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이야기 ③ ‘4분 33초’
글 : 이선경 (퀸즈프리칼리지 지휘자)
이 곡은 미국 현대 작곡가 존 케이지가 (John Milton Cage Jr.) 1952년에 작곡한 곡으로 연주 시간은 4분 33초이다. 이 곡은 소리를 매개체로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데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케이지는 ‘4분 33초’ 를 공연하면서 연주자는 연주를 하지 않고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가 각각의 악 장마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는 연주 행위로 연주는 끝난다. 과연 소리 없는 연주는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
쉼표의 가치
‘ 4분 33초’ 작품에는 소리를 표현하는 음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쉼표만 존재한다. 쉼표의 상징적 의미는 소리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숨 쉬고 필요에 따라 퍼즈(pause)를 하는 것이 쉼표의 통념적 인식이다. 쉼표의 기능은 멈출 줄 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저명한 작가 안토니 스토르(Anthony Stirr)는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영적, 정서적으로 충분히 성숙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 한일은 멈춤과 침묵과 고요함 속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찬양의 지속성에는 음표(note)의 기능보다 쉼표(rest)의 기능이 우선이다. 수 많은 음표들 사이의 쉼표는 그 다음에 오는 새로운 멜로디와 화성을 준비하는 기능이다. 소리를 소리로, 찬양을 찬양으로 창조해 내는 바탕에는 소리로 표출되지 않는 쉼표의 미학이 담겨 있다. 쉼표는 멜로디와 가사, 화성에서 오는 음악적 텐션(tension)을 이완시키는 기능을 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라’
홍해를 눈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진도 후퇴도 못하는 사면초가의 상태였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대적하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았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은 “ 이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 가는 것이 더 낫겠다”라고 들고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입을 빌려 백성에게 “너희는 잠잠하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 장 14절)고 말했다.
하나님이 두려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잠잠하라, 가만히 있을지니라’ 라고 말씀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범사에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으로 분명히 이끄신다는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실패가 없으신 분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었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형성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신앙의 현실에서도 많이 목격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우리 신앙의 전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고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증거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귀 기울이는 신앙
시편 37편의 기자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고 말씀했다.” (시편 37:7) 침묵의 힘, 기다림의 힘, 그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멈춤에서 나온다. 킹 제임스 번역에는 ‘잠잠하고’의 어원이 ‘쉰다’(rest)는 개념이다. ‘쉰다’는 것은 ‘조용히 멈춰 기다린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려면 주변의 소음과 인간의 말을 멈추고 고요한 중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멈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찬양을 부를 때가 있고 찬양을 멈추어 기다려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급하고 어려운 때 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잠잠히 참아 기다리는 멈춤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멈춰 기다리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깨닫기 위하여 그 분이 말씀하실 때 까지 잠잠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만 집중하고 그 분만 바라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신앙의 내적 고요함은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때를 기다린다는 전적인 신뢰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쉼표가 가지는 영적 의미이다.
그러면 어떻게 잠잠해야 하나?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잠잠히 멈출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침묵함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 앞에 어떤 반응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깨닫게 된다. 침묵이라는 것은 단순히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심령이 하나님 앞에 귀 기울이는 것이 침묵이다. 깊은 침묵 속에서 솟아 나오는 간구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침묵의 영성은 개인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유익을 준다. 하나님 백성들이 서로 하나가 되는 역할을 하는데 있어서 침묵의 영성은 필수 불가결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 앞에 잠잠할 때 모세와 백성이 하나가 되었다. 백성과 백성 사이에 원망과 불평과 불신앙이 사라지고 평안과 믿음을 회복한 거룩한 공동체가 되었다.
시편 37편을 기록한 다윗은 침묵의 기도를 사랑한 하나님의 종이였다. 다윗은 들에서 홀로 양을 치고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헤메고, 원수들에게 에워싸여 있을 때 침묵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웠다. 시편 37:5-7절에서 다윗은 이 사실을 고백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불안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 바다 앞에 섰던 모세도 침묵 기도를 사랑한 종이였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혼란한 세상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침묵과 멈춤의 영성을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케이지의 ‘4분 33 초’의 상징적 의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잠잠하라, 침묵하라’라는 영적인 의미가 서로 일치될 때 음악의 기표과 언어의 기호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게 될 것이다.
[편집자 주 : 2022년 3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0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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