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한준희] 기도란 무엇인가? (2)

복음뉴스 0 2022.04.13 13:52

성도들과 함께 생각할 신앙 칼럼 ⑧  기도란 무엇인가? (2)

글 : 한준희 목사 (뉴욕 성원장로교회)


고등학교 일학년 여름 방학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 근교 삼각산 기도원에 처음으로 산기도를 하러 가던 적이 있었다. 기도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산기도를 갔다는 것은 아주 단순했다,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단순한 진리를 체험했기 때문에 어머니를 따라간 것이었다. 

 

하지만 기도원에서 몇시간씩 찬양을 하고 몇시간씩 기도하는 많은 분들 사이에서 함께 기도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던 나는 그곳을 빠져나와 산정상에 올라 혼자 기도도 했고 혼자 찬양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기도하는 곳에 아주머니인지 할머니들인지 대여섯명이 올라온 것이었다, 그중에 남자도 한분 계셨는데 내 기억에 다리를 저는 것으로 기억되는 남자가 나에게 와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는것이었다.

 

그런 안수기도에 익숙하지 못했던 나는 좀 당황했지만 지금도 그 기도 내용은 생생히 기억한다. 기도내용은 이랬다. 너는 지금 이 첫 믿음을버리면 많은 고난을 당할 것이라는 것과 너의 집에 하나님의 종이나올 것이라는 예언기도였다.그후 세월 지난 후에 나에게 기도를 해주셨던 분이 바로 이천석 목사였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예언기도대로 목사의 길을 가야할 문 앞에서 신학을 포기하고 10여년을 방황하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그리고 목사가 되었다,

 

어쩌면 그분이 기도해 주셨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도 간증하고 다닌다.그때부터 나는 기도안에는 예언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이 성령의 은사에 한부분이라는 것도 알았다.

 

기도에는 분명한 신비한 비밀들이 숨어 있다. 그럼 그런 신비한 기도는 어떤 방법이 요구되는 것일까 매우 궁금하여 신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책을 보고 공부를 해 온 결과,그 기도의 신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 있어야 한다.


마7:7-12절까지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시켜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이 말씀은 ‘구하면 주신다, 찾으면 찾을 것이고,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쉽게 볼 수있지만 그 배경에 깔려 있는 전제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즉 악한 자라도 아들이 구하면 준다.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안주시겠냐는 것이다. 즉 반드시 주신다, 그런데 조건이 뭐냐 12절“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라”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앞에 있는 문장들“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 그러면 주신다”라는 내용을 전제로 한 단어이다.그러므로 ‘대접하라’이다. 즉 받고 싶으면 대접하라, 여기서 남에게 대접한다는 말은 이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다.

 

즉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되고, 두드리면 열리는 응답의 조건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라는 뜻이다.이것이 율법이고 선지자라고하였다.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전체가 말하고 있는 대강령이다.그말인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고 구하는 것은 응답해 주는 대상자를 대상자로 여기지 않고 제 욕심에 따라 응답의 대상자를 제 마음대로 이끌어내겠다는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인가,그 비밀이 바로 아버지이다, 하나님을 네 아버지로 대접하라는 것이다,즉 구하면 주시고,찾으면 찾고,두드리면 열리는 열쇠는 아버지와 아들관계가 형성될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이것이 기도의 핵심인 것이다.

 

아들이 되었다는 이 사실은 아버지의 것이 내 것이 되었다는 것이고 아버지께서 자녀의 미래까지도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예언적인 요소로 보여주실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아버지와 자녀되었다는 믿음의 관계가 올바로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엉뚱한 허공에다 기도하는 것이고 또는 미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둘째, 기도는 동역의 원리이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기도하라는 것일까?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고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향하신 선하신 뜻을 진행해오셨다.그렇다면 더욱 믿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셨을까?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혼자 일하지 않으시겠다는 의지이다.

 

