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아니면
- 양희선 -
주판알 튕기고 구구단 달달 외우던
짜장면 한그릇, 라면 국물이 만병통치 약이던
청량리 역 앞에서 파월 장병 아저씨들을 응원하던
국민 교육 헌장을 줄줄이 외워야 했던
송충이 잡으러 쥐 잡으러 다니던
나팔바지 미니스커트 장발머리 단속하던
최류탄 가스 광화문 네거리를 오염시켰던
시절을 넘어
새신랑 새색시란 이름이 붙여질 때는 좋았다
엄마 아빠란 소리 들을때도 괞찮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이 생소하게 들릴때
이제는 생각해 본다
나
무식하고 고집불통이라 아무리 타일러도
참외밭에서 신발끈 고쳐매고
배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맨다
융통성이 없어
1 + 1은 둘이 됨은 쉽게 알아도
1 x 1이 하나가 됨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이제 얼마후면 세상 살아온 공로로
공식적으로 은퇴할 자격이 주어진다
어려서 목 마르면 수도꼭지에 입대고 마실때는
돈주고 물 사먹는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인줄 알았다
마시는 공기가 공짜인줄 알았는데
호흡 할 때마다 세금과 보이지 않는 댓가를 지불해 왔음을
이제 알았다
세상은 변하고 공짜는 없다
바보같이 살지는 않았나
그래도
나보다 더 바보같은 사람도 있다
있으나 마나한 10불이 누군가에게는 전재산 일 수도
내게 있는 것이 그대에게는 소원 일 수도
어떤 잘못된 선택으로 숯덩이 같은걸 가슴에 품고 있을 수도
이곳 저곳 아픈곳이 새롭게 발견되고
하루 벌어 하루 쓰고 내일을 걱정하지만
쌀독에 쌀이 떨어지지 않고
생각해주는자들이 있으니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불행 중 다행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