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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식] 죽어야 행복한 목회 생활

복음뉴스 0 2022.04.09 16:12

이종식 목사의 목회 이야기 ④  죽어야 행복한 목회 생활

글 : 이종식 목사 (베이사이드장로교회)

 

현대 교회를 보면 어느 곳이나 참 문제가 많다. 어느 교회든지 서로 다투고 의견이 갈리면서 교회가 이 파 저 파로 나누어져 분열의 조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교회에 구성원이 되는 성도들이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도 타락한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죄악된 요소로 교회가 분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왜 그런 싸움을 일으키는 죄악이 많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지상에 있는 교회는 아직 영화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지상의 교회는 분열되는 것이 당연하니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 기도하신 내용을 보면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장차 그들을 통해 믿게 될 성도들이 교회를 이루게 될 때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여러 번 하시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분열이 아닌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하나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십자가의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죽지 않으면 육신의 죄악 된 행동으로 교회를 분열시키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나는 목사로서 교회가 분열되는 원인의 80%는 목사 책임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 이유는 교회의 많은 문제가 목사가 죽지 못해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1991년도에 뉴욕 베이사이드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리고 2000년도 가 될 때까지 행복한 목회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상하게 교회만 가면 기분 나쁜 일이 생겼고 성도들만 만나면 기분이 좋지 않 았던 것이다. 그러나 목사니까 참아야지 하며 참고 살았던 것 같다. 대부분 내가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누구든지 나를 목사로 대접하지 않는 다고 생각이 들 때였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친교를 할 때 내 식사를 먼저 챙겨 주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 먼저 인사하지 않는 분들을 보며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말도 나에게 함부로 하는 것 같아 기분 나빴다. 내가 젊어서 교회를 개척했다고 어린 종이라고 부르는 말도 기분 나뻤고, 목사님은 젊어서 더 영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을 듣는 것도 기분 나빴다. 그리고 내가 목사님을 영적으로 잘 키워 드리겠다는 말은 더욱 기분 나빴다. 그렇게 되니 목회 생활을 사명으로 하고 있었지만 행복한 목회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내가 신학생 시절 훈련을 잘 받아서 엄청나게 잘 참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목회는 정말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서 인간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1999년도까지 행복하진 않았어도 잘 견디며 목회를 해왔다. 그런데 2000년도를 들어서면서 나도 무엇이 좀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된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뭔가 새롭게 바뀌어야 함을 떠들썩하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뭔가 바뀌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를 “주님 제가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라고 부르짖었다. 그랬더니 내 마음속에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 목사, 이 목사는 나로부터 참 귀한 목회의 소명을 받고 목회를 하는데 왜 그렇게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잘 아시면서 그런 질문을 하시네요. 교회에 가면 정말 기분 나쁜 일이 많잖아요. 목사를 대하는 태도들부터 직분자라고 해도 교회를 섬기는 모습이 엉망이잖아요. 누가 알아서 불을 끄는 자도 없고, 교회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도 치우는 분도 없고, 교회가 빌린 건물의 렌트비를 못내도 부담이 될까 봐서 그것을 말할 사람도 없어서 다 저 혼자 짐을 지고 날마다 살아야 하니 기분 나쁘지 않을 수가 없지요.”라고 말했다. 그때 내 마음속을 울리는 한 마디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다 이 목사가 죽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는가?” 나는 그 말 한마디에 고꾸라져 엎드리게 되었다. 깊게 생각해 볼 때 그 말은 너무나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 한 사람 죽으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을 큰 문제로 삼아 끓을탕을 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그날 2000년도를 맞이하며 새롭게 결심하게 된 것은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에 나를 못 박고 날마다 죽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성도들이 어떤 태도로 교회와 목사를 섬기는지에 집중하지 말고 주의 종으로 겸손히 양들을 성심껏 돌보자. 인사도 웃으며 먼저 하고 상대방의 태도야 어떻든 공손히 대하며 내가 받고 싶은 대접을 먼저 성도들에게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건물의 불을 끄는 사람이 없으면 그 일도 내가 기쁘게 하고 휴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내가 줍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 자세로 2000년도 첫 주일을 맞았는데 너무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죽으니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감사한 일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먼저 너무나 우리 교회에 좋은 성도님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시설도 형편없는 개척 교회에 나와 성 심껏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감사했고, 일주일 내내 노동을 하여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는 성도들이 너무 귀하게 보였다. 