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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세샘트리오에서 음악 선교사로, 전항 목사

복음뉴스 0 2022.04.11 21:28

김현기 목사의 나의 인생 나의 노래 ⑦  세샘트리오에서 음악 선교사로, 전항 목사 (승리하는 교회)

인터뷰 및 정리 : 김현기 목사 (필그림선교교회 예배 및 미디어 담당)


Q.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항이구요, 세샘트리오의 리더로 잘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섬기고 있는 목사입니다.

 

Q.언제부터 음악을 시작하셨나요?


어려서부터 음악을 해왔어요. 경희대에서 성악을 전공했습 니다. 그러다가 연예인 생활 시작한 거는1962년도 일거예요. 1962년에 MBC 라디오가 처음으로 개국을 했어요. 그게 인사동 골목에 있었는데, 특채로 MBC의 전속가수가 됐어요. 그리고, 세샘트리오는 1977년도 쯤 시작을 하게 되었죠. 그러니까, 사실 거의 10여년 이상을 솔로 가수로 활동을 했던거에요. 한국 최초의 요들송 가수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먼저 요들송으로 노래를 하고 나서 김홍철이라는 가수가 스위스에 가서 요들송을 공부해와서 유명해졌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요들송을 안하고 주로 스탠더드 팝송을 주로 불렀습니다.

 

그당시에는 서울의 5성급 호텔 나이트 클럽에 주로 재즈밴드들이 연주를 했어요. 그 재즈밴드에서 보컬로 서게 되었던 겁니다. 미8군 무대에서도 활동을 했구요. 남진, 나훈아씨도 그 때 같이 활동했었구, 여자가수중에서는 김상희씨가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솔로 가수로 활동을 하다가 작곡가 길옥윤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길옥윤 씨는 패티김, 혜은이등 너무 유명한 곡들을 쓰신 작곡가시죠. 그러면서, 여자보컬 권성희씨와 기타치는 홍신복씨를 만나서 함께 세샘트리오를 결성해서 “나성에 가면”이란 곡을 받았는데, 정말 기대보다 훨씬 히트를 하게되었죠. 처음부터 완전 히트는 아니었어요. 그냥 국민 애창곡 정도였는데, 그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드라마에도 삽입되고 영화에서도 주제곡으로 쓰이고 나서는 완전히 국민가요가 되었습니다.

 

“나성에 가면”이후에 “영원한 사랑”, “오해야 오해”등도 탑텐에 들만큼 히트를 했는데, “나성에 가면”을 따라가기 힘들었죠.

 

Q.미국에는 언제 오셨나요?


사실 1985년도에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 당시 30 대 중반, 인생의 황금기였죠. 그런데, 팀이 깨지게 되면서 좌절감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병도 좀 앓고 우울증에도 빠져 있었어요. 요즘말로 공황장애같은 것도 있었구요.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이민을 한번 가보자 하고 떠난거죠. 파라과이에서 몇년 살다가 아르헨티나로 옮기고 또, 몇년 있다가 이곳 미국의 뉴욕으로 들어오게되었습니다.

 

Q.신앙 생활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제가 그래도 음악을 전공을 했기 때문에 세샘트리오 하면서도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했었어요. 저희 집이 여의도였었는데 제가 세샘트리오는 깨지고 또, 우리 아내가 보증을 서 가지고 엄청난 돈을 뜯기고, 그래서 제가 그런 병이 다 걸릴 수 밖에 없었어요.

 

내가 방황을 하고 막 좌절감에 빠져서 병을 앓고 이러니까 집 사람이 여의도의 순복음교회로 새벽 기도를 그렇게 다니기 시작했어요. 제가 밤에 일하고 이제 들어와서 이렇게 누워 있으면, 우리 집사람이 제가 깰까봐 살짝 손을 대고는 기도를 그렇게 많이 했나 봐요. 이 사람 노래 잘하는 건 하나님이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을 세상 노래 말고, 헛된 그 세상 노래말고, 제발 이 사람을 찬양 사역자로 좀 사용해 달라고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많이 했대요. 그때는 저의 상황이 정말 사면초가니까. 그렇죠 정말 기도 밖에는 할 일이 없었던 거죠.

