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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년선교에서평신도의역할 - 강의 조진모 목사

조진모 목사 0 2021.05.2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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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실버선교회와 뉴저지실버선교회가 연합하여 진행하고 있는 실버선교훈련원 봄학기가 종강을 보름 정도 앞두고 있다. 

 

5월 17일에는 조진모 목사가 "한국기독교 100년 선교에서 평신도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다음은 조 목사의 강의 내용이다. 

 

I. 평신도란? - 그 다지 불편하지 않은 진실 

1) 성경

성경에는 평신도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언어적 근원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칭하는 ‘라오스’로서 집합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평신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lay’가 나왔다. 오늘날 사용하는 성직자/평신도 구별 개념은 성경 이후에 시작된 것이다. 

2) 고대 사회

고대 사회에서 교육을 통해 전문 지식을 가지고 사회를 주도하던 계층을 ‘클레로스“라고 불렀다. 여기서 성직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clergy’가 나왔다. 이때 ‘라오스’는 고대 사회에서 ‘클레로스’와 대조되어, 전문 지식이 없는 계층의 사람이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3) 교회 역사

초대교회는 신분적 상하를 구분하던 고대 사회와 달리, 안수를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를 기준으로 성직자/평신도 구별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중세교회를 지나면서 성직자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직주의에 반기를 드는 동시에,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이와 동시에 목회와 관련하여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하는 의미에서의 평신도/성직자의 구별도 강조되었다. 향후 이 구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등장하였으며 이로 인해 신생 교파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4) 한국교회

전통적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초기부터 성도들이 교회 지도자들, 즉 선교사 또는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풍토가 자리를 잡았다. 불행하게도 1980년대의 교회성장이후, 성직자와 평신도의 정체성과 기능에 대한 이해 차이로 인해 불미스런 일들이 간혹 일어나고 있다. 

 

2. ‘선교적 관점’에서 돌아보는 한국기독교 100년의 발자취 

1) 황무지에 복음 씨앗이 뿌려지다. 

영적 황무지였던 조선 땅은 오랫동안 선교 대상국이었다. 1832년, 독일인 선교사 칼 귀츨라프가 서해안 상륙을 청원했으나 허락받지 못했다. 1866년, 영국의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에서 순교를 당했다. 1884년, 미국 출신 의사 호러스 알렌 선교사가 미국북장로교 파송을 받아 입국하여, 고종황제의 어의가 되었으며 제중원의 전신인 광혜원을 세웠다. 1885년 4월, 최초 복음 선교사로 허락을 받은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펠젤러선교사가 함께 입국하였다. 

2) ‘네비우스 선교 전략’이 성공하다. 

19세기 말 한국에서 복음 전파 활동에 임하던 2, 30대 젊은 선교사들은 해외 선교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효과적인 선교전략을 위해 중국 선교사 존 네비우스의 선교 전략을 수용하였다. 자치, 자립, 자전이란 삼자원리에 입각한 선교지 교회의 토착화에 중점두었으며, 무엇보다 성경이 중심된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전반적으로 강조하였다. 

3) ‘선교적 교회’로 출발하다. 

1907년,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7명이 배출 되었다. 이들 중 이기풍목사와 한석진목사가 제주도와 일본 선교사로 각각 파송되었다. 1909년 2회 졸업생 8명 중, 최관홀목사가 블라디소스톡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1912년에 시작된 산동성선교는 40개의 교회를 설립한 뒤 1957년에 방지일목사가 귀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한 관심은 일제의 통치로 인해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도 계속되었다. 1900부터 1945까지 무려 255명의 선교사가 만주, 일본, 시베리아, 하와이, 몽고, 쿠바 등에 파송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4) 선교사로부터 자립하다. 

