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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아버지의 사랑

복음뉴스 0 2022.04.11 06:30

특별기고 - 아버지의 사랑 (눅 15:11-24)

글 : 김종훈 목사 (뉴욕예일장로교회)


성경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아마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일 것입니다. 어느 부자집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큰 도시로 나가 허랑방탕하게 지내다 거지꼴이 되었습니다. 살 길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체면이 없어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 받아달라고 애원할 마음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반갑게 맞아 종이 아니라 아들로 다시 받아 주었습니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 왔다고 아버지는 오히려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성경에서 비유는 하늘에 속한 영적인 진리를 이 땅의 상황을 빌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비유의 영적 진리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참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유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 자유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이 한계가 없으면 자유는 방종이 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간섭이 싫어서 한 번 마음껏 즐기면서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모른는 것이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물 안에서 자유를 누립니다. 물 밖으로 나오면 죽게됩니다. 기차는 철길 위에서 자유를 누립니다. 철길을 벗어나면 큰 사고가 납니다. 나무는 뿌리와 붙어 있어야 삽니다. 뿌리에서 단절된 나무는 결국 말라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에 그는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것은 결국 죽음의 길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참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사랑을 그리워하며 삽니다. 그 사랑을 찾기 위해 방황을 해 보기도 합니다. 노래를 불러 보기도하고 시를 써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결국 그림자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림자는 해가 떠야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는 돈이 있어야 친구도 생깁니다. 외모가 아름답고 건강해야 애인도 생깁니다. 그런데 구름이 끼어 해가 가려지면 그림자는 없어집니다. 돈 떨어지면 친구도 떠납니다. 건강과 외모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애인도 떠납니다. 남겨진 것은 고통과 허무 뿐입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처럼 아플수록 더 안타까와하는 사랑입니다. 집을 나갈수록 더욱 그리워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사랑입니다.

 

셋째, 아버지 집을 떠난 결과는?


아버지 집을 떠난 둘째 아들에게 인생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먹고 살기 조차 어려워졌습 니다.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죽음의 두려움이 몰아쳐 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자존심도 다 포기하고 유대인에게는 경멸의 직종인 돼지 치는 곳으로 갔습니다. 자유를 찾아 아버지 집을 뛰쳐 나왔지만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종이 되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조차 먹을 수 없었던 존재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탕자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이 이야기는 사랑과 희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과 절망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핵심이 남아 있습니다. 그 핵심은 방향 전환입니다. 그가 인생의 바닥에서 아버지 집을 다시 기억한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 집을 다시 기억한 것은 돈이 떨어졌을 때였습 니다. 건강이 약해졌을 때였습니다. 친구가 떠났을 때였습니다. 자존심마저 다 무너졌을 때 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집에서는 하인조차 지금의 자기 형편보다 낫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고 하인의 하나로 써달라고 부탁하리라는 마음으로 돌아 갑니다. 왠일입니까? 세상의 문은 다 닫혀 있었는데 아버지 집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잃은 아들 다시 찾았고, 죽은 아들 다시 살아난 기쁨 외에는 아무것도 없 었습니다.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 가리라”

 

인생의 위대함은 회개에 있습니다. 나간 자식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인생의 위대함을 자아 성취와 물질 문명의 발달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이것이 인류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고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탐욕에 종이 되게 했습니다. 둘째 아들에서처럼 사랑과 정의에 흉년이 들게 했고, 하나님 주신 생명은 죽음의 길을 가게 했습니다.

 

고통과 절망 가운데 희망의 소리가 들려 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상상은 때로 우리를 진리가운데 인도하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제가 중간에 서 있고 제 양편에 각각 한 명씩 서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제 왼 편에 계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제 오른 편에 계신 분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합시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저는 중간에 서서 한 손으로 오른쪽 사람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왼쪽 사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온른쪽 사람과 왼쪽 사람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을 다시 연결시켜 주신 분이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희생시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을 삼으신 사랑입니다.

 

19세기 미국에서 부흥운동을 크게 일으키신 무디(D.L. Moody)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 번은 스코틀랜드에서 전도집회를 인도했을 때 였습니다. 집회 후에 한 소녀가 구원 문제로 고민하다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설교를 듣고 용기를 내어 강사 목사님께 갔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나는 구원받을 자격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배운 것도 없고 얼굴도 예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까요? 나는 돈도 없고, 건강도 없습니다.그래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까요? 무엇보다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지 못합니다. 이래도 구원받을 수 있나요?” 무디 목사님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 그렇다. 하나님은 네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신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사랑의 증거란다.”

 

옆에서 이 감동스러운 광경을 보고 있던 찬양대원 해밀톤 여사(E. H. Hamilton)가 가사를 쓰고 무디 목사님을 도와 음악 사역을 한 생키 (I. D. Sankey)가 곡을 쓴 찬송가가 우리 찬송 가 214장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아 주소서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아 주소서"

 

12월은 성탄의 계절입니다. 하나님은 잃어 버린 자녀를 찾으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태초에 계시던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어두운 인간 역사 속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그가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둠이 변하여 빛이 되고, 미움이 변하여 사랑이 되었습니다.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죽음이 변하여 부활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우리 삶의 환경도 우리 마음도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우리의 어두워진 마음을 밝힐 빛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친 영혼을 소생시킬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이야말로 탕자의 귀로의 시간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 갈 시간입니다. 잃었던 신앙을 다시 회복할 시간입니다. 이 사랑의 빛을 증거할 계절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편집자 주 : 2021년 12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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