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이철수] 치매

복음뉴스 0 2022.10.07 14:00

제목 : 치매

글 : 이철수 목사 (은빛요양원 원목)

 

해마다  방학  때면   아이들은  

외할머니댁에  가자고  법썩을 떨었다.

아이들은 할머니   음식이 맛이  있다면서

끼니마다 채려주신 그득한  밥상을  거덜 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해 부터인가... 정확히 말하면

친정 아버지께서  몇그루 심어 놓고 가신

감나무에 꽃이피고 이어 주렁주렁

감이 달리던  해부터였다.

 

어머니는 툇마루에  나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셨고

감나무의 흰꽃이나  진홍빛의  감들을 보며

뭐라뭐라  조용나직하게  읊조리셨다.

 

이상한  일이었다.

방학이되어도  외가집에 가자는

아이들의 성화는  잦아졌다.

감을 먹으러 가자는 아이도 없다.

 

어머니의  김치맛은  짰다.

 

시작노트

5년 전 쯤  일 입니다.

작은 누님댁에 들려서  식사를 하던  도중 나는  큰 실수를  누님께  저질렀습니다.

그날  먹은  김치맛은  평소 누님이  해주시던 김치맛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빈 맛이었습니다.

나는 무심결에 "아니 무슨 김치맛이  왜 이래?" 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  나를 힐끔 쳐다보시던 누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퍽 당황해 하시던  표정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누님은 무척 섭섭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내 처에게 "남들은 모두 맛있다고 그러는데 왜  철수만  맛이 없대?"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누님은  그 해부터 차츰  치매 환자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나는  그 누님을 뵈러  요양원에 갑니다.

차 안에서 나는 누님을 생각하며 지은 나의 졸작시를 낭송했습니다.  

나의 처는 시종 말이 없었습니다.

요양원에 들러 누님과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내 처가  누님께 물었습니다.

"옛날에 우리 이 목사가  김치맛  타박하던  일  생각나셔요?"

누님은  한 참  웃으시다가 "생각 안 나!" 하고 말했습니다. 

한참 후, 또  웃으셨습니다.    

"김치맛이  어떻다구?"

 

돌아올 때  내 처는  누님 전용  빨래통을 뒤적거려 빨랫감 몇 가지를 주섬주섬 비닐 봉다리에 넣어  왔습니다.

 

* 2022년 9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6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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