선교사들의 영향 하에 성장한 한국교회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그들로부터 자립하기 시작하였다. 장로교회는 공의회 주관으로 1907년에 첫 독립노회를 1912년에는 첫 총회를 개최되었다. 이 모임에서 언더우드 선교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였지만 다수 임원직은 한국인이 맡았다. 1915년 이후부터는 한 번을 빼놓고 줄곧 한국인 목회자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감리교는 1924년에 미국 남북 양 감리회가 총합하여 1930년에 첫 총회를 개최하였다. 남 감리교와 10년 후에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한 북 감리교 모두 반대 하다가 선교지의 특성을 인정하여 허락한 것이다. 전도에 전념하던 성결교회는 1921년부터 교회 체제로 전환하여 발전하다가, 선교사들의 감독권으로 인한 갈등이 해소되면서 1933년에 총회를 조직하였다. 처음부터 한인 총회장이 선출되었고, 얼마 후 선교사들로부터 교회 치리권을 넘겨받았다. 침례교회는 1906년 ‘대한기독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뒤 선교사의 철저한 감독체제 하에 놓여있었다. 1944년, 신사참배에 굴하지 않자 강압적으로 해체되었으나, 해방 후 남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재건한 후, 1948년에 미국 남침레회와 제휴를 맺기 시작하였다. 

5) 선교적 사명에 열정을 쏟다. 

6.25 한국전쟁 이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소수의 선교사를 외국에 파송하였으나, 한국교회는 전도와 교회 개척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에 크게 성장한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대한민국의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여 세계적 대국의 대열에 끼게 되었고, 정부의 외교 정책 신장으로 인해 이전보다 선교 환경이 수월해졌다. 선교단체 또는 개인이 중심되던 이전과 달리 모든 교단과 지 교회들이 선교 사명을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열정을 쏟기 시작하였다. 

6) 선교 강국으로 부상하다. 

선교 100주년을 넘은 한국교회가 미국교회에 이어 선교사 파송 세계 2위로 부상하였다. 놀라운 하나님의 일이다. 과거에는 국제 선교단체에 의존하였지만, 선교 경험이 축적되고 선교 분야의 지도자들이 배출된 결과 자생적으로 세워진 초교파 선교 단체에 속한 선교사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미국 이민교회 역시 그 동안 세계 선교를 위해 헌신하였다. 1986년 아시아선교협의회 4차 총회가 한인교회 후원으로 파사디나에서 개최되었으며, 1988년에 제1회 한인세계선교협의회(KWMC)가 시카고 휫튼대학에서 개최된 이후 성황리에 4년마다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 이전에는 목회자 출신 선교사가 주를 이루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안수 받지 않은 평신도 선교사들과 실버 선교사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3. 각 시대별 평신도의 역할 

1) 자생적 선교 

1885년, 최초 복음 선교사였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조선 땅을 밟았을 때, 그들은 손에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들고 있었다. 어디서 누가 번역하였을까? 수신사 수행원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불신자 이수정이 그 곳에서 복음을 받아드리고 거듭났다. 한국교회 선교를 위해 성경 번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한 그가 직접 번역 작업을 주도하였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김청송은 기독교 진리에 무지 하였으나 존 로스 선교사를 도와 한국어 성경 번역을 돕는 과정에 회심하여 선교사들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복음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기 전,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평신도선교사의 사명에 이바지함으로 한국교회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서상륜은 동생 서경조와 함께 황해도 장연군 송천에서 복음을 전한 결과 비밀리에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 결과 1883년에 한국 최초 개신교 교회인 소래교회가 자생적으로 설립되었다. 

2) 초창기 

초창기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배출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선교사들로부터 배우며 협력하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조사’는 신학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목회 활동을 하며 선교사들을 보좌하였다. ‘영수’는 교인을 대표하고 위치에서 ‘조사’를 돕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선교지의 특수성을 살려 ‘권사’와 ‘서리집사’가 제도를 도입하여 교회의 활성화에 이바지 하였다. 

