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선교 11 -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성경 : 로마서 13:11-14)
글 : 유재도 선교사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인하여 아직도 전 세계가 큰 고통 가운데에 있습니다. 여러분과 가정, 교회, 일터가 다 어려움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여 무차별로 미사일을 쏘고 폭탄을 떨어뜨려서 파괴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3백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주로 폴란드로 피난을 갔습니다. 우리는 이 무섭고 악한 전쟁이 속히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더욱 깊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그것이 다시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졌음을 믿으라.(11절)
로마서 13장 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들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될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시간이 10년 20년 30년 50년 70년 80년이 지났으면 그만큼 처음 믿을 때보다 더 빠르게 죽음을 맞이하고 더 빨리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권사님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가까운 한인 교회를 섬기며 그 교회에서 오랫동안 기도 그룹을 인도하고 있는 귀한 분입니다. 권사님에게 딸 세 명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명이 15년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권사님의 남편은 54살이었는데 그해 12월 어느 날 눈을 많이 치우고 나서 밤에 잠을 자다가 새벽 5시 경에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갑자기 숨이 멈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은 같은 해에 갑작스럽게 두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 후에 지내오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오직 믿음으로” 굳게 서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11절 이 구절의 또 다른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종국적 구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재림은 가까워지고 따라서 이 구원도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반복하여 많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친히 자신의 재림에 대하여 여러 번 아주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2-44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을 예언하시면서 도둑이 갑자기 집 안에 들어오는 것으로 비유하였습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5:1-2에서 그렇게 재림을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베드로도 예수님의 재림을 도둑이 갑자기 오는 것으로 비유하여 말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초등학생 때에 저는 한국에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집에 몰래 도둑이 들어와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다 훔쳐갔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때의 매우 놀라고 두려웠던 감정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도둑이 갑자기 집 안에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 가는 것처럼 예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을 300번이나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오직 한번만 말씀하였어도 분명히 약속을 지키시는데 재림을 삼백 번이나 말씀 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속히 다시 오신다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 것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2:7, 22:12, 22:20 에 그것이 나옵니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를 아람어로 ‘마라나타’ 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긴박한 재림의 선포에 대한 요한의 응답이며,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마라나타는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이요,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마라나타의 신앙을 갖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재림하실 주님을 날마다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로마서 13장 11절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0절과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코로나 전염병과 전쟁으로 온 세상이 지금 고통 받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영적으로 깨어서 더욱 간절하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정확한 종말과 재림의 날자와 시간은 알 수 없습니다. 재림에 관한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또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자다가 깨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 가정, 그리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크로스비(Crosby)는 의사의 미숙으로 태어난지 6주 만에 맹인이 되었으나 평생 8천 곡 이상의 찬송가와 복음 송가 가사를 썼습니다. 그녀는 “찬송가의 여왕, “미국에서 현대 찬송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그녀가 작사한 찬송가 22곡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많이 부르는 찬송가는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나를 위하여”,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예수께로 가면” 등입니다.
1846년에 전염병인 콜레라가 미국에 창궐하여 수많은 목숨들을 일시에 빼앗는 것을 보며 크로스비는 쉽게 생명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콜레라가 나의 생명을 빼앗아갔다면 나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라고 그녀는 자신에게 질문하였습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죽어가는 것을 목도하고 뼈져린 경험을 한 뒤 자신의 신앙을 다시 점검했습니다. 콜레라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크로스비는 큰 공허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브로드웨이 예배당의 부흥집회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찬송가 143장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를 부르는데 그동안 자신이 한 손에는 세상을, 다른 한 손에는 주님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하였고, 그때에 성령의 불 체험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속히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매일 성령으로 충만하여 충성스럽게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둘째,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라.(12절-13절)
로마서 13장 12절은 우리가 항상 기억하고 외워야 할 말씀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어둠의 일’이라는 것은 온갖 죄악가운데 사는 불신앙의 생활을 가리킵니다.
믿는 자인 우리가 죄악들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점점 온갖 죄악과 불신앙이 가득해져가고 있습니다. 영적 어둠이 깊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26-32에서 자세하게 죄악들을 열거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악의 목록인 것입니다.
(26절)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절)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절)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절) 곧 모든 불의, 추악,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30절)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절)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1962년-1963년 공공 학교에서 기도와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에는 낙태를 허락하였습니다.
2008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이 동성애 결혼을 합법적이라고 결정했습니다. 2015년 6월 26일에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동성 결혼 합법화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보면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하나님이 이런 미국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소돔과 고모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2절에서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서 6장 10절-11절에 나오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어둠의 일을 설명하고 있는 13절의 말씀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2천 년 전에 로마에 가득했던 죄악들 즉 매우 흔했던 죄악들이 여기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죄악은 방탕함, 술 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였습니다.
1. 방탕- 원래는 축제를 뜻했습니다. 로마의 상류사회는 오락과 음란을 마음껏 행하였습니다. 축제와 파티를 즐겼습니다. 축제와 파티의 끝은 남녀 간의 음란과 무절제한 쾌락의 추구였습니다.
