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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모] 잊지 않아야 할 것, 잊지 않았던 것

복음뉴스 0 2022.04.15 08:32

“조선 땅을 내게 주소서!” - 초기 선교사 편지에 담긴 이야기 ①  잊지 않아야 할 것, 잊지 않았던 것

글 : 조진모 목사 (전 합동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잊지 않아야 할 것 


혹시 기억력이 감퇴되십니까? 나이가 들면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건망증이 찾아옵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야 하는 현상입니다. 기억에 저장된 정보를 꺼내오는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누리려면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은 빨리 지워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현대인들에게 매우 필요한 조언이지요. 하지만 배은망덕(背恩 忘德)한 사람, 즉 타인으로부터 입은 은덕을 망각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날카로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질타를 겸허히 받아드리고 각성과 변화를 위한 거룩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해 볼 수 있는 명백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 어느 민족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한국교회 역사의 흔적 안에 그대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급성장을 경험하였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대형교회가 대거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이런 모습이 결코 자랑 거리가 될 수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목적과 방법이 중시되면서, 선교 초기부터 줄곧 한국교회에 자명하게 드러났던 ‘하나님의 일하심’이 망각되었던 것입니다. 하 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를 거부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의 종교적 성품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이 사실입니다. 단지 언제부턴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으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이끌고 가신다는 매우 중요한 신앙의 본질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한국교회의 역사는 서구교회에 비해 매우 짧습니다. 그것도 쇄국정책으로 인해 나라 빗장이 굳게 잠긴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국민들이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을 때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장시간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조선 땅을 향해 복음을 들고 찾아온 초기 선교사들 은둔의 나라의 형편을 살피며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100년 뒤의 한국 교회의 모습을 분명하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일을 펼쳐나가신 것입니다. 초기 선교사 들의 편지 속에 담긴 이야기가 이를 증거 합 니다.

 

잊지 않았던 것


초기 선교는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 니다. 의료 선교를 위해 중국에 갔다가 의사의 신분으로 조선을 찾은 미국인 호래스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이 1884년 여름에 입국하였습니다. 다음해 1885년 4월에, 잘 알려진 뉴저지 출신 장로교 선교사 호래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 와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가 동시에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그로 부터 2개월 후에 선교사이자 의사인 존 헤론 (John W. Heron, 1856-1890)이 내한하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요? 모두 20대 젊은 나이였다는 것입니다.

 

초기 선교사들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지에서 잔뼈가 굵어진 베테랑들이 아니었습니다.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삶의 경험을 통해 원숙한 단계를 경험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전파를 위해 인생을 걸 수 있었던 불타는 열정이 있었지만, 극도로 낙후된 오지의 열악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했습니다. 공동체를 이루어 사역을 하였기에 현장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의사 헤론은 몸을 아끼지 않고 환자를 돌보다가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아내와 2명의 아이들을 남겨놓고 눈을 감는 아픔을 경험해야 했던 것입니다.

 

1884년 10월 1일, 알렌 선교사가 서울에서 선교부에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조선인들은 굉장히 게으르고 더럽습니다. 중상류층이 흰 도포와 큰 챙이 있는 갓을 쓰고 여유있게 활보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깨끗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입니다. 조선 인들은 할수만 있다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들이 일을 끝마칠 때까지 계속 일을 하도록 시키자면 이곳 외국인들이 보통 애를 먹는게 아닙니다.” 10월 8일에 부산에서 기록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우리는 쌀과 약간의 과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소고기는 많지만 질이 나쁩니다. 그들의 도살 방법에 문제가 있고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한 황소와 암소들만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채소는 없어서 저희가 재배해야 합니다. 질이 좋지 않은 감자들이 남쪽에서 자라지만 이곳에는 팔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 심지어 우유조차 상해나 해외에서 가지고 와야 합니다.”

 

초기 선교사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부족을 이겨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조선땅에 보내셨고 영적 황무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실 것이라는 신앙적 확신이 있었습니다. 특히 1884년 12월, 갑신정변에 자객의 칼에 의해 큰 상처를 입은 민영익을 정성을 다해 치료한 결과 알렌에게 사역의 문이 열리게 되었는데, 이 일은 젊은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85년 6월 26일, 헤론 선교사가 가장 먼저 선교부에 보낸 편지에 매우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놀랍습니다. 알렌 의사가 적절한 시간에 와서 그 부상 당한 사람 (민영익)을 성공적으로 치료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역의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사역의 성공은 이 나라에 견고한 선교의 기초를 설립하고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인 것 같습니다. 아직은 공공연하게 우리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지만, 복음이 서서히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면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초작업임 을 잊지 않았습니다. 조선 땅을 찾은 목적을 항상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단지 저는 의료 기술을 실습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의사 (예수)를 전해야 하는 저의 사명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하여 죽으신 진실한 구세주를 전파하길 갈망합니다. 우리는 하루 평균 60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합니다. 먼 지방에서 올라와 진료받는 환자들도 자주 있습니다. 일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기 선교사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흘렸던 눈물과 땀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기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로 부터 받은 은혜를 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지요.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잠시 고민해 보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기억하며 찬사를 보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조선 땅을 향해 지녔던 마음의 소원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일까요? 그들이 사역 현장에서 항상 잊지 않았던 하나님의 섭리를 함께 인정하고 은혜를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견고하게 서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향후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단할 때입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눈물겹도록 최선을 다해 사역 하였지만, 그들 뒤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청사진에 맞추어 차근하게 일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5-6)” 초기 선교사님들의 삶을 통해 큰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편집자 주 : 2022년 2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9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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