그리고 하루 쉬는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위해 준비하고 주방 일을 맡는 분들이 귀하게 보였다. 그리고 주 6일을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도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귀하게 보였다. 그리고 나 같은 부족한 자도 하나님이 세우신 목사라고 기도를 받으러 오는 성도님들을 대하면서 황송한 대접을 받는 것으로 생각되어 보람을 느 끼게 되었다. 나는 그런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동안 교회와 목사를 사랑하는 분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목사가 죽지 못해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2000년도부터는 나는 그런 좋은 성도 님들이 있으매 마음으로 감사하며 정말 복 받은 목사라고 생각하며 지내오게 되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수고하는 성도님들을 귀하게 여기며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교회에서 목사가 죽지 못해 생기는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교회를 보면 목사는 주의 종으로서 자신이 대 접받는 것에 집중하여 자신의 권리를 너무 챙기다가 모든 것을 잃는 경우를 많이 본다. 어떤 교회는 목사가 캐딜락과 같은 잘 알려진 고급 차를 사려다가 교인들이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어떤 목사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 당연히 목사는 고급 차를 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것을 보며 시험에 드는 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교인들 자신들은 아주 비싸고 고급스러운 차를 타고 다니면서 목사에게는 그런 차를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오직 한국 교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 교회에서도 그런 일은 빈번히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 그 증거로 우리에 게도 잘 알려진 성경학자요 방송 설교가인 R C Sproul의 다음과 같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분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싼 차가 벤츠라 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벤츠는 오래 타도 잘 망가지지 않고 사고가 나도 튼튼하여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목회자로서 지혜롭다면 벤츠를 사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성도들이 그 차 이름 때문에 목사가 교만하게 부자로 행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겸손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벤츠를 사면 안 됩니다. 만일 꼭 좋은 차가 필요하다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차를 사면 됩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엔 목사가 타고 다니는 차가 좀 비싸도 벤츠 그리고 캐딜락 링컨 같이 부의 상징처럼 알려진 것이 아니면 사치스럽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분의 말을 들으며 미국 성도들도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 뭐 성도들의 눈치를 그렇게 볼 필요가 무엇이냐고 말할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도들이 잘 모르면 훈련하면 된다고 하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러나 성도 전체를 그렇게 내 마음과 같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한 사람이라도 더 그 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려고 야만인에게도 빚진 자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우리 목사가 죽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고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나는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타 교회에서 목사의 차를 사는 것이 문 제가 되는 것을 여러 번 보며 설교 시간에 못을 박아 놓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목회가 끝날 때까지 미니밴만 타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30년을 미니밴만 타고 다니고 있다. 물론 그렇게 살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이 있었다. 겨울이 되면 눈길을 잘 달리는 SUV가 필요한데 미니밴을 타고 다니니 차가 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눈길을 자유롭게 달리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괜히 미니 밴만 타겠다고 말했다고 후회한 때도 있었다. 그리고 값으로 따지면 내가 타고 다니는 Dodge 미니밴은 오히려 보통 SUV보다는 비싼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SUV는 내가 타고 다니는 차보다 더 싼데, 비싼 차를 불편하게 타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 번은 당회에 제안하기를 공동의회를 열어서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니까 목사가 개척 초기에 별로 사람도 없을 때 약속한 것을 상황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차종을 바꾸어 살 수 있도록 할 것을 결정 짓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당회원 되시는 장로님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었다. 눈치를 보니 처음 약속한 대로 미니 밴을 타야 한다는 무언의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눈치를 채고는 알았다고 하면서 그냥 미니밴을 타겠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를 제시하게 되었다. 내 집사람의 차는 SUV를 사는 것을 허락하여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다닐 수 없을 때는 사용하게 해 달라고 한 것이다. 당회에서는 흔쾌히 허락하여 그렇게 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집사람은 남자들이 선호하는 좀 큰 차인 SUV를 타고 나는 가족용인 미니밴을 타고 다니고 있다. 