2. 술 취함 –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술 취하지 말라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3. 음란과 호색은 온갖 성적인 타락을 가리킵니다. 성적으로 문란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그 안에서 갖는 관계 이외의 것은 다 죄악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5)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4. 다툼과 시기 – 서로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저주하고, 원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골로새서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오늘날 세상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미국이나 한국이나 온 세상은 로마시대보다 더 악하고 타락한 죄악으로 어두워가고 있습니다. 죄악의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무서운 죄악들과 온갖 유혹들이 홍수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매일 다가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악한 죄악과 유혹의 물결이 안 믿는 자들 뿐 만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도 홍수처럼, 성난 파도처럼,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죄악들과 어떤 유혹들이 날마다 반복해서 다가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어둠의 일을 날마다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온 세상과 우리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에는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고, 가정과 교회를 더욱 귀하게 여기게 되고, 각자가 자기 자신의 깊은 내면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말씀과 기도 가운데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354년에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기독교인 어머니와 이교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어거스틴은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16세의 나이에 어거스틴은 스스로 고백하듯이 정욕의 노예였습니다.
그는 온갖 정욕의 수렁에 빠졌고, 행실이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도둑질도 했습니다. 온갖 교만과 허영이 가득한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17세에 한 젊은 여자를 만나 동거하여 18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14년간을 살다가 그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더 부끄러운 관계로 들어갔습니다. 20대에 혼합주의 페르시아 종교인 마니교를 따라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383년에 그는 최고의 연설가가 되리라는 야망을 품고 로마로 갔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재촉으로 어거스틴은 밀란에서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밀란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큰 감동을 받고 그를 따르기로 했으나, 그러나 아직 믿음과 확신이 약할 때였습니다.
밀란 지방에서 어느 날 고통과 근심 속에서 울부짖고, 정원을 거닐다가 이웃에서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집어서 들고 읽어보라”는 노래 소리를 듣고 집으로 들어가 성경을 펴서 읽게 되었는데, 그때에 눈에 들어온 말씀이 로마서 13:13-14 이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서 13:13-14의 말씀을 읽는 중에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고 과거에 살았던 부끄러운 삶이 생각나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참된 회개 후에 그는 광명한 확신과 마음의 평화를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386년 늦여름에 있었습니다. 그는 387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을 위하여 많은 고통을 겪으며 밤마다 눈물로 지새우며 기도하였습니다. 모니카는 어거스틴의 생애에 갚은 영향을 미친 경건한 여인이었습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그녀는 ‘하나님의 음성’ 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회개 후에 새 사람이 되었고 오고 오는 세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신학은 모든 기독교 신학자들에게 최고의 권위로 인정받습니다. 그는 중세의 신학과 개신교회 신학의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사도 바울 다음으로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교부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참회록)(confessions)을 복수로 표현했습니다. 죄만 고백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고백록에서 자신의 과거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셋째,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14절)
14절 -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마치 매일 깨끗하고 잘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가듯이, 매일 예수님과 동행 하라는 것입니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과 매일 매순간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씀과 기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여수 애양원에 양재평 장로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1924년에 태어났습니다. 형제가 1남 5녀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나환자가 된 후에 결국 동네에서 쫓겨나 소록도로 갔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쥐약이나 양잿물을 먹고 죽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후에 1942년 12월 25일 성탄절에 18세에 애양원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통해서 세례를 받았고, 오랫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1978년에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30세에 나환자 신부와 결혼했고, 그는 한 해 뒤에 실명하였습니다.
손의 감각도 마비가 되었습니다. 2년간 절망하다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6. 25 때 공산군에 의해 학살 되었습니다.
양재평 장로에게 남은 것은 청각과 기억력이었습니다. 그는 시력과 손의 촉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모아 함께 성경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이 없어 점자도 못 읽으니 암송합시다!” 성경 암송반이 1954년부터 시작되어 계속되었습니다. 몇 사람은 신약 성경을 통째로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양재평 장로는 성경 외우기에 힘써 신약성경을 줄줄 외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20년 만에 신약 성경을 다 외워 ‘성경 녹음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장로로 마지막까지 교회를 열심히 봉사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매일 낮 12시에는 정오 기도 시간이 열리고 있어서 나라와 교회와 북한을 위하여 통성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만약 내가 나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혹시 판검사가 되어서 누구를 벌주고 재판하는 일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나병에 걸리는 바람에 죄 짓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 수 있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또한 더욱 감사한 것은 이렇게 보잘것없는 죄인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병에 걸린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제 오늘 설교를 정리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을 보십시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16-18)
예수님께서 반드시, 속히, 그리고 갑자기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늘 주신 말씀을 항상 붙잡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은 “첫째,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졌음을 믿으라. 둘째, 어둠의 일을 벗으라. 셋째, 오직 주 예수로 옷 입으라“입니다.
[편집자 주 : 2022년 4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1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