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첸 박사 『근대세계 안에 그리스도인 신앙』(1936) - 현재의 비상상황과 그것을 해결하는 길
글 : 이민철 목사 (맨해튼성도교회)
소개 앞으로 18장 주제로 J. G. 메이첸(John Gresham Machen, 1881-1937)) 박사의 글, 그가 죽기 1년 전(1936년 1월 1일 출판), 55살 때, 필라델피아 WIP 라디오 방송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인 『근대세계 안에 그리스도인 신앙(The Christian Faith in the Modern World)』(William B. Eerdmans Pub, 1936)을 살펴볼 것입니다. 세계대전이라는 상황 속에서 복음을 지킨 그의 글(書)과 말(言)은 21세기 모든 미디어에서 각자 자신마다 소중한 복음( 福音)을 외치는 이 세대에, 성경말씀은 믿음의 기본(基本)이요 구원의 확신 가운데, 조금은 자신(自身)을 내려놓고 순종하며, 상대방의 복음의 소리도 글과 말을 통해 경청(鏡聽)하는 편안함과 잔잔한 울림! 성령님께서 인도하는 소중한 책 여행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사무엘상 3:9).
1. 현재의 비상상황과 그것을 해결하는 길 (The Present Emergency And How To Meet It)
먼저 내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할 것은, 나는 보통 오늘날 가장 시의적절(時宜適切)할 것이라고 간주되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금본위제(金本位制, gold standard)에 대해서는 또는 실직문제에 대해서나 전미총기협회(NRA) )에 대해서나 정부 고문단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하지 않는다. 혹시 여러분 중의 어떤 이들은 내가 말하는 어떤 내용들이 그러한 문제들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내가 이야기하려는 문제들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관해서 (about God)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unseen world)에 관해서이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매우 비감각적인 문제들에 흥미를 가지리라고 정당히 기대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아니오.”(No)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심한 긴박감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의 경제 체제가 무너진 것 같고, 다른 하나의 체제가 대치될 준비는 전혀 안되어 있다고 한다. 도처에서 실직(失 職)과 가난을 볼 수 있고, 거의 도처에 전쟁이나 전쟁 소문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곤경 속에서, 누가 그렇게 용기 없이 무덤 너머의 삶에 관한 의심스러운 사색들에 힘을 허비하겠는가라고 이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정돈한 후 저세상을 취급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주장한다. 먼저, 볼 수 있는 문제들을 용감히 취급하자. 그리고나서 우리가 그것을 해결했을 때, 우리는 그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일들을 취급할 기회를 아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과 많은 공감(共感, sympa-thy)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과 생각이 일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리어 나는 그들과 중심으로 불일치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이 말하는 것 속에 있는 진리의 요소를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이라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관심을 기울일 일들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확실히 사실이다. 만약 여러분이 리차드 E. 버드(Richard E. Byrd, 1888-1957) )와 함께 리틀 아메리카(Little America, 남극 탐험 기지) )에서 살고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정원 가꾸는 일에 좀 열중하라고 충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다른 장소들에 해당하는 것은 또한 다른 시대들에도 해당한다. 일상적인 시대에는 요구되는 일이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긴박한 시대가 되었다.
