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유재도] 어떻게 예수님이 교사로 인정받으셨는가?

복음뉴스 0 2022.10.07 14:35

3 강 어떻게 예수님이 교사로 인정받으셨는가? (How was Jesus recognized as a Teacher?)

글 : 유재도 선교사

 

니고데모는 고백하였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3:2)

우리가 사람들에게 어떤 이름이나 직함을 붙이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묘사하던 많은 명칭들은 그분이 누구시며 사람들이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수님을 묘사하던 명칭들은 주님, 하나님, 구세주,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인자, 다윗의 자손, 스승, 임마누엘, 메시아, , 통치자,

먼저 나신 자, 말씀, 어린 양, , , 목자, 포도나무, 예언자, 섬기는 자등이 있다.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와 빈센트 테일러(Vincent Taylor)는 예수님께는 42가지의 이름과 명칭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래엄 스크로키는 예수님에게는 43개의 명칭이 있다고 말하였다.

찰스 스피어(Charles Spear)는 예수님에게 80 개의 명칭이 있다고 하였다.

비비 워필드(B. B. Warfield) 는 예수님은 95 개의 명칭이 있다고 말하였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한 예수님 명칭들을 많이 나오는 순서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Jesus) 615, 주님(Lord) 151,

인자(Son of Man) 80, 선생(Teacher) 70,

 

여기서 선생님(Teacher)은 헬라어로 다섯 가지로 다르게 표현되어 나타난다.

디다스칼로스(Didaskalos) 46

랍비(Rabbi) 14

에피스타테스(Epistates) 7

랍오니(Rabboni) 2

카타게테스(Kathegetes) 1

 

디다스칼로스(Didaskalos)

예수님을 선생님(디다스칼로스) 이라고 부른 경우를 누가 사용했는지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대적한 자들이 사용한 것은 - 12(9:11)

예수님께 관심이 있거나 중립적인 사람들이 사용한 것은 - 8(19:16, 3:2)

예수님의 제자 또는 추종자가 사용한 것은 8(1:38)

유대인이 예수님을 부를 때 사용한 것은 7

예수님 당시에 디다스칼로스는 언제, 그리고 누구에게 사용되었나?

지식, 또는 기술적인 재간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정규적으로 관계하는 사람. 즉 초등 교사, 개인 교사, 철학자, 합창 인도자에게 사용하였다.

 

그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왜 예수님을 선생(=디다스칼로스)라고 불렀을까?예수님의 사회적 기능, 즉 영적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인정함.디사스칼로스(명사형)는 디다스코(동사, “가르치다”) 에서 파생되었다.복음서 저자들은 가르치는 일이 예수님의 가장 뚜렷한 활동 가운데 하나였음을 밝히고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뛰어난 선생님으로 인정되었다. (4:23, 1:21-22, 4:15, 7:14-17)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4:23)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1:21-22)

 

네 개의 복음서를 보면 선생님이신 예수님은 어디에서 가르치셨나?회당에서 가르치셨다(9:35) -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가르치셨다(21:23)집에서 가르치셨다(5:17-18)마을이나 동네에서(11:1) - 가버나움, 갈릴리, 예루살렘, 유대와 갈렐리,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가르치셨다.산에서(5:1-2) -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호숫가의 배에서 가르치셨다(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거리에서(13:26) -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저녁 식탁에서 가르치셨다(5:29-31)무덤에서 가르치셨다(11:38-44)정원에서 가르치셨다(26:36-45)길에서 가르치셨다(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랍비(Rabbi)

랍비는 단 한번 군중들이 사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직 예수님의 추종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랍비는 나의 위대하신 분이란 의미를 지닌다.

랍비는 주로 선생들을 가리키는 존칭이었다.

랍비는 주종관계에서 주인을 높이거나 장인 제도에서 스승을 높이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칭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사역을 인정해서 그분을 선생’(디다스칼로스) 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존경심을 표현하는 단어인 랍비란 말로 예수님을 부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유대 사회에서 랍비는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식과 권위를 인정받고 존경받는 높은 위치에 있었다.