 

저는 사실 그 때 신앙도 별로 없었어요. 교 회를 이렇게 왔다 갔다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제 아내가 여의도 성당의 신부님께 부탁을 해서 성당의 성가대 지휘자로 일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그런 경력이 쌓여서 이민을 와서는 계속 성가대 지휘자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것이 아니라, 아내의 계속적인 권면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저의 믿음이 성장하길 너무 바래서 신학을 공부하길 원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죠. 그러나, 결국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Q.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우리 집안이 대대로 내려오는 카톨릭 가정이에요. 그랬는데 저는 교회를 다니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다른 집안은 다 카톨릭인데 혼자 교회에 다녔는데, 거기서 우리 집사람을 만난 거예요.

 

청계천 2가의 수표교교회라고 감리교회인데 유명했던 교회죠 .아주 유서 깊은 교회인데 거기 성가대에 우리 집사람이 엘트 파트였고, 저는 이제 테너였는데, 성가대에 들어가자마자 그 지휘자가 날 솔로를 시키는 거에요. “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라는 찬송가인데, 가사중에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는 후렴이 있는데, 처음 솔로를 맡아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죄없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라고 노래를 한 거에요. 사람들이 막 크크 거리고 난리가 난거죠. 그때 집사람이 제 뒤에 바로 앉아 있었는데, 콕콕 찌르는 거예요. 가사를 틀리게 노래한 걸 알려준거죠. 덕분에 그일이 인연이 되어서 둘이서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둘이 결혼을 하려고 제 아버지께 허락을 받으려고 했더니, 너무나 반대를 하셨습니다. 사실, 모든면에서 처가집이 나았음에도 불구하 고 말이죠. 우리집은 가난 했지만, 그집은 그래도 웬만큼 살았고, 저는 경희대 성악과를 다녔지만, 집사람은 이화여대 영문과에 다녔고, 생긴 것도 굉장히 예뻤거든요. 우리 집사람이 모든 면으로 볼 때 나보다도 환경이 좋은데도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버지께서는 제가 미웠던 거죠. 자기 멋대로 교회다니고, 장남인데 아버지 말 안듣고 따로 노니까.

 

그렇게 반대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풀어 드리고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서 다시 카톨릭으로 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결혼식도 명동성당에서 올리게 되었구요.

 

Q.개인적으로 예수를 만나신것은 언제 인가요?


그렇게 결혼을 하고, 세샘트리오가 해체되고 나서 이민을 떠났는데, 파라과이 다음에 아르헨티나를 갔는데 한 며칠 지나서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왔어요. 자기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순복음교회를 다니는데 성가대 지휘자가 없어서 6개월 동안을 그렇게 기도를 해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마침 음대 나온 제가 여기 왔으니 잘됐다고 그래서 당장 순복음교회로 가자는 겁니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거절했는데, 며칠 있으니까 장로님에 목사님까지 다 오셔서 간청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집사람하고 무척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교회에서 아내를 만나고, 결혼하기 위해 다시 카톨릭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성가대 지휘자 하려고 개신교 교회에 나가는 상황을 저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니까 집사람이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지금 상황이 마치 광야같지 않느냐, 한국의 유명 가수에서, 파라과이로, 또 아르헨티나로 떠돌아 다니게 하시는데, 이제 다시 교회로 불러주시니, 우리 한번 이제 뜨겁게 신앙생활 해보자구 저를 설득하더라구요. 결국 그 말에 다시 설득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다시 새로운 신앙 생활을 하게 된 겁니다. 지난 세월 돌이켜 보면 그 때 정말 회개의 눈물을 많이 흘리고, 정말 뜨겁게 신앙 생활 했습니다.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각종 집회는 다 쫓아다녔죠.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던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십자가가 이렇게 나를 덮치면서 나를 감싸주는 그러니까 하나님이 저를 안아주는 그런 환상을 봤어요. 그래서 그 당시 목사님이시던 이정현 목사님한테 이게 어떤 의미인 것 같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때 집사였는데 “집사님 신학 공부하셔야 되겠네요”. 그분이 그런 계시라는 거예요.

 

그때는 마음에 와닿지 않더라구요. 그냥 그런가 보다 흘러버리고 말았죠. 사실은 그때 그 분 말씀을 진짜 절실하게 받아들여서, 하나님을 그렇게 영접하고 신학을 공부했더라면, 아마 내 인생에서 돌고 돌아서 뒤늦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무릎을 꿇게 된 그 세월이 아마 단축이 됐을는지도 몰라요. 그 일이 있은 후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내가 신학을 공부했으니까 말입니다.