물론 세계대전(世界大戰)은 우리에게 수중(手中)에 있는 일례 (一例)를 제공하였다. 전쟁 때에는 사람들은 그들이 보통 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들과는 매우 다른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내가 모든 예들 중에 아주 변변찮은 예시로 내 자신의 한 예를 사용한다면, 나는 전쟁 전에 평화의 때에는 헬라어를 가르쳤으나 전쟁 때에는 작은 조제(調製) 식품점(delica-tessen store)을 경영하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든 노력이었다고 생각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더 유익한 일들 그러나 그들의 일상적인 직업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일들을 하였다. 긴박한 시대이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필요했던 일들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나는 비록 세계대전은 이제 끝났지만 그 긴박감은 여전히 크게 우리와 함께 남아 있다는 것을 아주 기꺼이 인정할 수 있다. 사실 그 긴박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예를 들어 내가 1918년 11월 11일 아침에 벨기에(Belgium)에 있는 셀트 강(Scheldt 江)가에 신헴 (Synghem) ) 이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면서 죽은 자들이 길 옆에 놓여 있는 것(the dead lying beside the road)을 보고 아주 최근에 적에 의해 점령당한 강 건너편의 장소들로 나갔을 때,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인간 생활의 불가피한 부분인 것처럼 보였 던 전쟁의 시끄러움이 이상하리만큼, 감동적인 믿을 수 없는 침묵(unbelievable silence)으로 대치되었던 11월, 그 달 아침의 이상한 평화에 대하여 찬양하듯이(gloried in the strang peace), 나는 그때 인류에게 허락(許諾, vouchsafed) 되었던 그 평화가 16 년 후에, 오늘날 우리에게 직면되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될 것이라고 나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고, 나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세상을 안전하게 만든다고 생각되었던 전쟁을 뒤이어, 러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도 민주주의와 자유가 공공연히 멸시를 당하고 과거의 난폭한 전제정치보다 여러 점에서 훨씬 더 짓누르고 살상적(殺傷的)인 전제정치로 대치되는 시대가 오리라고 나는 거의 생각지 못했다. 나는 심지어 미국에서도 우리의 가장 귀한 소유물이고 우리 선조들이 희생을 치르고 획득했던 시민적 종교적 자유(civil and religious liberty)가 오늘날 위협을 당하고 있듯이 위협을 당하리라고는 거의 생각지 못했다.
생각 있는 사람치고 우리가 중대한 긴박한 사태 속에 처해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서 오늘날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류가 끝없이 깊은 구렁텅이 위에 서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간에 생각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분명한 것 같다.
이러한 때에, 절박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이 세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모든 생각들을 점령하기에 아주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상한 일일까?
우리의 바로 눈앞에 있는 그 절박한 문제들이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밀쳐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일까?
이러한 태도를 가지는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항상 당신이 그를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그를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그에게 복음(the Gospel)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를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아니다. 그를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를 물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그의 귀가 소금물로 가득할 때 그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 복음에 귀를 기울일 수 조차도 없을 때 말이다.
당신이 그를 위해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은 - 비록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닐지라도 - 그를 물 밖으로 끌어내어 인공호흡 (artificial respiration)을 시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오직 그 다음에서만이, 당신은 그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for the saving of his soul)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따라서 인류 전체가 이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는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 혹은, 비유를 약간 바꾸어 표현 한다면, 인류는 진구렁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인류를 끌어내는 것이고, 이는 인류가 끌어냄을 받은 후 우리가 인류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해결하라고 요청할 수 있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그들은 주장한다. 교회로 하여금 그가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명백히 긴박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도록 하라. 그러면, 만약 교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세상은 교회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지라도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그럴듯한 추론이다. 그러나 그럴 듯하지만 전혀 잘못된 추론인 것이다.
첫째로, 이러한 추론이 제안하는 방안(方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먼저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인 긴박한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우선 우리에게 긴박한 문제를 가져다주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볼 수 있는 영역에 속한 어떤 것이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세상의 물질적인 자원들은 세상의 필요에 아주 충분하였다. 참으로 우리에게 비상사태를 가져다주었던 것(brought the emergency)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 속하는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 속에서 발견되는 악이었던 것이다(It was an evil that was found within the soul of man.).