랍비에게 보내는 존경심은 부모에게 보내는 것을 능가했다. 이같은 존경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근접하였다. (만약 아버지와 랍비가 포로가 된 경우에는 랍비를 먼저 구출하였다.)

그 당시에 지식적인 면의 어른나이 면에서 어른보다 더욱 존경을 받았다.

랍비에게 다투거나 그에게 투덜대는 것은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과 같은 죄였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부친보다 선생을 더 존귀히 여겼는데 그 이유는 부친은 인생을 주었지만 선생은 영생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비록 예수님은 전문적인 율법학자는 아니었지만 존경받는 선생으로서 랍비이셨다. (Though obviously Jesus was not a professional scribe, he was a rabbi, a respected teacher.)

예수님이 가르치신 방식은 여러 면에서 랍비들의 교수 방법과 흡사했다.예수님은 소그룹으로 편성된 제자들을 거느리셨다.모든 유대 랍비들은 자기가 훈련시킨 소그룹으로 편성된 제자들을 거느렸다.예수님은 랍비들이 그랬듯이 율법을 존중하셨다.예수님도 랍비들처럼 회당에서 가르치셨다.예수님은 가르치실 때 랍비들이 그랬듯이 자주 앉으셨다.예수님은 랍비들이 그랬듯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셨다.예수님은 랍비들처럼 격언들과 간결하면서도 기억하기 쉬운 말씀으로 가르치셨다.예수님은 랍비들처럼 자신의 가르침과 행위들을 성경으로 입증하셨다.랍비들은 종교적인 문제들을 놓고 서로 토론했다. 예수님은 성경에 대한 여러 해석과 구두로 전해지는 전승들을 놓고 반박하셨다.랍비들은 율법의 권위자들로서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품행과 교리에 관한 상담을 해주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 랍비들은 법률가로서 법적인 논란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예수님은 종종 대중들에게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따로 설명해 주시기도 하셨다. 그런 것은 다른 랍비들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 당시 랍비라고 칭송받던 종교지도자들을 크게 책망하셨다. 왜 예수님은 그렇게 무섭게 책망하셨을까?

1. 그들이 보여주는 외식하는 모습(their hypocrisy) 때문에

2. 다른 이들에게 행하기 힘든 일들을 짐 지우는 모습 때문에

3. 그들이 재물에 집착하는 모습 때문에

4. 연회석상과 회당에서 거들먹거리는 모습 때문에

5. 업적을 이룬 랍비라고 대중들에게 칭찬받으려는 욕망 때문에

6. 연약한 과부들을 착취하는 동정심 없는 모습 때문에

7. 긴 기도를 통해 자신들의 종교성을 과시하려는 모습 때문에

 

예수님은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점이 전혀 없으셨다. 그 당시 랍비들과 예수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Differences between the Rabbis and Jesus)

1. 랍비들은 다른 랍비들의 가르침을 인용했다. 예수님은 스스로가 자신의 권위였다.

2. 학생들이 자신들이 배우기 원하는 랍비를 선택했다. 예수님은 거꾸로 가르치실 제자들을 선택하셨다.

3. 학생들은 랍비를 통해 자신이 배운 전승들의 제자였다. 예수님의 열 두 학생들은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

4. 랍비들은 계속 반복해서 가르쳤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완전히 암기하도록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쉽게 외울 수 있는 것이어서 제자들이 그것을 암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5. 랍비들은 종종 정해진 장소와 실내 공간에서 가르쳤다. 예수님은 많은 장소들에서 가르치셨는데 종종 야외에서 걸으면서 가르치기도 하셨다.

6. 랍비의 제자들은 여러 면에서 랍비들을 섬겨야 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다.

7. 랍비들은 예식의 상세한 부분들을 가르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예수님은 많은 상황들에 적용되는 폭 넓은 원칙들을 가르치셨다.

8. 랍비들은 세리들이나 창녀들 또는 여인들 및 아이들과 함께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예수님은 종종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

9. 랍비의 제자들은 훈련을 마치면 랍비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랍비라고 불리우지 말라 하셨는데, 오직 예수님만이 그들의 선생이시며 제자들은 서로 형제이기 때문이다.

