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칼럼

 

인산(仁山)의 뒷모습

이계선 목사 0 2017.07.28 10:06
“우리 교단에서는 ‘나사렛성결회 인물전’을 펴내고 있어요. 목회하다가 세상을 떠난 목사님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추모집이지요. 내가 죽으면 내 얘기는 꼭 이목사가 써 줬으면 좋겠는데...”

인산(김영백목사)이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다. 인산은 내가 형님으로 부르는 선배목사다. 좀 심각하게 들려 나도 농담을 섞었다.

“그럼요. 형님이 돌아가시면 제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형님영전에 바치겠습니다. 형님은 나사렛의 태상왕(太上王)이니까요”

“허 이사람...”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작품계약(?)을 한 셈이다. 부담이 따라다녔다. 인물전은 그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써야하기 때문이다. 좀 잔인하다. 다행이 인산은 88세인데도 팔팔했다. 아주 천천히 써도 되겠구나!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덜컥 파킨슨병이 걸린것이다. 손발이 굳어져 타자 글을 쓰기가 힘들다. 불행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제를 면제받은 기분이니까.

“인산형님 미안합니다. 대신 형님께서 저에 대한 글을 써주셔야겠습니다. 제가 13살 아래이지만 파킨슨병 때문에 형님보다 먼저 죽게 생겼으니까요”

“허 이사람...”

1930년 충북괴산에서 4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인산은 국가유공자가족이다.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부친이 6.25때 인민군에게 납치 학살당했기 때문이다. 슬픔을 딛고 부산피난시절 감신에 입학한다. 장기천감독 이재은CBS방송사장 조남은정동교회목사는 동문수학하던 친구들이다.

나사렛신학교로 옮기면서 나사렛의 Lagend가 된다. 나사렛전국청년연합회장부터 시작하여 교단총무, 감독, 나사렛대학교 총장, 이사장, 나사렛국제본부중앙위원을 역임한다. 교계연합에도 신임을 얻어 신풍회회장, 경찰선교회회장, 한기목(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인산이 제일 사랑하는 직책은 남서울교회(나사렛)목사다. 영등포 당산동에 위치한 남서울교회는 수만명이 모이는 남서울교회(장로교)처럼 대형교회는 못되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목양지였다.

한기목회장(2011년)때 인산이 보여준 실력이 대단하다. 목사님들은 은퇴하면 상왕이 되어 고집이 쎄다. 그래서 원로목사회가 힘들다. 뉴욕에는 150명 은퇴목사들이 3개의 원로목사회를 만들어 영일없이 분쟁이다. 한국에도 3개의 원로목사회가 있는데 한기목만이 우등생이다. 800명 등록회원인데 500명이 모인다. 일년에 4번 잔치를 하는데 비용이 회장몫이다. 수만명모이는 대형교회에서 은퇴한후 태상왕노릇을 하는 목사가 아니면 회장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군소교단의 중형교회에서 은톼한 인산은 이를 멋지게 해냈다. 서울이 아닌 시골 천안나사렛대학교인데도 550명의 노인목사님들이 몰려왔다. 김영삼대통령의 청와대칼국수나 트럼프대통령이 문재인대통령과 먹었다는 백악관 비빔밥보다 진수성찬이었다. 참석자 전원에게 천안명물 호두과자를 한상자씩 선물했다. 550곱하기 5천원하면 호두과자 값만 275만원. 잔치 끝난후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안에서 노인목사님들은 호두과자를 까먹으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오늘 모임이 한기목 잔치중에 가장 즐거웠소. 기차타고 천안호두과자 먹으면서 소풍가던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으니까”

비슷한 모임을 4번이나 마련했다. 시인으로 등단한 인산은 지금은 은퇴목사들의 문예부흥을 이끌고 있다.

인산은 어떤 사람일까? 항우보다 유방에 가깝다. 초(楚)국의 귀족출신 항우는 힘만 쎈게 아니라 머리도 천재였다.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연인 우희(禹姬)앞에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는 명시를 읊는다. 유방은 초나라 패현의 시골이장출신이다. 전략가 한신을 만나기전까지는 패하기만 하는 오합지졸의 우두머리였을 뿐이다. 그러나 귀가 넓어 들을 줄을 알고 손이 커서 당길 줄을 알았다. 인산이 그렇다. 나사렛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대학원을 다녔다. 제대로 공부한건 감신1년이 전부다.

천재성도 카리스마도 없다. 스스로 출마한적이 단 한번도 없다. 무슨 일이건 한번 관계하면 최선을 다 했다. 결국 주위의 추천으로 수장이 된다. 그래서 관여한 단체마다 회장님이 되게 마련이다. 표정은 천년묵은 노송처럼 조용하지만 속은 진보(進步)다. 인산과 나는 감신 1년을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80년대초 천마산기도원에서 나사렛연합부흥회가 있었다. 강사 김영백목사(낮 성경공부) 유동형목사(밤 집회) 이계선목사(새벽기도회). 두분은 교단최고의 어른들. 난 부산에서 올라온 30대 후반의 초딩. 첫날 새벽기도가 끝나자 인산이 날 불렀다.

“아무래도 내가 간단한 새벽기도 설교를 하고 낮시간은 이목사가 맡아야겠어”

난 물 만난 고기가 되어 2시간동안 신바람 나게 은사집회를 인도했다. 본격적인 부흥사로 등극한 것이다. 인산의 양보로.

미국 이민 10년만에 고국을 찾았다. 12일 동안 병중에 계신 아버지곁에서 지내느라 선배목사님을 뵙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내드린 뉴욕중앙일보 칼럼 “12일간의 효자”를 인산에게 보냈다. 글을 읽은 인산이 칼럼을 묶어 “멀고먼 알라바마”를 내줬다. 나의 등단단편소설“글갱이 사람들”은 그때 쓴 글이다.

내가 부흥사가 되어 신령세계를 체험하게 된것도 소설가가 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된것도 따지고 보면 인산덕분이다.

한달전 인산이 뉴욕을 방문했다. 돌섬은 인산맞이로 흥분. 제일관광코스는 김일성식 에덴농장(?) 방문. 등촌산장(?)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해가 중천에 뜨면 그제서 일어난다. 던킨커피와 보스턴크림도너츠를 들고 그 유명한 돌섬의 보드워크를 걷는다. 발목이 시려올 때까지.

그런데. 9시간을 달려온 인산은 뉴욕 후러싱에서 3시간을 머물고 떠나버렸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축복기도를 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화장실에 가는척 하면서 15명 식사비를 몰래 지불하여 우리를 놀라게했다.

“내 나이 88이라서 미국오는게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만나보기만 하고 가는데도 마음이 흐뭇하군요. 약속이 있어서 지금 떠나야 해요“

(?....)

떠나는 인산의 뒷모습이 사도바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울은 세차례나 터키 그리스 로마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옛 성도들과 제자 디모데와 디도를 만나 사랑과 기도로 격려했다. 인산의 뉴욕방문이 그랬다. 인산의 뒷모습을 쓰고 싶다.

‘세상을 떠날때의 인산의 뒷모습도 아름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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