이러한 악(惡, evil)은 처음에 생각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세계대전이 단지 독일 황제 카이저(Wil-helm II, 1859-1941) ) 나 독일의 군사무기의 죄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슬프게도 악은 이 보다 상당히 더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이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만약 이전에 우리에게 긴박한 문제를 가져다 주었던 것이 이러한 영역에 속한 것이었다면 오늘 우리에게 긴박한 문제를 계속 주고 있는 것은 역시 이러한 영역에 속한 것이다. 세계의 곤경(困境)은 분명히 인간의 영혼 속에(within the soul of man) 있는 죄악(罪惡, an evil)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면한 경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영혼의 그리고 영혼과 하나님의 관계의 영역을 무시하는 소위, 이러한 “현실적인”(practical)사람들은 아마 가장 비현실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을 보면 스파크(spark)가 생기지 않고 있는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하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여러분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자동차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솔린 유입량(流入量)이 풍부할지도 모른다. 아주 충분한 윤활유의 주유(注油)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점화장치(igni-tion system)에 이상이 있다면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나(메이첸)는 자동 시동 장치가 발명되기 전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가 아직 살아있던 그 영웅적인 시대에 무심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얼굴이 아주 붉어지고 신경이 아주 긴장될 때까지 자동차의 크랭크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나는 역학(力學)의 아주 복잡한 원리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나의 모든 노력과 나의 모든 기계적인 지식의 추구에도 불구하고 그 가련한 자동차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엔진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인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헨리 포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스위치를 켜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 안에(the human soul and in God) 관하여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이러한 현실적인 사람들도 그와 같다.
그들은 사회라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기 위해 열렬히 크랭크를 돌리고 있다. 그들은 그 기계에 대해 온갖 과격한 변화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잊어버린 작은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들은 그 스위치(the switch)를 켜는 것을 잊어버렸다. 엔진은 스파크를 일으키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스파크를 일으킬 때까지 움지이지 않을 것이다.
사실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의 비유는 사회의 악에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을 물에서 건져내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인 노력(勞力)이다. 그러나 사회가 현재 빠져 있는 구렁텅이에서 사회를 건져내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심히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간의 영혼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 기계의 신비스런 부분(mysterious portion of the mechanism)이 있다.
그러므로 먼저 현 시대의 사회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악들을 해결하고, 그 다음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해결함이 없이는, 여러분이 그러한 사회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전혀 취급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이 점에서 특히 내가 말하고 있는 바에 대한 오해를 피하기를 원한다. 내가 말한 바는 종교가 단지 그것보다 더 높은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내 말은 결코 하나님이 단지 현재의 긴박한 때에 우리에게 직면한 난관들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분으로 끌어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그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기독교의 중심 되는 사실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고 성경과 정반대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완전히 분명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종교를 단지 세속적인 목적들을 달성하는 한 수단으로 간주 한다면(아주 높고 고상한 목적들일지라도), 만약 여러분이 예를 들어 종교를 이 세상의 현재의 긴박한 문제를 해결하는 한 수단으로 간주한다면 여러분은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에 대해 아주 작은 암시조차도 가지기를 시작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은 이와 같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 있는 하나의 단순한 도구(道 具)로 결코 만족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과의 관계는“가장 중요한”일이다. 그것은 목적을 위한 하나의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그것에 대해 부차적인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직 내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진행 과정을 정하셨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물에 빠진 사람의 경우와는 달리) 보다 높은 목적이 달성되기까지는 보다 낮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기까지는 이러한 정치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들조차도 성공적으로 해결하기가 불가능하다. 아마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연기시키도록 압박하는 비상사태 (emergency)란 없을 것이다.
사실, 비상사태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시대의 죄악들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는 대신에, 우리를 그에게 인도해야 한다. 이 세상이 피상적인 관찰자에게 아주 만족할 만한 장소로 생각되었을 때가 있었다. 그것은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니었다. 그때에도 악이 있었지만, 그것은 가려져 있었다. 우리가 서 있었던 끝없이 깊은 구렁텅이는 현대생활의 즐거움들에 의해 숨겨져 있었다.
이 때가 우리가 있는 그대로 만족해야 할 때인가? 만약 인류가 끝없는 깊은 수렁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다시 취하여야 할 어떤 상실된 비결이 없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신중하게 질문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인류 전체에 해당하는 것은 또한 여러분에게도 해당한다고 나(메이첸)는 감히 생각한다. 세상은 오늘날 피로하고 복잡하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떠한가? 여러분은 현재의 생활로 만족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만족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어떤 이들은 불만족하고 있고,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가난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부자에게도 해당된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여러분의 특별한 상황과 별로 관계가 없다. 이와 같이 굶주린 영혼들에게 이 작은 연속적인 이야기에서 말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많은 굶주린 영혼들이 있다(there are many hungry souls today.).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말할 것이 있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종교의 전문가이기 때문인가? 그리고 내가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활의 문제들을 취급하는 데 돕기 위하여 위대한 지혜와 경험의 자원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인가? 내가 여러분 스스로 의지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의 영혼 안에 감추어진 자원을 지적할 수 있는 능숙한 영혼의 의시이기 때문인가?
