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우리의 일상 뿐만 아니라 교회가 변하고 있다.
물론 이는 안전거리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교회는 다음 중요한 몇 가지 변화가 일고 있다.
아직은 그 손실과 피해가 미미하지만, 갈수록 피부로 느낄 정도로 클 수도 있다.
특히 이런 부분을 우리는 체크(check it up)해 보자.
첫째, 영상예배의 보편화이다.
이는 현장예배가 최적화되었기에 어쩔 수 없는 방편이다.
교인들은 가정에서 혹은 편리한 장소에서 영상(유튜브 혹은 교회 인프라)
예배를 드린다. 각 교회는 이 예배를 통해서
교인들에게 영적 만족감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요즘 주일, 그리고 주중에 몇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이때 나는 두 가지 반응이 있다. 하나는 대면예배가 그립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자족감이 약하다는 것이다.
둘째, 예배의 최적화이다.
이때 입을 열어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은 거의 금기시 되었다.
하지만 설교자와 기도자는 예외이다.
청중들은 그저 관객으로 남아 있어야 할 상황이다.
그저 눈으로 예배 드려야만 한다. 이것도 어딘가!?
셋째, 주일학교 교육은 중지되었다.
학교 공교육이 이미 영상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몇몇 대형교회 역시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작은 교회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시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제 다시 현장(예배당)에 모일지는 미지수다.
넷째, 헌금의 온라인(On-line)화 이다.
이 방법은 부분적으로 시행하였지만, 공론화 된적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공예배에 참석할 수 없기에 교인들은 직접할 수 없고
온라인(On-line)으로 해야 한다.
나이 든 고령자들과 인터넷 혹은 은행에 익숙치 않으면
모았다가 교회에 가서 드려야 한다.
다섯째, 성경공부 및 기도 역시 온라인으로 한다.
이미 대형교회는 이 방법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족해 하고 있다.
어쩌면 포스트 포비드_19에도 특히 직장인인들을 위하여 이 방법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어쩌면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섯번째, 전도는 이미 멈췄다.
거리에서 전도하는 것은 이제 옛방법(Old method)이 되었다.
전도뿐만 아니라 기타 다양한 봉사와 헌신적 삶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는 교인들의 손과 발을 묶는 것이다. 교회는 행함이 있는
삶을 찾아 주어야 한다.
일곱번째, 가나안 교인들은 현장예배에 갈 수 없다.
교회는 요즘 문 앞에서 교적부를 확인하고 입장시킨다(이는 발열자 혹은
이상자를 찾아내기 위함).
이젠 교적이 없는 가나안 교인이나 방문교인들은
교회 현장예배에 참석치 못한다.
여덟번째, 각 교회의 설교자들의 설교가 노출되었다.
교인들은 집에서 혹은 각자 처한 곳에서
컴퓨터 혹은 핸드폰 자판을 두둘겨 자신의 선호도에 맞는
설교자의 설교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이것이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아홉번째, 각 교회는 각종 집회(부흥회, 특별집회 등)을 멈췄다.
교회의 공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기에
각종 특별 집회는 모일 수 없다. 당연한 이치이나
교인들은 매마른 신앙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슬프다!
열번째, 각국에 흩어진 선교사들의 사역이 불확실하다.
선교사들은 자비량으로 사역하기 어렵기에
모국 교회(mother church)의 지원을 받는다. 요즘 심각한 충격과 어려움을
재정적으로 겪을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 밖에도 교회에는 수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교회가 크든 작든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직접 대면치 못하므로 모든 교회생활; 예배, 교육, 전도, 봉사, 교제 등에
비정상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회자를 비롯한 실천신학자들은 자신이 처한
교회에서 자신과 목회를 성찰하는 기도와 함께
어서 속히 목회적 대안 혹은 대응을 위한 심도깊은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더 이상 미루면 더 많은 손실과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