우리가 자녀들을 키울 때,그들이 어렸을 때에는 자녀들과 상의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모든 결정을 하고 자녀들을 이끌어 왔고 자녀들은 부모가 진행하는대로 따라 순종하면서 살아왔던 것처럼, 자녀들이 원하지 않았어도 부모는 자녀들을 더 좋을 곳으로 인도해 주었듯이 우리가 믿음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식을 하든 못하던,기도를 하든 안하던 일방적으로 이끌고 오셨다는 이치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자녀까지 둔 자식이라면 부모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일방적으로 행하지 못할 것이다.반드시 부모는 자녀들과 상의하면서 모든 결정을 하게 되고 시행하듯이 바로 하나님께서도 믿음을 가진 성숙한 신자들에게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는 일을 자녀들에게 알려주시고 자녀들과 함께 그 일을 하시려는 것이 바로 기도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기도를 하게 된다면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고,그 기도 속에는 알게모르게 하나님의 계획이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계획을 자기 욕심으로 착각(전부는아니지만)하여 부르짖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욕심을 부리든 아니 부리든 우리의 기도 속에는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이고 그 뜻을 기도하는 나를 통해 이루어 나아가시겠다는 동역의 원리가 기도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의 예도 동일하다,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소돔성을 멸망시키고자 하실 때도 하시고자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의논하였고, 그 의견이 합당하다면 아브라함의 말대로 따르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도 아브라함과의 대화 속에 잘 나타난다.(창18:22-33)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거의가 동역의 원리이다.모세에게도 그러하였고,에스겔에게도 그렇게 하였고 다윗에게도 그러하였다. 다윗의 예를 들어도 그렇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마당을 탈취한 사건이생겼을 때,하나님은 블레셋을 단칼에 처단할 수도 있었지만 다윗을 감동시켜 하나님께 묻도록 하였다.하나님께서는 기도한 다윗을 통해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맡기겠다고 말씀하시므로 하나님의 일을 동역하는 모습이 바로 기도의 원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기도하는가?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기도하는가? 문제가 일어나는 과정인가? 아니면 문제가 꼬일 때인가? 거의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기도한다, 문제가 없을 때에 기도하는사람은 없다.왜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기도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그 정도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와서기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이제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 니다’라는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이 일반적인 기도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면 이번 사건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 고백 외에는 없다. 그러나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기도를 하였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일을 해결하게 될 것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역사하셨다. 그것을 기도의 능력이라 한다. 하지만 그렇게 기적적으로 역사하시는 기도의 응답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기도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비약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시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 하시는 동역을 더 원하고 계시고 나를 통해 이루신 일에 대한 상급을 나에게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기도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아버지와 자녀된 부자관계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일한다는 동역관계의 원리이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주시지않겠느냐(눅11:13)

 

[편집자 주 : 2022년 1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8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82 [이종식]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 예배 복음뉴스 2022.04.14
181 [조원태] 눈 내리는 날 함께 커피숍 가고 싶은 모세 형 복음뉴스 2022.04.13
180 [김동욱] 복음뉴스 창간 5주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뉴스 2022.04.13
179 [양희선] 새해에는... 복음뉴스 2022.04.13
178 [권캐더린] 새로움이 주는 의미 복음뉴스 2022.04.13
177 [김용복] 죽 쑤는 공주 복음뉴스 2022.04.13
176 [배성현] 사랑 고백 복음뉴스 2022.04.13
175 [이윤석] 율법은 우리를 은혜로 인도한다 복음뉴스 2022.04.13
174 [양춘길] 시내버스의 추억 복음뉴스 2022.04.13
열람중 [한준희] 기도란 무엇인가? (2) 복음뉴스 2022.04.13
172 [강유남] 누가 천국의 열쇠를 주는가? 복음뉴스 2022.04.13
171 [김현기] 찬양 하는 기타리스트, 김명민 전도사 복음뉴스 2022.04.13
170 [유재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 (2) 복음뉴스 2022.04.13
169 [유재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 (1) 복음뉴스 2022.04.13
168 [김경수] 상처 입은 성격 드려다보기 복음뉴스 2022.04.13
167 [이종식] 앞날을 바라보며 청년들을 일으켜야 한다 복음뉴스 2022.04.13
166 [박인혜] 새해 복음뉴스 2022.04.13
165 [송호민] 신자의 삶의 목적 복음뉴스 2022.04.13
164 [조희창] 아버지가 마음으로 주신 기도문 복음뉴스 2022.04.13
163 [오종민]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사시겠습니까? 복음뉴스 2022.04.13
162 [김혜영] 새로울 것 없는 새해에 세우는 새로운 계획 복음뉴스 2022.04.13
161 [이민철] 메이첸 박사 저 『근대세계 안에 그리스도인 신앙』(1936)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는가? 복음뉴스 2022.04.12
160 [문갈렙]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복음뉴스 2022.04.12
159 [한삼현] 안식일에 합당한(lawful) 일이라! 복음뉴스 2022.04.12
158 [박시훈] 시선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복음뉴스 2022.04.12
157 [조원태] 해피 뉴 이어, 모세 형 복음뉴스 2022.04.12
156 [이선경] 이스라엘 백성처럼, 시온의 영광을 사모하자 복음뉴스 2022.04.12
155 [김동욱] ‘은혜’가 아닌 ‘법’이 판단의 잣대가 돼야! 복음뉴스 2022.04.12
154 [박인혜]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복음뉴스 2022.04.12
153 [배성현] 나의 남은 날 계수하게 하소서 복음뉴스 2022.04.12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