10. 랍비들은 자신들보다 이전 랍비들의 전통들을 따랐는데 그 전통들이란 성경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었다. 예수님은 그 같은 전통들을 따르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이 사람들을 외식적인 생활로 인도한다고 반대하셨다.

 

랍오니(Rabboni)2번 사용되었다.

소경 바디매오에 의해 사용되었다.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10:51)

랍오니는 랍비를 높인 말로써 나의 존귀하신 분또는 참으로 높이 여김을 받으실 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요한복음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에피스타테스(Epistes)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하여 6번 사용되었다. 그리고 열 명의 문둥병자들에 의하여 1번 사용되었다.

오직 누가만 예수님께 에피스타테스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주인또는 지도자라는 의미가 있다.

고전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가축 무리를 지키는 자, 코끼리를 부리는 자, 공공 사업을 조사하는 자, 체육계의 지도자, 음악경연 대회의 지도자, 고위 관리, 도시 행정관 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카테게테스(Kathegetes)

오직 1번 사용되었다.

마태복음 2310절에 지도자라는 말로 나온다.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진리와 바른 행동으로 인도하시는 지도자란 의미를 지닌다.

 

다같이 생각할 점

사람들은 당신을 선생님으로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겠는가?

당신은 예수님처럼 여러 장소에서 가르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누구에게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가?

유일하신 구주이시며 최고의 교사이신 예수님을 믿고 본받고 그를 따라가기로 오늘 다시 결단해야 되지 않겠는가?

 

* 2022년 9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6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열람중 [유재도] 어떻게 예수님이 교사로 인정받으셨는가? 복음뉴스 2022.10.07
361 [이민철] 진리 위에 세워진 삶 (2) 복음뉴스 2022.10.07
360 [김현기] 카메라 선택 복음뉴스 2022.10.07
359 [한준희] 알고 있어야 할 교회론 (4) - 교회가 가지고 있어야 할 방향과 성격 복음뉴스 2022.10.07
358 [조희창] 눈물이 멈추지 않아 혼났습니다 복음뉴스 2022.10.07
357 [오종민] 당신은 어떻씁니까? 복음뉴스 2022.10.07
356 [양춘길] 답사 복음뉴스 2022.10.07
355 [박시훈] 모든 상황 속에서 복음뉴스 2022.10.07
354 [김혜영] 그러므로 복음뉴스 2022.10.07
353 [김용복] 아들 옷 입은 아버지 복음뉴스 2022.10.07
352 [이철수] 치매 복음뉴스 2022.10.07
351 [박인혜] 차를 마십니다 복음뉴스 2022.10.07
350 [배성현] 내 영혼의 갈증 복음뉴스 2022.10.07
349 [임현주] 주님의 정원 복음뉴스 2022.10.07
348 [양희선] 알아야 믿지! 복음뉴스 2022.10.07
347 [김동욱] 바꾸어 주시고, 고쳐서 쓰시는 하나님 복음뉴스 2022.08.13
346 [강유남] 성전과 교회 복음뉴스 2022.08.13
345 [이종식] 목회 중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대하는 지혜 복음뉴스 2022.08.13
344 [이윤석] 예수님의 인격을 신뢰하라 복음뉴스 2022.08.13
343 [김정호] 한미수교 140주년에 영적동맹을 생각한다 복음뉴스 2022.08.13
342 [조원태] 갈렙 형에게 복음뉴스 2022.08.13
341 [김경수] 죄책감을 치유하라(2) 복음뉴스 2022.08.13
340 [조진모] 회심한 한 사람의 영향력 복음뉴스 2022.08.13
339 [유재도] 예수님은 과연 최고의 교사인가? 복음뉴스 2022.08.13
338 [정관호] 성도교제, 어떻게 할 것인가? 복음뉴스 2022.08.13
337 [한삼현] 다신교 숭배의 세계에서 유일 신앙 복음뉴스 2022.08.13
336 [이민철] 진리 위에 세워진 삶 (1) 복음뉴스 2022.08.13
335 [한준희] 하나님나라와 교회와의 관계 복음뉴스 2022.08.13
334 [김현기] 비디오 스위쳐에 대한 이해 복음뉴스 2022.08.13
333 [김혜영] 토끼풀을 뽑으며 복음뉴스 2022.08.13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