자벳스에 대한 구제와 자선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녀는 성녀로 시성되었고 그녀의 방과 기념 벽화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음유 시인의 대회에 대해서도 들었다. 13세기 초 독일의 우아한 음유 시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이것이 1842년에 여행중 이곳에 잠시 머무르던 Wagner 에게 오페라 타호이저(Tannhauser)를 구상하는 배경이자 모티브가 되었다. 지난번에는 한국말 설명이 없이 그냥 자유롭게 성을 돌아 다니며 구경하는 것으로 끄쳤는데 이번에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성의 마지막 관광 일정은 루터가 성경을 번역한 방에서 끝난다. 소박한 나무 책상과 의자, 그리고 작은 장과 난로가 전부인 작고 낡은 방이었지만 이 곳은 세계 역사와 기독교 역사를 바꾼 루터방(Lutherstube)였다. 모든 tour를 마치자 단체 관광이 몰려 오기 시작한다. 학생들도 단체로 많이 왔다. 아침 일찍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이 얼마나 잘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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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나와 Eisenach에서 바하의 생가에 들렀다. 전에는 생가 앞에 바하의 동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초석만 있고 없어졌다. 아마 수리를 위해 옮긴 것 같다. 그리고 루터가 공부하면서 머문 집과 루터의 길을 걸어서 바하가 세레를 받고 성가대를 하고 루터도 성가대를 한 Georgen 교회를 찾아 갔다. 그 곳의 내부를 잠깐 보고 그 곳의 독일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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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에 Frankfurt로 갔다. 그 곳에서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면세 가게에 잠깐 들러 한국 식당에 갔다. 김치 찌개를 먹었는데 정말 초라했다. 그래도 모든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한국 음식이라고 다 들 좋아한다. 이번 여행에 처음으로 먹는 한국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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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 Goethe의 생가인 쾨테 박물관에 갔다. 내부로는 들어 가지 못하고 밖에서 구경만 하고 시청 광장으로 갔다. Frankfurt는 멋있었다. 먼저는 구시청 광장으로 갔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유럽의 광장은 다 멋있고 다 비슷했다. 광장 가운데는 동상이 있고 광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 사방에 시청 건물과 교회 건물 그리고 옛 건물들이 있다. 구청사의 2층 발코니는 차범근 선수가 독일에서 활약할 때 축구 우승을 하고 우승컵을 차선수가 높이 들었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프랭크푸르트의 광장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멋있다. 특별히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인강이 있는데 마인강의 다리 위에 배경은 멋있다. 사람만 다니는 철교 다리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물쇠를 걸어 놓았다. 자물쇠를 걸면 사랑이 깨지지 않고 자물쇠처럼 오래 간다는 설이 있어서 연인들이 그렇게 한다고 한다. 수천개의 열쇠가 철교에 매달려 있다. 프랭크푸르트에서 7시까지 있다가 H4 Hotel로 왔다. 이번 여행은 그리 스케줄이 빡빡하지 않았다. 호텔도 비교적 일찍 들어 오고 아침에도 8시 넘어 출발한다. 여유가 있다. 그러나 나는 호텔에 들어서면 그 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글을 쓰느라고 12시 넘어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몇 번이나 깨어나다. 이것이 피곤하게 만든다. 오늘도 바르트부르크 성을 구경하는데 너무 졸려서 견디기 힘든 정도였다. 그러나 Eisenach를 떠나 Frankfurt를 가는 도중에 차 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이것 때문에 피로도 풀고 견딜 수 있었다. 오늘도 좋고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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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위로부터) : 바르트부르크성 ==> Eisenach의 루터의 길에 있는 루터가 머물렀던 집 ==> 프랑크푸르트 시 청사 광장 ==> 프랑크푸르트 ==>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일기를 쓰는 필자 ==> 바르트부르크성 내부에서 필자 부부 ==> 바르트부르크성 안에 있는 루터가 성경을 번역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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