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공동체를 세우는 회의문화
글 : 양춘길 목사(필그림선교교회)
유대인들은 첫 투표에서 만장일치가 나오면 다시 회의를 해서 재투표를 한다고 한다. 꼭 필요한 의견충돌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서로 다른 의견을 놓고 경청과 질의, 반박과 논쟁, 설득과 이해의 과정들을 통하여 고려되어야 할 점들을 충분히 짚어 본 후에 최선의 결정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면 곧 감정적 대립으로 이어지고, 회의가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줄 모르는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고, 아울러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가 된다. 내가 내놓은 의견이 과연 최선의 것이요, 가장 타당한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여유 있게 토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토론하면 할수록 그 타당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인정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 그렇지 못한 면이 드러나서 수정되고 보완된다면 공동체를 위해서는 보다 나은 결론을 얻게 되니 더욱 바람직한 일이다.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몇 년 전, 처음으로 미국교회 교단 총회에 참석하여 회의에 대한 여러 가지 귀한 교훈을 얻었다. 우선 철저히 시간을 지키며,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한 총대가 긴급한 상황으로 인하여 총회 도중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에는, 미리 연락된 다른 총대가 와서 그가 돌아오기까지 대리총대역할을 하는 것까지 보았다. 자신이 관심 있는 안건토의에만 열심히 참여하고 그 외에는 회의장소를 겉도는 총대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여 충분한 토의과정을 거치는 것도 배울 점이었다. 분과위원회에서 토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을 본회의에 내어 놓을 때, minority report (소수의 보고서)도 첨부하여 제출하는 것을 보았다. 즉, 이미 다수의 결정이 있었지만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며 본회의에서 참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반대하던 사람들까지도 웃으며 함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다. 즉, 반대를 위한 반대나, 개인의 이익이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대립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토의였기 때문에 다수의 결정에 순복하며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덕스러운 모습이다. 물론 교회는 민주주의 이전에 신본주의를 따라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준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 준한 일을 추진함에 있어 제시되는 다양한 의견과 방법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다수의 의견을 따라 결정하는 민주주의적 회의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원으로서의 성실한 참여의식, 감정대립이 아닌 진지한 토론, 다수의 결정에 순복하여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아름다운 회의문화가 우리 한인 커뮤니티, 한인 교회 안에도 속히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우리는 민주주의적 회의문화를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 2022년 10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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