만약 그런 것이 이 강연 프로그램이라면 나는 여러분이 더 이상 그것에 귀를 기울이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곧 말하는 것이 좋겠다.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더 학식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점에서 더 자질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방송으로”(over the air)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여러분이 나의 어떤 지혜 때문에 내 말을 들으리라고 기대할런지는 모르겠다. 나에 대한 지혜도, 나의 어떤 지혜 때문이라도, 나는 여러분이 내가 아주 담대히 제시하는 “나의 것”(mine) 의 어떤 의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단 한가지의 이유가 있다. 만약 내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a message from God)를 전달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만약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면, 말하는 사람의 아주 보잘 것 없음이 어떤 의미(意味)에서 여러분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데 부주적인 도움이 꼭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분이 그 말하는 사람을 잊어버리고 오직 그 메시지에만(only to the message) 주의를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메이첸)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나와 나의 의견들로부터 얼굴을 돌이키기를 소망한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의견들과 여러분의 어려운 일들로부터 얼굴을 돌이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시도록 얼굴을 돌리기를 또한 바랍니다. 내가 어디에서 그 말씀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것을 이 작은 이야기들 중 다음 이야기에서 말하려고 한다. 그것은 내 자신 안에서도 아니며, 여러분 안에서도 아니다.
오직 한 권(성경)의 옛날 책 안에서이다. 그 책은 선입관과 불신앙의 인들로 인(印)쳐져 왔던 책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재발견된다면, 그 책은 다시 세상을 불태울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혜롭든지, 어리석든지, 부자든지, 가난한 자든지 간에 여러분에게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줄 것 을 확신한다.
주석
존 그레샴 메이첸(John Gresham Machen, 1881-1937) : 메이첸 박사는 20세기 초의 미국 장로교 신학자이다. 그는 뉴저지 프린스턴신학교와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설립자였다. 전공은 신약학 교수였으며, 미국의 정통 개혁주의 신학과 개혁신앙 변증하는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 『근대세계 안에 그리스도인 신앙』(1936)은 1936년 1 월 1일 출판되고, 그 다음 해인 1937년 1월 1일 오후 7시 30분 경, 노스다코타 주(州)에서 늑막염이 악화되어 폐렴으로 56세에 소천(所天)함. 지금까지도 그의 학술 연구는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전미 총기 협회 : National Rifle Association.
리처드 에벌린 버드(Richard Evelyn Byrd, 1888-1957): 미국의 탐험가, 비행사이다. 해군 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에 해군 항공대 지휘로 북극 상공에 도달해 비행기를 이용한 최초의 북극 탐험자가 되었다. 1927년 뉴욕에서 프랑스 사이의 대서양 무착륙 횡단 비행에 성공하였다. 1928년 전 미국인의 후원을 얻어 대규모 탐험대를 조직해 뉴욕호로 남극 탐험에 나서기 시작하였고 그 해 12월 25일에 목적지인 남극에 도착하였다. 비행기로의 탐험에 성공하여 남극 지대의 지리, 기상, 자원, 해양에 관하여 과학적으로 조사하였다. 1956년 그는 지구 관측을 위하여 미국 남극 탐험대의 총지휘관이 되어 활약하기도 하였다. 해군 십자장(Hubbard Medal), 수훈 비행 십자장(Navy Medal of Honor), 의회 명예 황금 훈장(Patron’s Gold Medal), 훈공장(勳功章, Legion of Merit) 등을 받았다.
버드는 42살 때 그의 책 『리틀 아메리카, 남극의 항공 탐사(Little America, aerial exploration in the Antarctic)』 (G. P. Putnam’s sons, 1930)이 출판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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