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논단

 

"선구자들" 14 - 자신을 바쳐 환자들을 돌본 헤론

조경현 0 2017.09.02 11:25

 

자신을 바쳐 환자들을 돌본 헤론

 

의료선교사로서 그는 알렌 다음으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그는 비록 짧은 인생, 사역을 하다가 주님의 품에 돌아갔지만, 자신의 명예가 아닌 주님의 맘을 가지고 한국교회와 한국인들을 위해 집중해서 사역하였다. 사실 제중원 사역을 하면서 사역과 입장 차이로 알렌과의 잦은 마찰이 있었다. 알렌은 정부와 관계를 중요시하였는데 병원 일보다는 그곳에 더 많은 관심과 신경을 기울인 듯하다. 헤론은 이것이 마음에 많이 거슬렸던 것이다. 이때 미북장로교 선교사였던 원두우의 중개가 있었지만, 결국 1890년 헤론이 소천하고 알렌은 사임하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하나님의 사람, 그는 너무 짧게 이 땅에 머물다 주님 품에 들어간 것이다. 이 땅에는 좀 더 길게 의료사역을 못하고 주님 품에 안겼지만, 그는 자신의 몸보다는 환자들을 위해 자신을 바쳐 사역한 거룩한 분으로 우리는 알게 된다.

 

헤론(J. W. Heron, 1856-1890) 1856 6 15, 영국 더비셔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길 원했으며, 1870 5, 14세에 미국 테네시주 녹스빌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1881년 테네시의과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할 때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영민하였고 1883년 최우등으로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테네시주 동부의 존스보로에서 병원을 개업하기도 하였다. 그는 탁월한 머리와 실력을 가지고 있어 모교로부터 교수직을 제의 받기도 하였지만, 의료선교사가 되길 위해 고사하기도 하였다. 헤론이 선교사로 결심하는 계기는 알렌으로 인해서다. 알렌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임하였을 때 의료선교사가 급히 필요 하였다. 왜냐하면 환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알렌은 미북장로교 선교부에 의료선교사 파송을 요청하였을 때, 헤론이 지원한 것이다. 주의 성령은 주의 일이 필요할 때, 적합한 인물을 감화시켜 결심하게 하신다.

 

사실 헤론은 알렌보다 한국에 더 일찍 내한할 계획이 있었다. 1884 4월 그가 뉴욕에 있을 한국에 선교사로 지원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문제로 1885 4 23일 존스보로의 동업자의 딸인 깁슨(Hartie E. Gibson)과 결혼 한 후에, 알렌 보다 늦게 1885 6 20일 제물포항에 도착하였다. 사실 그는 알렌보다 두 살 연상이었으며, 모교의 교수로 제의 받을 만큼 탁월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당시 뛰어난 의술로 그 이름이 잘 알려져 있었으며 특히 백내장 수술은 환자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1887 10, 알렌이 한국의 주미 초대 전권대신으로 본국으로 귀국하자 헤론은 알렌의 뒤를 이어 제중원의 책임자 및 고종의 어의가 되었다. 그리고 1886년 헤론은 정3품 벼슬을 얻었고, 1888 1 6일에는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오늘날로 말하면 차관급 정도)를 제수 받았다. 말하자면 그는 외국인으로서 벼슬에는 관심은 없었지만, 고종의 신의를 그만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어떤 면에서 헤론은 알렌보다 탁월한 의사로서 실력도 있고 나이도 연장자였으나, 다만 알렌이 한국의 온 선배 선교사였기에 헤론은 조심스럽게 알렌과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또한 알렌은 성격적으로 저돌적이면서 명예에 관심이 많았고, 헤론은 어떤 면에서 그와 정반대적인 기질의 사람이었으니 서로 맞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헤론은 영국태생 미국인이며, 아버지는 영국의 유명한 조합교회 목사였다. 용모 또한 알렌 보다 나아보였다. 기다란  속눈섭, 크고 빛나는 두 눈, 여인들이 보기에도 흠모할 만한 외모였다. 알렌은 헤론과의 관계에서만 갈등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 선교사들 간에도 그리하였다. 심지어 목사인 원두우 선교사와도 어떤 갈등이 있었다. 헤론이 미북장로회 해외선교부 총무인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에 그런 불편한 관계가 묻어난다.

