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이종식] 앞날을 바라보며 청년들을 일으켜야 한다

복음뉴스 0 2022.04.13 10:43

목회 이야기 ⑧  앞날을 바라보며 청년들을 일으켜야 한다

글 : 이종식 목사 (베이사이드장로교회)


나는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목회자 세미나에 자주 갔었다. 어떡하든지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세미나에 갈 때마다 실망하고 돌아올 때가 많았다. 그 이유는 강사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너무 큰 일을 하는 것을 보며 따라 할 엄두가 안났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리 교회의 형편에 맞게 복음 전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작게나마 해보자고 생각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크게 열매를 맺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작게 시작해도 그 동기가 복음 전파라면 크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면 나는 우리 교회를 개척할 때 개척 구성원이 별로 없었다. 시작할 때는 큰 형님 가정과 누님 가정이 함께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 구성원을 가지고 교회는 누님의 주택 지하실에서 시작하였다. 나는 그때 이런 작은 교회는 복음 전파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장년이 없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도 같은 영혼이고 그들이 복음화되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고, 그들의 부모도 역시 전도되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가져온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시 큰 형님 가정과 누님 가정은 아이들이 4명씩이나 되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두 명이었다. 그래서 몇 가정 안되었지만 벌써 유년 주일학교가 10명이나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토요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토요학교에서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한글을 가르치는 것을 내세우며 아이들을 복음화하는 일에 힘을 쓰는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토요학교 프로그램은 3시간으로 다음과 같이 시간을 정하여 진행하였다. 처음 1시간은 예배를 드렸는데 30분은 찬양을 함께 부르고 30분은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2시간은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간식을 주고는 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순식간에 20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주택 주변의 사람들이 고소하여서 그곳은 더는 교회당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옮긴 곳이 그리스 여자 사범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이었다. 그런데 그 태권도 도장도 형편이 참 열악한 곳이었다.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복도를 따라가면 한 30명 들어가면 꽉 차는 그런 자그마한 홀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우리 교회는 주일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토요일 저녁에는 토요학교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장소에서도 아이들은 더 늘어만 갔다.

 

그곳에서 모이는 아이들이 30명 정도가 되었고 그 렇게 되자 예배는 간신히 드릴 수 있는데 아이들이 공부할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는 복도에서도 가르치고 홀에서는 여러 반이 따닥따닥 붙어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더 오자 한 교사가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하였다. “ 강도사님,(그때 당시는 내가 아직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고 강도사 신분이었을 때였다) 더는 아이들을 가르칠 곳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그 교사에게 그날 이런 말을 하였다. “성경을 보니 사도바울은 우리보다 더 열악한 곳에서도 복음을 전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곳은 감옥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쓰는 이 장소에서 감옥보다는 더 나은 곳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습니다.” 교사가 물었다. “어디인데요?” 나는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그곳은 화장실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데 화장실에서는 왜 가르칠 수 없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본인만 괜찮으시다면 화장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어떨까요?” 그 교사는 그 말을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다음 주에 보니 화장실에서 그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 화장실에서 공부한 아이의 엄마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하루는 자신의 아이가 토요학교에 다녀와서는 하는 말이 “엄마, 오늘 나 이상한 곳에서 공부했다!” 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서 공부했는데?” 라고 물으니 화장실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니, 무슨 교회가 아이들을 화장실에서 가르친다니? 참 이상한 교회다.”라고 말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엄마에게 말하기를 “엄마, 그런데 그곳에서 공부를 하는데 내 마음이 이상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웬일이냐고 물으니 선생님께서 화장실에서 자신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애쓰는 것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은 열악한 환경도 초월하여 복된 장소로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교회는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이렇게 교회 개척과 함께 시작된 토요학교는 교회의 성장과 함께 점차 성장되어 한때 400 명까지 나오는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은 뉴욕의 모든 교회가 토요학교를 열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 코로나 때에도 우리 교회 토요학교에는 약 100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이고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교회와 함께 30년 동안 진행된 토요학교를 통과한 아이들이 수 만 명에 이르는 것 같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복음 전파를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은 아주 작게 시작해도 점차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를 보면서 애석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 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일이 실패하는 것을 보는데 그 이유가 복음전파가 목적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는 토요학교를 해도 한글만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한글은 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복음화시킬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복음 전파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그 결과 운영 자체가 힘들어지고 가르치는 자들의 동기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 토요학교가 다른 점은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하므로 한글을 가르치기 전에 1시간 동안 찬양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복음을 들은 아이들이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을 그들의 삶에서 실천할 때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도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년이 없던 우리 교회를 그들의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로 채우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작지만, 복음 전파에 성공하니 교회는 자연스럽게 부흥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도 숫자가 적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고 해도 복음 전파를 위해 작게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파된 복음은 아이던지 장년이던지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가져오게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교회는 6주 동안 매일 진행되는 여름학교를 운영할 때도 꼭 말씀을 가르치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그러니까 첫 시간에 말씀을 40 분 정도 가르치는 것으로 모든 여름학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자 여름학교에 참여한 아이들은 복음화되고 그들은 역시 부모를 전도해 오는 일을 일으켜 왔다. 어떤 아이는 처음으로 우리 교회의 여름학교에 참석하고 난 후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엄마, 이렇게 좋은 곳을 왜 이제야 오게 했어?”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많이 창피한 생각이 들었고 정말 믿음으로 살아야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분은 아이에게 창피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하여 교회가 시행하고 있는 제자훈련반에 들어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접하며 복음 전파에 초점을 둔다는 것은 교회의 본질이고 교회가 그런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이루게 된다고 믿는다.

