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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훈] 12월에는 '수고했다' 말해주세요

복음뉴스 0 2022.04.11 06:55

박시훈 목사의‘쉼표’ ①  「12월에는 ‘수고했다’ 말해주세요」

글 : 박시훈 목사 9뉴욕함께하는교회)


대학에서 같이 신학을 공부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신입생 시절부터 붙어 다녀서 얼마나 친해졌는지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힘이 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워낙 친구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다 보니 친구 어머니나 여동생이 마치 제 어머니 여동생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분들도 저를 아들처럼, 오빠처럼 생각했고요. 어쨌든 지금은 세월이 흘러 그 친구는 LA 인근에서, 저는 뉴욕에서 각각 담임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친구와 제가 다른 누구보다 빨리 친해지고 또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목사님 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병상련’ 곧,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너무나 잘 이해했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 친구 가정에 어느 날 예기치 않은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에게 암이 발병했고, 2년여를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56세 한참 더 목회하실 수 있는 나이에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에 고난은 그것이 끝이 아닌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 년쯤 지나자 교회에 중직들이 어머니를 찾아와 교회를 떠나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유는 후임 목사가 불편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후임 목사가 목회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면 교회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어머니는 ‘교회를 위한 일이고,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말에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이자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목회 하고 죽는 순간까지 사랑했던 교회를 친구 가족은 반강제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충격과 상처가 컸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교회를 떠나고 난 후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치매는 해가 갈수록 심해졌고 그런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몫은 고스란히 친구 여동생의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 친구는 이미 미국으로 이민을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에 저는 그 친구 여동생과 계속 연락을 하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 가정이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마음이 너무나 아파져 오고 눈에는 눈물이 맺힙니다.

 

그런데 최근에 또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친구 여동생도 일을 해야 하는 터라 낮에는 치매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지역 시설에 맡기는데 그만 그 시설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급히 어머니도 검사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양성’이란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친구 여동생 역시 ‘양성’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며칠만 지나면 나가겠지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여동생은 젊어서 그런지 금세 회복되었는데 어머니의 회복 속도가 더딘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병원에서 생활한 지 한 2주 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은데요. 친구 여동생이 지금의 답답하고 속상한 상황과 마음을 글로 한탄하듯이 적어 SNS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곧 ‘기도하겠다 혹은 힘들지만 조금만 참아라’ 등등 위로와 격려의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렸습 니다. 그런데 수십 개가 넘는 댓글 중 유독 제 마음을 울리는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OO야 너 그동안 너무 수고 많았어. 지금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너에게 마음껏 쉬라고 주시는 선물이야” 분명 이것은 친구 여동생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읽는 순간 제 마음이 너무나 위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친구 가정에 불어 닥친 고난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특별한 것인 것 같지만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 가정들의 이야기입니다. 지나온 삶의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고난이 찾아왔던가요? 그것도 늘 예고도 없이 찾아와 삶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습니 다. 거기다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믿음을 저버리는 일들도 참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상처들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래서 이민 목회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저 마다 눈물 흘릴 수 밖에 없는 슬프고 가슴 아픈 사연들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고난과 상처에 주저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살아야 했고, 삶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양하고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일터와 가정과 삶의 자리에서 수고하며 살아왔습니다. 언제 발 뻗고 마음껏 쉬어 봤는지, 여행 가봤는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병원 좀 가봐야지” 했던 게 벌써 수개월, 수년이 지났습니다. 오히려 때론 쉬고 싶은 마음 억누르고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가서 수고해야 하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올 한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많은 고난을 헤쳐왔고, 수고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수고했다’라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아닐까요? 그래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나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공동체 속에 속한 이들을 향해 ‘수고했다’, 라고 말해주세요. 거기다 더해 ‘잘하고 있어’ ‘넌 최고야’라고 말해 주세요. 그들이 그 말 한마디로 인해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와 같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장 24-25절)라고 말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 때가 가까워지면서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삭막해져 갈 때 오히려 ‘이웃을 위로하는 일’과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것입 니다. 곧 위로를 전하는 일은 말세를사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역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장 15절)라고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대중가수 중 ‘옥상달빛’이란 듀엣이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 중 가장 인기 있는 노래가 ‘수고했어 오늘도’입니다. 가사 내용을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 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도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왜 이 노래가 인기가 있을까요?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위로가 ‘수고했어’라는 밑천도 들지 않은 말 한마디로 전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복음뉴스 독자 여러분들께서 이 글을 읽어 보실 때 2021년 12월에 남은 날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남은 날을 헤아리는 것보다 바로 오늘부터 하루에 한 명 이상에게 ‘수고했어’라는 위로의 말을 전하는 실천입니다. 그렇게 위로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를 통해서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즘 뉴욕, 뉴저지 교계를 볼 때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어디 가나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기에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습니다. 그저 작은 바람이 있다면, 목사님들께서도 12월은 다툼과 분쟁을 멈추고 힘든 이민목회로 지친 서로에게 ‘수고했다’ 말하며 위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 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그리고 실천해주세요. 

12월에는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을요.

 

[편집자 주 : 2021년 12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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