 

박사님께서(엘린우드) 서울에 있는 모든 외국인들이 알렌 의사와 저와의 갈등을 알고 있는 것처럼 편지에 쓰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알렌 의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에 대해 말했는지 저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평판에 대해 확실히 편파적인 보고서들이 돌고 있었다는 것을 한동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론은 묵묵히 병원 일에 몰두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중요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은 알렌과 헤론 부부와 언쟁을 벌인 다음, 두 사람이 모두 서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렌이 먼저 자신이 부산으로 임지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였다. 선교부의 허락까지 받았다. 이때 헤론 부인은 알렌이 돈을 벌기 위해 부산으로 갈 계획이라고 소문을 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알렌은 사역에 환멸까지 느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 관계를 해결해 주시었다. 그것은 알렌이 한국의 상황을 잘 알므로 그가 서울주재 미국 공사관 서기관에 임명 된 것이다. 알렌은 1887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 격렬한 알렌과 헤론의 관계는 일단은 해결되었다. 알렌뿐만 아니라 헤론에게 있어서는 억압가운데서 참 자유를 얻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서울에서 환자를 돌보며 제중원을 맡아 운영하면서 이질에 걸리게 된다.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 헤론은 스크랜톤과 맥길 의사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1890 7 26, 오전 9시 남한산성의 외딴집에서 소천하고 말았다. 참 아까운 인재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가 32, 젊디젊은 나이였다. 그리고 한국에 온지 5년만의 일이었다. 헤론의 죽음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그의 죽음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가운데 최초의 일이었으며, 매장지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묘지를 얻으려고 정부에 신청하였지만 자꾸 미루다 불가능한 곳 두어 곳을 제안하였다. 이에 미국공사와 정부의 합의 하에 한국 정부에서는 조약에 따라 외국인들의 묘지를 서울 중심가에서 약 8키로 떨어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양화진에 허가를 내준 것이다. 헤론의 죽음 후 문제는 그의 부인과 아이들이었다.    

 

헤론과 깁슨의 사이에는 두 자녀, 장녀 안나와 차녀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미망인 깁슨은 두 아이를 홀로 키우려 하니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국을 떠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원산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독신 선교사 게일(한국 이름은 기일)을 만나 재혼을 하게 되었다. 이때 깁슨 서두르지 않고 망설이면서 주님의 뜻을 구했을 것이다. 게일은 30세 노총각이며, 자신은 두 딸이 있으며, 또한 게일보다 3살 연상이었으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깁슨은 1892년 게일과 결혼함으로 게일을 따듯하게 내조하였다. 게일에 대한 이야기는 차후로 다시 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배우자의 죽음이다. 헤론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주님의 품에 갔지만, 하지만 안타깝게도 깁슨 역시 1908 3 29,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말았다. 말하자면 헤론이 세상을 떠난 지 8년 만에 그녀 역시 남편 곁으로 간 것이다

 

헤론은 비록 짧은 한국에서 선교사로서 5년의 삶을 살았지만, 그가 이 땅에 뿌려놓은 것은 참으로 많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교훈은 첫째, 사람이 아닌 사람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섬긴 모습이 소중히 여겨진다. 그는 그런 모습을 후세의 우리들에게 보여 준 모범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두 가지 생각을 가진다. 하나는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믿음으로 맡겨야 하겠지만 또 한 가지는 자신의 몸도 주님이 주신 것이니 책임 있는 건강관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비록 알렌과의 마찰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주님께 기도하면서 인내했다는 점이다. 그의 일기를 보면, 알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하여 엄청난 인내력을 보인 것이 눈에 보인다. 그의 아내를 통해 우리는 남편이 다하지 못한 것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깁슨 역시 천국에 있는 남편이 그리워서인지 두 자녀를 이 땅에 남겨 두고 일찍 하나님 품으로 올라갔으니 주의 행하시는 일을 누가 알랴.



당신은 그렇게 일찍 갈 줄 알고

쉼 없이 환자들을 돌 보셨군요.

우리는 당신이 쉬엄쉬엄 일하길

원했는데,

당신이 너무 서두르셨지요.

알렌과 기질이 맞지 않아 얼마나

힘드셨나요?

우린 관계 속에서 참 어려움을

겪고 있답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걸. 왜 그리 힘든지

당신을 통해 배웠답니다.

기도로 상대를 사랑하면 주님이

모두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당신이 다하지 못한 일,

당신의 사랑스런 그녀가 모두 다

이루었지요.

당신은 너무 서둘렀어요. 그러나

당신의 기질인 걸 어찌 하겠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인걸요.

우린 그저 순종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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