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13
제목 : 은혜와 의리
글 : 김혜영 목사(RN @Jaisohn Medical Center)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의리와 배신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드라마와 영화는 우리의 삶을 모델로 하기에, 우리 인생 속에 의리와 배신이 다양한 형태로 부모 자식 사이에, 형제사이에, 부부사이에, 이웃 관계에 크고 작게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기 당함’ ‘뒷통수를 맞았다’라는 말은 의리가 지켜지지 않았음을 함축한다.
고사성어나 속담에서 ‘의리’는 사람을 사람답게, 함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의 하나로 제시된다. 사전적인 의미로서 ‘의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라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서로 간의 약속을 지키고, 상대방을 위해 좀 손해 보기도 하고, 상대방을 위해 내 것을 선뜻 내놓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전체보다는 개인을, 타인보다는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의리는 실리에 밀리는 추세다.
성경 속 히브리어 ‘헤세드’는 은혜 (긍휼, 자비, 인자)를 의미하는 단어이며 에메트(진리)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진리의 본질을 담고 있다. 헤세드는 ‘하싸드’라는 사랑하다. 연모하다. 자비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되었고 (하나님의) 열심, 친절, 은혜, 인자, 자비, 은총, 시기, 질투, 긍휼을 의미한다. 헤세드는 일반적인 은혜와 자비, 긍휼의 의미도 있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은혜,자비,긍휼을 의미한다. 히브리어 ‘헤세드’가 품고 있는 뜻은 다양한데, 나는 ‘헤세드’를 ‘의리’라는 단어로 함축해 말하고 싶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 대한 삼위하나님의 의리’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우리를 만드시고 모든 것을 주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베풀어준 모든 것을 누리면서 그를 배신했다. 하나님을 떠났으면서도 여전히 그가 만드신 모든 것을 누리고 살면서도 좀 불편해지고 힘들면 불평을 하고 하늘을 향해 욕도 했다.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며 보이지 않기에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도 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 오랜 시간 조건 없이 한결같이 우리를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받고 있는데 우리는 의리 없는 사람이 되어 우리의 실리만 챙기며 하나님을 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父子有親君臣有義(부자유친군신유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하고 임금과 신하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가? 왕 되신 예수님께 우리는 얼마나 의리 있는 신하인가?
은혜를 잊으면 버릇도 없고 예의도 없고 지극이 이기적이고 의리 없는 인간이 된다. 은혜를 입었다면 그 은혜를 생각하며 의리를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명문 집어먹고 휴지 똥 눌 놈(의리를 저버리거나 법을 어기기 일쑤인 막된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이 혹시 나는 아닌가?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만만치 않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말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타인에게 적용하며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성품과 인격을 마땅하다는 듯이 여긴 채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기독교는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의 변화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내 속에 새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 있다면 반드시 성장이라는 모습 속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변화의 속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변화는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교회를 다니고, 유창하게 기도를 하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도,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변화가 없다면, 성품과 인격과 행동에 달라진 것이 없다면 그것을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한 분으로 족하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변하고 또 변해야 한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며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지금껏 살아 온 것이랑 다른데,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변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뒤통수치는 것 아닐까?
한 연예인이 ‘의리’를 외치며 다닌 적이 있다. 의리를 중시 여기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의리를 지켜야 하는 대상에게 도움을 요청받았을 때, ‘계산을 하지 않는다’. 그 도움이 내가 감당할 만한 것인지 따지지 않고, 하기로 마음 먹고 그냥 한다. 또한 ‘도울 때는 확실하게 돕는다’. 의리를 지킨다는 것은 나의 것을 내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리를 중시 여기는 사람들은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이것이 ‘손해라는 생각조차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의리는 ‘끝까지 간다’ 이다. 한번 의리로 맺어진 관계는 끝까지 간다는 거다. 여기에 시간적 한계나 내용적 한계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든 무엇이든 한다는 것이다.
교회공동체가 하나님께 마땅한 의리를 지킨다면, 나와 관련된 모든 관계 속에서 바른 의리를 지킨다면, 그 의리 공동체를 세상이 주목하지 않을까? 의리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드러나지 않아도 손해 보아도 행하는 것이다.
* 2022년 6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3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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