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알고 있어야 할 교회론 (3) - 하나님나라와 교회와의 관계
글 : 한준희 목사(뉴욕성원장로교회)
하나님나라에 대한 일반적인 신자들의 생각은 대부분 미래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을 하였었다.
미래적인 하나님나라나 현재적인 하나님나라나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교회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무슨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교회를 생각해 보자, 교회 건물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고 기도를 드리는 장소이다. 그 외에 교회 건물이 어떤 용도로 사용이 될까? 어쩌면 지역 사회를 위한 다중적인 공공장소로 사용이 될 수도 있다. 이 말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누이 강조해서 말씀드렸지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고 말씀을 드렸다. 즉 성도들의 모임이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 기도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 공동체가 교회이다. 그럼 공동체인 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교회 역할을 다한 것일까? 단호하게 아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와 찬양을 하는 것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이 된 그분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과 구원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행위가 예배이고 찬양이고 기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같은 지체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이라는 것이고 한몸을 구분해서 지칭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이고 우리는 그분의 머리와 함께 움직이는 몸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그의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그렇다면 머리는 몸에게 늘 지시를 한다, 몸이 움직이도록 머리가 명령을 하달하는 구조가 우리 육체의 구조이다. 우리 몸은 반드시 머리에 의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머리는 지시를 하고 몸은 움직여야 하는가? 바로 머리가 요구하는 수준까지 몸이 자라나도록 하기 위함 아닌가!
머리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자라야 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4:13) 자라나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수준까지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수준까지 자라날 수 있을까? 바로 그 자라남의 훈련장이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먼저 몸의 원리부터 생각해 보자. 몸은 머리를 축으로 하여 온몸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체들이다. 몸의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 작용을 하면서 몸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뜀을 뛰게 되면 양 발바닥과 다리가 조화를 이루면서 교체되어야 한다. 왼쪽다리가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오른쪽 다리가 먼저 나가려 하면 넘어진다. 조화를 이루어야 뛸 수 있다, 동시에 뛰면 폐의 호흡이 거칠게 된다. 피의 공급이 빨라져야 하고 다리, 심장과 머리까지 빠르게 순환해야 한다. 또 머리는 눈을 통해 앞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를 머리에게 알려주어 넘어지지 않도록 몸을 붙잡아 주고 귀에 달팽이관은 계속 균형을 잡도록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허리뼈와 다리뼈 관절 등이 탄력을 주도록 돕는다. 한마디로 온몸이 뛰는 몸에 집중되어 함께 움직이는 것이 몸의 구조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교회란 그런 곳이다, 예를 들어, 한 성도가 어려움에 빠져 자살을 생각했다면 머리인 예수님은 온몸에 이 사실을 알려주게 되어 있다. 즉 다른 성도들이 자살을 생각한 성도와 유기적으로 돕는 지체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재정적으로도 도울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그 자살을 계획한 성도를 살리기 위해 온 교회 즉 온몸이 서로 돕는 지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앞에 앉아 있는 성도는 사업이 번창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데 뒤에 앉아 있는 성도는 남편이 암으로 죽어가고 자녀들이 갱단에 들어가 있고 경제적 여유가 없어 굶주림에 울고 있는 성도와 예배를 함께 드린다면 그것이 한몸된 예배일까? 이 말은 예배는 우리가 한몸이 되었다는 공식적인 행사이기에 다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말씀을 받는 곳이지만 예배의 실제는 내 형제 자매가 울고 있다면 그 자매를 찾아서 위로하고 힘을 더해주는 곳,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고 서로 돕고 위로하는 삶의 예배 현장이 바로 교회라는 것이다.
만일 예배로만으로 교회의 역할을 다했다고 한다면 그 교회는 종교적 형태만 갖춘 교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나타난다. 반드시 정상적인 지체가 병든 지체를 돕는다. 그게 몸의 원리이며 교회의 원리이다, 있는 자는 없는 자를 돕고, 건강한 자는 병든 자를 돕는다. 이것이 하나님나라 원리이다. 공평의 원리인 것이다. 왜 나를 부하게 하셨는가? 그것을 은혜라고 한다면 그 은혜(공짜)로 받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자리에 가야 은혜가 은혜로 빛을 발하는 것 아닌가,
미국의 복지 정책이 바로 이 하나님나라의 원리를 적용하려고 하는 정책이다. 돈을 많이 번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여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정책,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사업이고 하나님나라의 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처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신 이후 즉시 시작하셨던 일이 바로 병든 자를 고쳐서 정상인 사람과 같이 살아가도록 하신 일이나, 부자들의 물질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도록 교훈한 일들이나, 모든 품꾼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마20:14)이라고 하신 이유가 다 균형을 이루려는 하나님나라의 원리인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탄생되었던 초대교회에서 가장먼저 했던 일이 무엇이었나?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으로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행4:32) 바로 하나님나라의 원리를 보여준 것 아니겠는가?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해 교회는 선교하고, 구제를 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한마디로 교회는 완전한 하나님나라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단체이고, 하나님나라는 이런 모습이라는 모델 역할을 하는 훈련장이란 사실을 잊어버리면 교회는 형식만 남아 있는 종교적 예배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
* 2022년 8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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