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논단

 

"선구자들" 13 - 한 알의 밀알이 된 맥켄지

조경현 0 2017.07.31 17:07

한 알의 밀알이 된 맥켄지

 

필자는 한국 초기교회사를 연구하면서 맥켄지 선교사의 생애를 추적한 바 있다. 특히 그의 생애와 관련된 책이 <케이프 브레튼에서 소래까지, 엘리자베스 맥컬리 저서>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책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는 캐나다 독립선교사 자격으로 1893 12 12, 부산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두어 달 머문 후에 1894 2 3,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일명 소래)에 머물면서 황해도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어디에 있는지 열사병에 걸려 1895 6 23일 소래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생애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져, 특히 당시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에 공식적으로 세 사람의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맥켄지는 한국에 온 날짜로 계산하면 겨우 559, 소래에서 사역한 날짜는 313, 10개월이었지만 한국교회를 위해 한 알의 밀알로 쓰임을 받은 주님의 귀한 일꾼이었다.

 

캐나다 동북부 노바 스코시아주 케이프 브레튼이라는 조그마한 섬에서 윌리암 존 맥켄지(William John McKenzie, 1861-1895)는 스코틀랜드계 양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케이프 브레튼은 지형이 울퉁불퉁한 야생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버지 로버트는 빅토리아 미들 리버에 사는 스코틀랜드계 혈통과 신앙을 지닌 플로라 맥레와 결혼하여 6남매를 두었는데, 윌리암은 그 가운데 셋째였다. 맥켄지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체구가 크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 갔다. 그는 힘이 세고 운동을 특히 잘했다. 그는 조숙했기에 13세지만 성년처럼 보였고, 그의 고향 근처에서 교편을 잡음으로서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였다. 그는 19세가 되기까지 교편을 잡았으며, 이때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헬라어와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1888년 달하우지 대학을 졸업하고 곧 바로 핼리팩스 장로회대학(일명 파일힐 신학교라 함)에 입학하고 1891년에 졸업하였다.

 

그가 처음부터 한국에 선교사로 가길 결정한 것은 아니다. 핼리팩스 신학교에서 라브라도어 섬에 선교사역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준비모임을 갖게 되었을 때 그는 이 사역에 헌신하기로 작정하였다. 드디어 이 사역을 위해 일행은 출발하였고, 항해하는 도중 독서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맥켄지는 주로 선교사들의 전기를 읽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도전을 받은 것은 모페트라는 모라비안 선교사였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며 그린랜드와 라브라도어에서 사역을 감당하였는데, 그의 삶이 젊은 맥켄지에게 큰 도전과 영향을 주었다. 그의 18개월 동안의 선교여행에 대한 생생한 내용은 맥컬리의 책에 자세히 담겨있다. 그런 가운데 그는 돌아오면서 그리피스의< 은둔의 나라, 조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 선교사로 가길 희망하였다. 주의 성령이 그리 역사하신 게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캐나다에 좋은 목회지가 있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혼의 몸으로 한국선교를 위해 독립선교사 자격으로 입국하였다.

 

그가 한국에 도착한 때는 1893 12 12일에 부산항에 닿았다. 그리고 서울로 상경하여 선배 선교사인 원두우, 기포드 등과 교제를 나눈 후, 곧 바로 처녀 선교지인 황해도 소래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가 1894 1 9일이었다. 소래는 이미 서상륜, 서경조가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은 후 소래교회를 세운바 있지만, 교인들을 양육할 수 있는 목회자가 비워 있었다. 서씨 형제는 빌립보의 자주장사처럼 하나님이 준비하신 루디아와 같은 인물들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우상숭배와 불교와 유교에 심취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맥켄지를 배척하거나 비웃었으며, 맥켄지의 전하는 복음을 듣지 않으려 하였다. 맥켄지는 무지한 사람들의 보호자가 되어주면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소년, 시모님에 의해 쫓겨난 눈먼 며느리, 이제 겨우 14세인데 소년의 결혼 등. 이런 이들을 찾아가 상담해 주고 돌보아 주었다. 그는 날마다 이런 사람들에게 더욱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으며, 마침내 그곳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1894 12 12, 한국교회 최초로 소래마을에 성조지(St. George)기가 세워졌다. 이는 교회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맥켄지에게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는 무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면서 복음 증거 하는 사역을 하므로 구토와 두통 등으로 인한 열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일기를 보면,

