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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길 목사, "십자가 너머 부활과 영생을 증거하며 살자"고 설교

편집인 0 2017.04.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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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교협(회장 김종국 목사)과 뉴저지목사회(회장 유재도 목사)가 한마음으로 준비한 '종교개혁 500주년 부활절 새벽 연합 예배'의 설교는 김창길 목사(뉴저지장로교회 원로목사, 뉴저지교협 4대회장, 개신교수도원수도회 원장)가 맡았다.

 

김 목사는 박근재 목사(뉴저지목사회 부회장)가 봉독한 고린도전서 15장 2-8절을 본문으로 "십자가 너머 부활과 영생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아래의 설교문은 '종교개혁 500주년 부활절 새벽 연합 예배' 순서지에 인쇄되어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때때로 혹은 무언가를 결정해야 만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하게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삶과 죽음에 관한 물음일 것입니다. 이는 인간 개개인의 삶의 문제만이 아닌 자연 생태계 안에서 이뤄지는 약육강식의 법칙이나 어떤 공동체나 국가간의 권익다툼이나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들 속에서 보여지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의 모습들 일 것입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세익스피어의 문장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그의 작품 속 헴릿만의 질문이었을까요? 덴마크 왕자 헴릿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죽이고 죽느냐 그저 현실을 받아들인 채 내적 고통 속에 살아가느냐 이에 대한 인간 실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랫동안 던져왔고 그 답을 구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대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예수님을 떠난 그리스도인의 삶은 존재의 생존이나 죽음도 그 참된 의미를 찾지 못하고 후회와 원망과 싸움으로 물어 뜯고 죽이는 그저 살아있는 그런 존재가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익숙한 내 나라 내 땅을 멀리하고 굳이 이곳에서 낯선 땅 이민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들에게 합당한 모습인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죽음) 다시 살아나(부활) 새 생명(영생)을 살아가고 있는 한없는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님의 자녀 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1890년 가뭄과 흉년으로 먹고 살기조차 힘든 함경도 지방의 열살 남짓 밖에 안된 저희 아버지께서는 할아버님을 따라 간도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가족의 사느냐 죽느냐를 위해 떠나신 이민이셨지만 그곳에서 아버지는 명동학교에 입학하시면서 지식과 교양을 익히고 조국에 대한 애국을 깨우치던 중에 하나님과의 만남, 신앙을 얻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교편을 잡고 일하셨지만 용정 감리교회 목사님과 양주삼 총리사의 추천으로 조선 한성에 있는 협성신학교로 유학을 하시게 되었고 복음을 안고 간도로 돌아가시어 조선족 선교를 위해 힘쓰시다 조국해방과 더불어 환국하시어 서울에 정착하기 힘든 조선족을 위한 교회로 서소문 교회를 창립하셨습니다. 저 또한 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를 위한 이민목회자가 되어 뉴저지에서 삼십 칠년 넘게 사역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보다 더 보람되고 실천하는 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아버지께로부터 배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복음을 받았던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감사함에서 바라만 보는 소년의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우리들도 십자가에서 내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이 세상 속에서도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서야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수님 부활신앙을 설파합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사람은 못해도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며 다시 죽지 않으시고 영생하셨습니다. 바울은 두번 씩 강조하며 3절과 4절 말씀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된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증언합니다. 이 증언대로 기독교 신앙은 성경에

 

쓰인 대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이기 때문에 이 권위는 유일하고 절대적입니다.

 

시편 22편 1절 말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 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와 호세아 6장 2절 말씀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라는 말씀 등에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 구약부터 예수님에게 일어날 사건(십자가, 부활과 영생)들을 미리 묵시적으로 암시하고 계심과 신약의 성취 사건에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희랍철학의 영향으로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고 영혼의 부활만을 믿는 공동체와 영혼불멸과 육체부활을 모두 부인했던 사두개인들에게 바울은 성경에 쓰인바 대로 예수님의 육체부활을 담대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와 부활하신 예수님의 다시 오실 약속을 믿는다면 현재도 예수님과 함께 그리스도안에서 옛사람은 죽고 예수님처럼 우리도 영생을 누리며 살아야만 합니다.

 

믿음으로 죄에서, 죽음에서 승리한 새 생명 부활신앙으로 현재를 담대하고 용기있게 바른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독일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순교하신 본회퍼 목사님은 이러한 부활신앙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입니다. 1945년 4월 8일 주일 아침 본회퍼 목사님이 감옥에서 아침 기도를 하고 계실 때 험악하게 생긴 두 사람이 목사님의 감방을 향해 "죄수 본회퍼 우리를 따라와" 소리쳤습니다. 이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그 마지막 순간에 같은 감옥에 있던 영국 장교가 목사님을 보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마지막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 말에 본회퍼 목사님은 미소를 머금고 평화스런 얼굴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마지막이 아니라 지금이 시작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죽음이 끝이 아니며 전혀 새로운 그러면서도 놀랍고 영광스러운 새 삶의 시작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과 부활을 넘어 영생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감격스런 부활과 영생을 누리기 전에 반드시 죽음이라는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고난과 아픔과 희생 급기야는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려 오셨습니다"(요 1:14)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부활은 십자가를 지고 난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부활은 절대 없습니다. 봄에 뿌리는 씨앗이 땅속에서 부서져야 거기서 새싹이 솟아나는 것처럼, 폭포수가 절벽에서 떨어져 부서지며 냇물과 합하며 다시 강물이 되었다가 바다로 들어가면 처음 폭포수는 없어졌지만 더 엄청난 water power가 되는 것처럼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능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신앙은 십자가의 신앙입니다. 단지 교회 안에서 찬송에서만 부르는 십자가, 성경을 감동없이 읽기만 하는 십자가, 머리로만 가슴으로만 아는 십자가가 아닌 손과 발이 함께 하는 즉, 믿음대로 행동하는 십자가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요, 죽음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 교회가 될 뿐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자만이 부활과 동시에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하면 성도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6)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우릴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가 현장에서 십자가를 지면 나 한 사람이 아닌 한 공동체, 나아가서는 인류를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홀트 양자회의 홀트는 본래 선원으로 한국 전쟁 중에 지진아를 내다 버리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그 아이들이 천국 소망과 부활의 영광을 누림으로 변화되는 영광된 순간들을 기뻐한 부활과 영생을 믿고 실천한 분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십자가 사랑은 현재 많은 아이들의 큰 소망과 행복을 가져오고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향한 소망과 기쁨 감격으로 인해 이 세상의 편견에 사로 잡혀 사는 것이 아닌 담대히 그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사는 것을 믿습니다. 참된 성도의 삶은 산 자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담대히 신앙을 실천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너머 부활과 영생을 증거하며 사시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김동욱 기자 ⓒ KimDongWook5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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