한편 교회 밖의 평신도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사회에 건전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먼저 YMCA와 YWCA 등의 연합 청년 운동을 소개하자면, 청년 지도자 양성에 꿈을 지녔던 지도자들이 종교적 사업 이외에도, 목공, 인쇄, 철공, 제화 기술 등의 작업 교육은 물론 다양한 언어 교육과 체육 사역을 통해 조국 근대화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남존여비 사상에 의해 눌려있던 사회적 구도를 타파하고 여성의 지위와 인권을 향상시켜 사회적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이뿐 아니라, 19세기 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갑오개혁을 통해 천민신분 및 노비제도를 폐지하고 인신매매를 금지한 이후, 양반들이 교회를 함께 출석하던 하층 계급 신분을 신앙적으로 대하면서 신분 평등화 운동에 공헌하였다. 

3) 일제 강점기 

1905년 11월,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과 보호조약을 맺은 뒤 한국은 수교권을 빼앗겼다. 부패한 정부와 정치가들에 대해 실망한 백성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기독교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개인적으로 교회에서 영적 안식을 찾았고, 공동체적으로 애국 나라의 운명을 함께 염려하며 나라 구할 길을 모색하였다. 교회가 정치적 운동을 주도하지 않으면서도 민족 해방 운동의 요람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교회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하였던 기독교인들이 1919년 3.1 독립 운동을 주도하고 가담하였다. 이로 인해 민족의식이 도모되었으며 의식이 있는 젊은이들이 교회를 찾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38년 이후 해방까지 신사참배 강요로 인해 교회는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럼에도 각종 불이익과 순교를 감수하면서도 신앙을 지키려는 헌신적 태도는 사회 전반에 작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4) 공산 치하

1945년 해방 이후, 신앙적 자유를 찾은 교회의 관심이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하나는 지속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회개와 신앙의 갱신을 통한 영적 개혁 운동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남한 교회는 영적 운동에 보다 적극적이었으나, 북한 교회는 공산당 세력이 등장하자 교회가 이들에 대항하면서 사회를 위한 교회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 정당이 창당되기도 하였다. 이에 공산 정권은 1946년에 ‘기독교연맹’이란 조직하여 교회를 장악하고 내분을 시도하였다. 김일성 정부 지지를 거부하던 교회 지도자와 평신도들은 핍박과 순교를 각오해야만 했다. 

5) 근대화 시대 

1960년대 이후 근대화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남한 교회 내에 선명하게 상반되는 두 모습이 등장하였다. 하나는 전도와 교회부흥에 전념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었다. 특히 군사정권 하에서 이런 양분된 모습이 현저하였다. 그러나 교회 전체적으로 새로운 정신과 행동으로 잘 사는 나라, 힘을 지닌 나라로 성장해가야 한다는 계몽에 동참한 결과, 근면과 절약 그리고 도덕적인 삶을 신앙의 덕으로 이해한 성도들이 성실한 태도로 살게 되었다. 신앙인들 가운데 사업과 직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5) 현대 

1980년 이후 사회적 변화와 함께 수평이동이 용이해 지면서 대형교회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소재한 지역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개념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한편 교회가 사회를 향해 영향력을 행사하던 과거와 달리, 사회의 시선이 교회를 향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적 여론이 막강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사회 전반에 생겨나는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대처법은 물론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세상 여론의 도마에 올라가게 된 것이다. 교회 내에도 개혁을 주장하며 여론을 주도하는 그룹이 생겨나면서, 현재까지 교회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범위와 내용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4. 이 시대의 사회적 소임 회복을 위한 평신도의 역할 

1) 선행되어야 하는 질문을 기억하자: 나는 누구인가? 

사명에 불타는 성도들의 공통점은 가급적 속히 주님의 일을 완수하고자 하는 열정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급함으로 인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모든 주님의 일꾼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 

‘평신도’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이 있다. 각 개인이 ‘흩어지는 교회’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할 때 건물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신앙 훈련 받은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구별된 성도가 교회라고 말한다. 옳은 답이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개인의 삶으로 흩어지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세상 속에서 1주일 동안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한다.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으면, 1주일 동안 신앙의 축을 자신으로부터 멀리 둔 채 지내게 된다. 평신도는 성도들이 함께 모였다가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부터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주도해야 한다. 신앙인의 신분으로 교회로 모이듯, 흩어지는 교회라는 신앙인의 신분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성도와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다고 인정한다면, 개인적으로 흩어진 교회로 올바로 사는 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자의 삶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가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을 두시지만, 그가 ‘누구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을 섬기는 자의 마음의 본성을 살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각자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자! 

