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필자는 언젠가 중국 남부 운남성 곤명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서 믿음의 한 형제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로부터 150여 년 전, 자신의 고향에 영국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웠으며, 지금도 그때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말을 듣고 심히 놀랐다. 그리고 자신은 할아버지로부터 하나님과 기도, 성경에 대해 들었고, 몇 년 전 어떤 순회전도자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지금은 전도자로 헌신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아직 중국 변방에는 과거에 파송된 영국 선교사들의 행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며, 또한 때가 되매 복음이 다시 증거 되어 준비된 영혼들을 추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염두 해 두고 선교역사의 뿌리를 추적하면, 중국에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고, 그때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복음이 간헐적으로 전해진 루트를 알 수 있다.
18세기 전환기에 해외선교를 위한 여러 기관이 설립되었다. 1792년 침례교선교회, 1795년 런던선교회, 1796년 스코틀랜드선교회, 글래스고우선교회, 1799년 영국국교선교회 등이 설립되어 전세계에 복음이 증거 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18세기 말엽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서 감리교 부흥운동과 미국 1차 대각성 운동으로 인한 결과였다. 이미 1698년 기독교 지식 전파협회가 설립되었고 1701년 해외복음 전파협회가 설립되어 주로 영국 식민지에서 활약하였지만, 그러나 18세기 동안 경건주의 운동, 모라비안들, 감리교의 영향을 받아 이런 단체들이 속속 설립되게 되었다. 특별히 1792년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가진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 1761-1834)의 역할은 대단하였다. 그를 통해 선교가 조직적으로 시작되었고, 당시 젊은이들이 전세계에 나가 주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윌리암 캐리는 원래 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도중 침례교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는 당시 교사이자 제화공이었는데 태평양에서 캡틴 쿡이 발견한 새로운 세계에 관심을 갖고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소명을 받았다. 그가 그런 생각을 품었을 때, 주변에서는 극구 만류하면서 그만 두라고 했지만, 특정침례협회(후에 침례교선교회가 됨)를 설립하여 자신이 직접 선교사가 되어 인도 캘커타로 나갔다. 선교사로서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지만 개척자답게 2진으로 들어온 동료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성공적인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는 언어에 뛰어난 자질이 있어 그의 임종 때까지 35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19세기 초에 설립된 선교단체들은 실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따라서 런던선교회를 통해 중국에 입국한 모리슨를 비롯한 귀출라프, 토마스, 테일러 등 여러 선교사들은 그의 영향 하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단체가 한국에는 선교사를 거의 파송하지 않았다.
한편, 한국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건너왔다. 당시 미국교회는 D. L. 무디의 부흥권 안에 있었다. 앞으로 이 책에서 살펴보겠지만,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주님의 일꾼이었다. 학력과 배경도 열악하였지만, 그는 교회와 학교 안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선교의 중요성을 일깨어 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실제로 국내든 국외든 나가 주의 복음을 증거 하게 동기부여 하였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1816년 설립된 미국내지선교회가 있었고, 해외선교회를 위한 미국해외선교위원회가 1826년에 설립되기도 하였지만, 무디의 부흥운동 기간인 1885년에 미국 장로회선교부와 감리교선부에서 최초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한국에 파송하였으니 이 또한 한국에 대한 미국선교사의 역사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중국과 일본에도 일찍이 선교사들을 파송하긴 하였지만 한국선교가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한국이 1882년 미국과의 조약으로 개방되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개신교 전래에 대해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중국의 선교사들 가운데 우리가 함께 나눌 귀출라프, 토마스, 로스 등은 중국선교사지만, 한국과도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중국선교사로서 한국에 대한 애정과 사명으로 복음을 들고 들어와 전했는데, 이것은 한국선교를 위한 예비적인 사역으로서 한국교회에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은 명나라로부터 청나라 중엽까지 산업, 학문, 사상 면에 있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강희제가 등위하면서 통일제국을 이루었고, 사회를 정비하였다. 청나라 관제는 원나라와는 달리 만주인 뿐 아니라 한인도 인사에 등용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실행하였으며, 외교적으로도 서구열강에 문호를 개방하였다. 사실 영국은 1600년경부터 문호개방 요청을 하였지만, 거절한 상황이었다. 중국이 개방되면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입국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중국이 열강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영국은 아편을 인도에서 수입하여 중국에 수출 하였고, 중국에서는 아편 수요가 급증하자 중국정부가 조정에 나섰다. 