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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오늘의 에덴에 살고 싶다

복음뉴스 0 2022.04.10 09:42

김혜영 목사가 만나는 일상 ⑤  오늘의 에덴에 살고 싶다

글 : 김혜영 목사 (RN@Jaisohn Medical Center)

 

지구상 어딘가에 실제로 에덴이 있다면, 사 람들은 줄을 서서 거기에 가서 살고 싶어 할 것이다. 왜 에덴을 동경하고 그곳에 살고 싶어할 까? 그것은 지금 살고 있는 세상과 분명히 다른 곳이라는 생각과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에덴은 무엇이 다른 걸까? 에덴에는 죄가 없다. 죄가 없는 곳이 어떨지 상상이 되는가? 이사야 11장을 보면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6-8)”고 기록되어있다.

 

이것이 에덴의 모습이 아닐까?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지 않고 아이들을 낳고 살았다면 그 자녀들과 동산의 동물들이 함께 사는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천국 같은 에덴에서 살기를 소망한다. 그러면서 삶의 어그러지고 이해되지 않고 억울하고 답답한 것들이 모두 죄 때문이라고 죄를 한탄하며 원망하며 산다. 맞다, 모두 죄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남아있는 죄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떠나야만 에덴에 갈 수 있는 것일까?

 

이사야 11장의 말씀을 보다 동물들을 의인화해보면, 곰같은 사람, 표범같은 사람, 이리같은 사람, 독사같은 사람, 어린 양이나 염소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에덴은 하나님이 계신 곳, 죄가 없기에 미워 하거나 노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있을 까? 곰같은 남편과 여우같은 아내가 만나 토끼 같은, 표범같은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가정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곳이 에덴이 되어야 하 는 것 아닌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웃음을 짓기도 하고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되면 변화되었다 하고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스스로 좌절하기도 하고, 서로 손가락질도 하고, “인간은 절대로 안 변한다” 선언하기도 한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을 믿음의 정도로 결정해버리기도 하고 사용하는 종교적인 언어를 따라 그 사람의 겸손함을 논하기도 한다. 에덴이 없는 세상에서 에덴을 경험하고 사는 것,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일까?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눅17:21)고 하셨다. ‘너희 안’이라고 했을 때, 이것은 내 마 음 안이 될 수도 있고,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다(마18:20)는 말씀을 더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 즉 ‘가정’이고 ‘교회’이다.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사는 곳에 이미 ‘천국’ 즉 ‘에덴’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에덴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 ‘순종’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적용하면, 우리가 있는 곳이 에덴이 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그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게 아니라고 반발할 수도 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그리 쉽냐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유일한 키는 ‘순종’이다. ‘순종’이라는 단어는 왠지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옭아 매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왜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걸까? 순종해야 하는 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왜 순종해야 하는지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에, 순종이 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어느 계절보다 가을은 우리로 하여금 잠깐 멈춤과 돌아봄을 통해 내가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을 생각 하게 한다. 우리의 마지막은 분명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에덴이다. 그런데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에덴은 죽어야만 갈수 있는 곳일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날마다 에덴에 살게 하셨는데, 우리가 그곳을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깊어지는 가을을 마주하며 이런 저런 질문을 던져본다.

 

[편집자 주 : 2021년 10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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