16세기 종교 개혁가들은 중세 교회가 범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교회의 개혁을 주도해 나아갔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였던 것 중의 하나는, 평신도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츠빙글리, 루터, 칼빈과 같은 개혁가들은 성직자의 신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였다. 그들은 평신도들에게 은혜를 받으면 무조건 안수를 받고 성직자가 되라고 권유하지 않았다. 물론 성직만이 거룩한 직업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성직자가 맡은 임무가 독특하듯, 각 개인 역시 그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독특한 방법으로 살아가도록 섭리하신다고 가르쳤다. 

평신도들은 성직자와 다르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신학과 목회에 대한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학과 성경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훌륭한 목회적 마인드를 지닌 평신도들도 있다. 즉, 개인의 실력을 두고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명 의식이다. 성직자는 자신의 능력이나 경험 정도면 어느 정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수를 받기 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직분이기에 그 소명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신도는 소명을 받지 못했다는 것인가? 아니다. 이미 종교개혁자들이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제시하였다. 소명의 적용이 성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신분이든지 하나님이 그에게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직분, 즉 장로, 집사, 권사, 찬양대, 구역장, 주차장사역자, 주방사역자.. 모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소명으로 나눠주신 것이다. 회사나 가게의 주인으로 운영하거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거나 상관없이 각자에게 소명을 주신 것이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게도 빈번한 해외 출장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아버지에게도 그 위치에서 가정을 세워가는 소명을 주신 것이다. 

유교적 문화에서 평신도가 성직자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신도가 성직자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다. 단지 소명이 다를 뿐이다.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매우 귀하게 여기신다. 이 세상이 다 지나간 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 직분과 직업에 상관없이 하나님 허락하신 소명에 충실하였느냐를 물으실 것이다. 모든 평신도들이 삶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될 것을 확신한다. 

 

3) 주님의 뜻을 밝히는 영적 촛불로 살아가자. 

역사적으로 교회의 타락은 남에게 무엇을 보이려 할 때 생겨났다. 아예 남을 의식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도 있지만, 지나치게 남의 눈과 의견을 의식할 때에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율법주의에 붙잡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쪼록 진정한 자유를 상실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에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의 태도를 지녀야 할까? ‘코람데오’, 즉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한다고 하면, 자신의 영적 상태와 신앙 행위에 따라 화 또는 복을 결정하시는 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코람데오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더하게 할 수도 있다. 이로서 더욱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코람데오’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자면, 전지전능하시며 세상의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현재 나의 마음 상태와 하는 일을 상세히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 또한 그러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에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서 분주한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 분의 마음과 생각이 머물러 있는 일을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게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소명을 주신 것으로 확신한다면,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하)”라고 하신 말씀이 지닌 적용적 의미를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셨다. 그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 빛을 드러내셨다. 특정한 일을 할 때만 자신의 빛을 꺼내어 비치신 것이 아니었다. 당장 이 어두운 세상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꾸준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였다. 

선교지에 가서 복음의 빛을 전파하는 소명을 지녔다면, 그 사명이 구체적으로 시작되기 전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시간과 장소에 국한하여 환한 빛을 밝히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가정과 주위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복음의 빛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즉 자신이 먼저 주님의 십자가 복음에 붙잡히고 성령에 충만하여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선교지에서 헐벗고 불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고 어떻게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자신을 향해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나는 현재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주위의 사람들과 복음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대상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주님께서 우리를 세상 속으로 보내셨다. 그 세상은 외국 땅을 포함하고 있지만, 내 자신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곳이 가장 먼저란 사실을 기억하자. 이 어두운 사회를 밝히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촛불로 살아가자. 주님의 영광스런 뜻을 드러내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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