 

나는 요새 나이가 들면서 전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복음 전파가 목적이 아니라면 하나님 나라는 쇠하여만 갈 뿐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우리가 사는 현대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의 관심이 복음 전파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성도는 모이면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더 재미있게 교회 생활할 수 있나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우리 목사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그렇게 말하게 되는 이유는 많은 목사가 복음 전파가 아니라 다른 곳에 너무도 관심이 많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관심을 둔다는 것을 한 예로 든다면 목사들 이 어떤 기독교 기관에 속해 정치적인 것에 굉장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은 일을 말한다. 물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기독교 기관이 필요하고 그것을 운영하려면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독교 기관도 그리고 그 기관을 운영하는 정치도 다 복음 전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관을 운영하기 위해 정치만 하고 복음 전파는 뒷전이 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목사의 입에서는 정치적인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복음으로 사람이 변화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목사 자신의 사명이고 관심사라면 말이다. 그런데 실망스러운 것은 많은 목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치로 시작했다 정치로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참으로 시간 낭비를 한 것 같고 실망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성경은 언제 연구할 것이고 기도는 언제 할 수 있겠나? 그러면서 그들의 목회가 심히 걱정될 때가 있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어 보이는 면도 있다. 아직도 복음 전파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목사로서의 본연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 분들이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기독교 단체 모임에 가서 회의하게 되었다. 참 감사한 자리였다. 그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 중에 정치적인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고 내가 들은 이야기는 어떡하든지 복음을 좀 더 넓게 그리고 효과 있게 전할 수 있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곳에 모인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고 그들을 보며 생각하게 된 것은 저렇게 복음 전파에 관심이 있으니 그들이 목회하는 교회가 부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목사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 교회는 달라진다. 복음 전파에 사명을 두고 목숨 걸고 그 일을 위하여 뛰면 하나님 나라는 확장된다. 그 이유는 그런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 나라 확장에 필요한 이 시대에 맞는 지혜를 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작게 시작한 것이라도 그 일에는 하나님이 은혜를 부으셔서 반드시 성장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복음 전파는 뒷전이고 다른 것이 목적이라면 아무리 크게 시작했어도 그 일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나는 신앙의 선배 중 고 김계용 목사님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의 삶의 목적이 복음 전파였고 그 일을 위해 자신을 다 버리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 분이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은 그분이 목사 안수받는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분은 그날 내 평생 가장 짧은 권면의 말씀을 하였다. 그분은 강단에 서서 안수받는 분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말을 주겠습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의 말 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렇게만 사신다면 여러분의 사역은 성공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고 김계용 목사님은 강단에서 내려갔다. 참 짧은 메시지였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리에 남는 권면이었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높여지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사라지고 우리가 남는다. 그리고 그 인생은 추하여지고 만다. 목사로서, 성도로서 가장 멋지게 사는 비결은 세례요한을 닮는 길이라고 느껴진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것만 잊지 않는다면 복음 전파는 어느 곳에서 든지 이루어지겠고 하나님 나라는 절로 확장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라고 실망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한다면 그 작은 일은 놀라운 하나님 나라 확장을 가져오게 될 것을 믿는다.

 

[편집자 주 : 2022년 1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8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82 [이종식]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 예배 복음뉴스 2022.04.14
181 [조원태] 눈 내리는 날 함께 커피숍 가고 싶은 모세 형 복음뉴스 2022.04.13
180 [김동욱] 복음뉴스 창간 5주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뉴스 2022.04.13
179 [양희선] 새해에는... 복음뉴스 2022.04.13
178 [권캐더린] 새로움이 주는 의미 복음뉴스 2022.04.13
177 [김용복] 죽 쑤는 공주 복음뉴스 2022.04.13
176 [배성현] 사랑 고백 복음뉴스 2022.04.13
175 [이윤석] 율법은 우리를 은혜로 인도한다 복음뉴스 2022.04.13
174 [양춘길] 시내버스의 추억 복음뉴스 2022.04.13
173 [한준희] 기도란 무엇인가? (2) 복음뉴스 2022.04.13
172 [강유남] 누가 천국의 열쇠를 주는가? 복음뉴스 2022.04.13
171 [김현기] 찬양 하는 기타리스트, 김명민 전도사 복음뉴스 2022.04.13
170 [유재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 (2) 복음뉴스 2022.04.13
169 [유재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 (1) 복음뉴스 2022.04.13
168 [김경수] 상처 입은 성격 드려다보기 복음뉴스 2022.04.13
열람중 [이종식] 앞날을 바라보며 청년들을 일으켜야 한다 복음뉴스 2022.04.13
166 [박인혜] 새해 복음뉴스 2022.04.13
165 [송호민] 신자의 삶의 목적 복음뉴스 2022.04.13
164 [조희창] 아버지가 마음으로 주신 기도문 복음뉴스 2022.04.13
163 [오종민]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사시겠습니까? 복음뉴스 2022.04.13
162 [김혜영] 새로울 것 없는 새해에 세우는 새로운 계획 복음뉴스 2022.04.13
161 [이민철] 메이첸 박사 저 『근대세계 안에 그리스도인 신앙』(1936)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는가? 복음뉴스 2022.04.12
160 [문갈렙]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복음뉴스 2022.04.12
159 [한삼현] 안식일에 합당한(lawful) 일이라! 복음뉴스 2022.04.12
158 [박시훈] 시선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복음뉴스 2022.04.12
157 [조원태] 해피 뉴 이어, 모세 형 복음뉴스 2022.04.12
156 [이선경] 이스라엘 백성처럼, 시온의 영광을 사모하자 복음뉴스 2022.04.12
155 [김동욱] ‘은혜’가 아닌 ‘법’이 판단의 잣대가 돼야! 복음뉴스 2022.04.12
154 [박인혜]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복음뉴스 2022.04.12
153 [배성현] 나의 남은 날 계수하게 하소서 복음뉴스 2022.04.12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