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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7

김태훈 목사 0 2017.01.17 03:00
폐병 3기까지 앓았던 나는 가슴을 칼로 후벼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면서 순간 정신을 잃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지며 '나도 이렇게 매 맞아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구타하던 소대장은 보이지 않고 주위에 사람들이 둥그렇게 나를 둘러싸고 근심스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이 사람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네." 
  
가슴 명치를 졸지에 얻어맞은 충격으로 인해 나는 얼마 동안 숨을 쉬지 못하고 그렇게 혼절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일련의 일들이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영적 싸움이었다. 삼청교육대라는 곳에서 악의 세력과 선한 세력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배후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앱 6:12). 
  
지옥 훈련이 끝난 후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부대에 도착하던 첫날과 같이 400여 명의 훈련원들을 연병장에 도열시켰다. 그리고 나서 중대장이 단위에 서서 훈련을 제대로 마쳐서 사회로 귀환하게 될 사람들의 명단과 제2차로 훈련을 더 받게 될 사람들의 명단을 호명하였다.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대표기도를 열심히 했기 때문인지 사단장이 수여하는 표창장까지 받으면서 삼청교육대를 떠날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불려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하고 기뻐했다. 이제 이 지옥 같은 훈련소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 100여 명 정도는 2차 훈련소로 보내졌다. 순화교육 기간 동안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이곳에서 무엇을 잘하고 잘못한다고 성적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또 구타당하기 싫어서 훈련에 임했을 뿐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고, 또다시 지옥으로 돌아가게 되어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나머지 동료들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연병장에서 별 3개를 단 사단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또 한 번 일장 연설을 해댔다. 
  
"여러분들은 사회에 적응하는 정신, 육체 훈련을 받았다. 앞으로 다시는 사회의 질서를 거슬리는 범법행위를 하지 말고 건전한 사회인이 되길 바란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크신 은혜가 있어서 대부분의 여러분들은 오늘을 기해서 사회로 환원하게 되었다. 부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근면, 성실한 삶을 살기 바란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 수군하는 술렁임이 있었다. 아니 전두환이라는 괴물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런 고생을 했는데, 그 놈의 은혜라니 …. 아무리 권력 앞에 모든 것이 충성을 서약하고 무릎을 꿇어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해도 마음 속에서는 무언의 분노가 용솟음쳤다. 
  
우리를 태우고 왔던 버스는 또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똑같은 장소에 우리를 던져 놓았다. 구치소에 도착하자 관리들이 뛰어나와 우리들을 환영(?)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아직까지 계엄령이 발효되고 있는 시기이니 몸조심하고 다시는 잡혀 오는 일이 없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들은 아직 블랙리스트에 이름들이 올라 있으니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어디로 이동할 때 반드시 거주지를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이거야말로 병 주고 약 주는 일이 아닌가. 무고한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 구치소에 보내고 강제로 사회적응훈련이라는 것을 받게 하고서는 나는 어찌할 수 없었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모습이라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 놓고 "나는 어찌 할 수 없었다"라고 변명을 한다니 도대체 말이 된단 말인가.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함께 훈련을 받던 사람들 가운데 삼분의 일 정도는 계속 군 부대에 남아 강제 노동에 투입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 가운데는 군부대를 거쳐 청송보호감호소까지 만 3년 이상 삼청교육대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강제로 3년 동안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 사회로 돌아왔을 때 사회는 오히려 이들을 철저히 배척했다. 소위 말하는 사회적응훈련을 다 마쳤으니까 이제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삼청교육대에 강제로 끌려가기 전보다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적응하기 힘들게 되었던 것이 었다. 또한 나를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정과 사업체가 삼청교육대 훈련으로 인해 박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곳에 강제로 끌려갔다 온 사람들은 비록 가정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삼청교육대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삼청교육대는 애매한 시민들의 권리와 인권을 완전히 묵살하고 권력의 칼을 마음대로 휘둘렀던 전두환 정권의 상징이었다. 
  
삼청교육대 지옥훈련 후유증은 내 인생 전체에서 지난 25년을 사로잡고 있었다. 비록 죽거나 불구자가 되어서 나오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감사했지만 그곳에서 나온 후로 세상이 전과 같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과 그저 혼자만 있고 싶었다.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가장 먼저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아내와 두 살 난 아들이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웃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해서 알아보니 아내는 아이를 셋째 형님 집에 맡기고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어 어떻게든지 도망간 여편네를 찾아서 분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 면서 그런 아내가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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