 

Q.미국에 오시면서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음악학원도 하고 또 성가대 지휘도 하고 또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도 부르고 여러가지 일을 했죠. 뉴욕의 순복음연합교회의 성가대를 지휘했는데, 보통 부흥 성회를 목,금,토,일 4일 정도 하게 되는데, 밤에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과 겹치게 된 거예요. 그때만 해도 지휘자로서 믿음과 책임감이 별로 크지 않아서 교회의 일보다는 세상의 일에 더 집중하고 욕심을 냈습니다. 밤무대는 서고 지휘는 빼먹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셨겠어요? 채찍도 드시고, 또 호되게 혼도 냈습니다. 그 이후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 살게 되었고, 결국은 신학을 하게 만드시더라구요. 60살이 되어서야 신학교를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에서 음악목사로 초청을 받아 한국에서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Q.한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오신이유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쉽게 모든 일들을 풀어가지 않으시더라구요. 한국에서 교회를 섬기는 데, 미국에 있는 자녀들에게 어려운 일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국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미국으로 와서 자녀들의 일을 도와야 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의 아내는 저를 목사가 아니라 선교사로 헌신케 만들었습니다.

 

아내가 도미니카로 단기선교를 떠났는데, 그곳에 WGM 이라는 큰 선교센터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삼미그룹회장이던 분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곳인데, 그 선교센터에 음악 사역할 분이 필요하다고, 정말 번갯불에 콩 굽듯이 저를 그곳으로 오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아들 딸이 하는 사업이 어렵다고 해서 그걸 도우려고 한국을 포기하고 다시 미국에 왔는데, 이번에는 도미니카에 선교사로 지금 바로 오라고 하니, 그걸 쉽게 받아 들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제가 안간다고 하고 나서부터 아내와 전 다툼이 생겼습니다. 아내는 하나님 명령이니 꼭 가야한다. 저는 이런 오지 선교는 내가 목사로서 하는일이 아니다. 사실은 제게는 두려움이 너무 컸던 겁니다. 제가 너무 선교사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 한국에 절 불러주셨던 목사님께서 미국으로 오셔서 저희 집에 묵게 되었는데, 그분이 저를 설득하시더라구요. 결국, 그 분의 컨펌으로 도미니카 선교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제 아내가 한국의 목사님께 연락해서 SOS를 요청했더라구요.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길이었습니다.

 

도미니카에는 1년정도 머물며 선교활동을 했는데, 저희 부부가 번갈아 아프기 시작해서 치료차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덕분에 다시 나가지 못하고 있으면서, 음악이 필요한 작은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진짜 음악 선교사로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한국에서도 반주자가 없는 작은 교회들을 섬기며 선교여행을 했구요. 이제는 이곳 뉴져지로 와서 “승리하는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 다. 제 딸이 노래하고, 사위가 드럼을 치고, 제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주일마다 찬양을 올려 드리고 있고, 매일 새벽기도에 반주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오히려 가족이 섬기는 게 돼버렸네요. 상황이 그렇게 돼버렸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참 하나님 하시는 일이 정말 놀라워요.

 

 

Q.마지막으로 인생의 노래 한곡을 뽑는다면 ?


어려운 질문인데요. 사실, 아까 내가 불렀던 노래 있죠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찬양을 참 좋아해요. 왜냐하면 그게 기억에 남고,

또 우리 집사람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된 곡이어서요. 그렇게 틀리게 부르도록 한 것도 하나님의 인도라고 난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집 사람을 만나고 또 집사람이 그렇게 찬양 사역자가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그래서 내가 찬양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뭐 어쩔 수 없이 가끔 세상 노래를 부를 때가 있어요. 상황이 정말 내가 거절할 수 없는 그런 입장이 올 때는 노래하지만, 그게 그렇게 썩 즐겁지 않아요. 그냥 하는 거죠. 그러나, 찬양을 하면 지금 행복해요. 정말 그 음악용어로 하이피치라고 있잖아요. 그때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성령 충만함을 느낍니다. 찬양을 통해서 그걸 느낄 수 있고 그래서 감사하게 살고 있는 겁니다.

 

찬송가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lq9c6DWI4bw

 

세샘트리오 “나성에 가면” 

https://www.youtube.com/watch?v=IgG7RczxjlI

 

[편집자 주 : 2021년 12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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