이렇게 한 번 한 약속 때문에 날씨에 맞는 차를 사지 못하는 것은 참 불편하지만 참 많은 좋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소한 목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목회에 엄청난 유익을 가져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목회 초기에 차만 이렇게 약속한 것이 아니고 사택에 대한 것도 약속한 적이 있었다. 목회를 하는 동안 내 이름으로는 사택을 사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내가 그렇게 약속한 것은 많은 교회가 목사가 집을 사는 문제로 시험에 들고 분열이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일로 교회로 시험에 들게 하지 않게 하려고 사택을 내 소유로 갖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교회 형편이 좋아지자 담임목사의 사택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비싼 렌트비를 내기보다는 집을 사서 모게지를 내는 것이 더 저렴하고 교회에 유익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드디어 당회가 결정하여 목사의 사택을 사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사택을 사면서 목사의 이름으로 당연히 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나는 목회 초기의 약속이 나의 이름으로 집을 사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교회의 이름으로 사게 하였다. 그렇게 되니 사택을 사면서 정말 아무 잡음 없이 은혜롭게 사게 되었다. 나는 사택을 산 그 주일날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하였었다. “성도님들, 저는 이번에 제가 거주할 사택을 살 때 제 소유로 살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제가 목사로서 늘 전하던 말씀대로 이 세상의 것에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가서 살 영원한 천국을 확실히 믿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형편이 안 되어 집을 사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일로 마음 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는 집을 소유할 수 있었어도 그것을 갖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은 잠시 살다가 지나가는 정거장 같은 곳이고 우리는 장차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정금 같은 것으로 된 길을 걸으며 값 나가는 진귀한 보석으로 꾸민 집에서 살게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좀 없다고 기죽지 말고 천국을 바라보며 당당히 믿는 자 답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그날 여러 성도님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목사가 세상에서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보며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39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 말씀은 목사인 나에게 이런 말로 들려 왔다. 목사로서 명예와 부귀와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면 그 모든 것을 몇 배나 얻게 하신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목사가 무조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목사에게도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그들의 삶을 위하여 당연히 생활비를 부족하지 않게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너무 약하다면 목회자와 함께 자신의 것을 나누 려고 하는 성도가 진짜 교회와 목사를 사랑하는 성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목사가 이 땅에서의 부를 누리기 위해 노력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육신의 소욕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목사로서 날마다 자신을 죽이므로 교회의 분열을 막고 하나 되기 위해 삶을 살아야 하지만 목사로서 포기하거나 양보해서는 안되 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단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성경적인 것이 교회에 들어 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리고 인본주의가 들어 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요새 보면 이 시대 의 가장 큰 교회의 적은 인본주의라고 생각한다. 인본주의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을 중심으로 한 것을 말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이 인본주의가 교회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대 교계는 하나님의 말씀이 금하는 것을 자신들 마음대로 해석하여 평화를 이루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이 중심으로 되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 중심이 되는 그런 곳은 언제나 분열만 있었을 뿐이다. 목사는 이런 일에 대하여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의미로 볼 때 목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 의하여 평판을 받는 것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된다고 생각 한다. 말씀대로 하려고 하면 때때로 사람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라고도 하며 꼴통이라는 소리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목사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가르쳐야 하고 교회를 세워나가야 하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나를 무엇이라고 평가할까를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시대적 사명을 받은 목사로서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만을 염두에 두고 살기를 매일 결단한다.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서 부족한 가운데서도 충성스러운 종으로 불림받게 되기를 원한다.

 

[편집자 주 : 2021년 9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4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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