그리고 아편매매를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영국 상인들은 계속하여 무역을 하였으며, 그러자 중국 정부는 1839년 광동에서 영국인들로부터 아편을 몰수, 소각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아편전쟁을 1840년에 일으켰다. 1841년 5월, 영국함대는 광동을 공격하였고, 광동이 함락하자 중국은 이에 굴복하고 광동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중국인들이 항의하자 영국은 다시 1842년 2차적으로 상해를 점령한 후에 남경으로 진격하였다. 이때 청나라는 1842년 8월 29일, 영국과 남경조약을 체결하고, 미국은 1844년 7월 3일 중국과 망하조약을, 프랑스와는 황포조약을 각각 체결하였다. 그리고 기독교 관련 5개 항구-광주, 복주, 하문, 영파, 상해-를 개항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해외 선교사들은 중국에 속속 입국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김동욱 500 닷 컴" 독자들에게 귀한 글을 먼저 읽으실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조경현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두 가지인데 아주 간단하다. 그간 필자가 초기 한국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가운데 만났던 초기 선교사들, 그들은 한국교회를 사랑과 진심어린 맘으로 섬겼던 분들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저의 존경스런 멘토였으며, 언젠가는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해 왔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나의 학위논문을 보완 출간하면서 이분들을 좀 정리하여 출간하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귀출라프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그가 두 번째 한국 선교항해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여 영국에서 출판했을 때, 젊은이들 가운데 도전을 받고 한국에 선교사로 온 이들이 있었으니 혹 이 책이 그런 도전을 주지 않을까,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집필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 책을 구상하면서 한 가지 중점적인 사항이 있었다. 여기에 소개되는 인물들이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가 였다. 자료의 한계로 모든 분들을 정확하게 추적할 순 없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10대에 주님을 만남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위탁하였고, 꿈을 가지고 기도하였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10대에 수련회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므로 목사가 되었으니, 일찍이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때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헌신할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의 일 할 때는 항상 쉬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은혜와 부흥이 심령가운데 계속 일어난다면 어떤 어려운 고비도 쉬 넘길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 책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신한다. 다시 말하면 초기 선교사들의 부흥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주님 앞에 이들과 같이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한없는 부끄러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실은 필자 역시 집필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두 번 이상 했으니까. 그러면서 나 자신부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책상 앞에서 다짐하고 또 결심하였다. 그런데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은 나의 의지와 결심이 아니라 성령의 임하심과 도우심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셨다.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한 인간은 연약하지만, 그 배후에서 일하시는 분은 강하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인물을 소개할 때마다 한 편의 시를 싣곤 하였는데,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먼저 사실에 충실하면서 교훈이 될 만한 사료들을 찾아내야 하고, 또한 글자 토시 하나하나 오자, 탈자 없이 정리하여 세상에 내 놓은 것은 인내와 집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다행이도 앞서간 선배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연구와 희생으로 비교적 쉽게 작업을 할 수 있었고, 그러나 글재주가 둔한 필자로선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따라서 사실 두려움이 앞섰다. 과연 책다운 책을 썼는가라는 생각과, 혹이라도 실수하여 이 분들의 행적에 누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감히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만일 그런 점이 발견된다면 그 모든 책임은 필자에게 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요즘같이 디지털 시대에선 오프라인 책이 그다지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쉽고 간결한 책이나 시청각 자료들이 인기가 많다. (중략) 또한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은 자료를 위하여 여러 차례 도서관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쾌활하면서 친절에게 대우해주신 장신대도서관 사서들과, 연세대도서관 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하략)
저자 조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