 

지난 이틀 동안 거의 걷지를 못했다. 매일 한 두 차례씩 구토를 하였다. 배편으로 서울로 가기로 결심을 했다. 내일 누군가 한 사람이 여기에 오도록 서울에 전보를 보냈다. 시간이 갈수록 수면을 취할 수가 없다. 오늘은 방문자를 사절하고 문밖에 나가지도 말아야겠다. 몸이 너무 쇠약하다. 오후가 되자 한기가 났다. 가능한 한 옷을 많이 끼어 입고, 온수 통을 댄 후 땀을 흘렸다. 몸이 훨씬 풀렸다. 이것이 죽음이 아니길 바란다. 나는 내가 주님들과 똑같은 생활 방법을 택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꼬집어 말할 사람들, 그리고 조선을 위해 죽고 싶지는 않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여행한 것이라든지 밤공기가 차가울 때까지 밤늦게 밖에 안자 있었던 것이 나의 불찰이었다.

 

이것은 그가 사경을 해매는 날 마지막으로 쓴 일기이다. 그는 결국 그날 너무도 안타깝게도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으며, 주변의 사람들을 매우 슬프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의 순교소식이 캐나다장로교 선교부에 전해졌으며, 이로 인해 한국에 본격적인 선교사역을 착수하게 되었다. 이때 파송된 선교사는 푸트, 그리어슨, 맥래로서 공식적인 한국에 파송된 캐나다장로교 선교부 소속의 선교사로 기록되었다. 맥켄지가 소천 했을 때, 서경조는 원두우의 도움을 받아 캐나다선교부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에 옮겨본다. 이 편지는 캐나다장로교 선교부를 통해 교회와 신학교로 퍼져 나갔으며, 이에 감동을 받은 신실한 주의 사람들이 한국을 위한 선교에 후원금과 실제 지원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맥켄지 목사의 친구들이요, 동역 목사들이요, 또한 그의 형제들인 캐나다 교우 여러분들에게 보낼 이 편지를 쓰면서... 맥켄지 목사는 조선에 도착한 후 황해도 장연군에 있는 소래로 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업을 위하여 열심히 일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주를 위해 살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소래 마을은 하나님을 모르는 매우 부도덕한 마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는 맥켄지 목사의 모범된 삶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합니다. .... 우리는 캐나다에 있는 믿음의 형제인 여러분이 우리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주시고 우리에게 신앙의 지도자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1895 12 26, 서경조 드림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충만할 때까지 하나님의 맥켄지 같은 인물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이다. 그의 삶은 한 마디로 한 알의 밀알과 같은 삶이었다. 우리에게 그런 분을 보내신 것은 주의 은혜로 여기고, 또한 우리 역시 그를 신앙의 모델로 삼아야 하리라. 비록 그는 오랜 기간 한국에 머물진 않았지만, 짧은 기간 사역하면서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다하고 영광스런 순교로 삶을 마무리를 했다. 누가 그를 실패자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복음을 위해 잠깐 이지만, 한국의 영혼들을 위해 성공적인 인생을 살다간 선교사다. 더 이상 그에 대해 무슨 말로 표현하리오. 그는 그저 희생하는 삶을 살다가 영광스럽게 인생의 막을 내린 주님의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한국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의 사명은 제2의 맥켄지 같은 사명을 가지고 또 다른 마게도니아 사람들을 위해 달려가야 하리라. 필자는 이런 훌륭한 선교사를 한국에 보내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맥켄지 같은 희생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주님에게 간구해 본다. 


한 사람이 복음의 횃불

들고 은둔의 땅 밟았으니

체구는 크고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고 영적 세계를

보았다.

황해도 소래, 일찍이 서씨

형제를 통해 세워진 교회

있었으나 아직 어리기 그지없어

맥켄지가 그곳에 적합하여

길을 떠나 길 잃은 이들의

목자가 되어 혼신의 힘

다해 섬기는 중, 지나친 과로,

피곤이 겹쳐 쓰러졌구나

그는 한 알의 밀알 되어 땅에

떨어졌으니 수많은 열매들

싹이 뜨며 자라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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