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목사가 만나는 일상 ⑥ 또 한번 그러나 마지막 기회
글 : 김혜영 목사 (RN@Jaisohn Medical Center)
가을이 깊어지면서 햇사과의 상큼함이 더해진다. 사과 한 입 물다보니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 말리지 않고 같이 먹은 아담의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선악과를 따먹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선악과를 따먹어서...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선악과만 만들지 않으셨어도 하나님의 아들이 죽을 필요도 없고 모두가 에덴에서 행 복했을 텐데..
하나님은 아담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시고 그 분의 생명을 주셨다. 그만큼 아담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드신 걸까? 아담을 위해 완벽한 환경을 만드시고 아담과 함께 하신 하나님. 아담에게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은 최고의 것으로 아담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혼자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한쪽만 사랑하고 한쪽만 상대에게 모든 것을 준다면 그 관계가 행복할까? 아담은 받기만 했다. 모든 것을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 아담은 무엇을 하나님께 줄 수 있었을까? 무엇으로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사랑에 대해 모든 것을 다 허용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며 “사랑하는데 왜 안해줘?” “ 사랑한다며~~” 하며 떼를 쓴다. 그러나 사랑에는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허락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사랑이 가진 철저한 배타성이다. 나의 연인이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리면 상대를 죽일 것처럼 아니 죽여서라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외도를 하면서 배우자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하게 좀 내버려두면 안돼?” 라고 한다면?
부부들이 모이면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안했음 좋겠어.” 극단적인 예이긴 하나 양말 뒤집어 놓지 말아달라는 말을 평생해도 뒤집어 벗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부인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가?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딱 한 가지를 제안하셨다. 아담이 스스로 자제 하며 그 제안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랑함을 나타내주시길 원하신거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나는 너를 사랑해서 너를 만들었고 모든 것을 주었다. 나를 위해 내가 제안한 이 한 가지를 지켜줄 수 있겠니? “ 하나님이 너무 지키기 어려운 제안을 하신 걸까? 아니다. 에덴동산에는 수많은 과일 나무가 있었다. 풍요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선택했다. 스스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랑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밀어내고 사탄의 제안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우리 스 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선택은 우리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허용하신다. 우리의 선택을 보시며 야단치고 벌을 내리시려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상상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사랑에서도 그렇듯,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이다. 하 나님은 어떤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을 선택하시길 기다리신다.
선악과는 이미 따먹었고 우리는 죄인이 되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상태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되면 회복할 기회조차 없기에, 그들을 에덴에서 내어 쫓으시며 인간의 불순종의 결과를 해결하기 위해 죽기로 결정하셨다. 이 결정은 하나님이 억지로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그 분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결정하셨다. 신이 인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며 죽었다. 무엇을 더 내어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죽음이 확정된 인간에게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시며 부활과 생명을 약속하셨다. 십자가를 믿는 사람에겐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는 길, 영원한 에덴동산인 천국으로의 회복이 가능해졌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했다. 아담 앞에 놓인 선악과처럼 우리 앞에 놓인 십자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십자가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편집자 주 : 2021년 11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6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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