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구타를 당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해 보기도 했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리저리 피해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몇 번씩 그런 구타가 반복되고 나면 체념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너희들이 죽이려면 죽여 봐라. 너희가 죽이기 밖에는 더 하겠냐?' 하고 고양이에게 몰린 쥐의 심정으로 독한 앙심이 피어오를 때가 많았다.
구보를 마치면 곧바로 피티체조 유격훈련 등 그야말로 '혼 빼기 훈련'이 계속된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우선 매를 맞는 것이 무서워서 생각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몸부터 움직였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다. 그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루는 유격훈련을 받다가 조원 한 명이 낙오되었다. 감시하고 있던 조교가 무차별 구타를 가하자 얼떨결에 대응 방어를 한다는 것이 조교의 가슴팍을 쳤다. 조원으로부터 졸지에 가슴 가격(?)을 당한 조교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처럼 흥분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쇠파이프를 집어 들더니 머리, 허리 가릴 것 없이 개 패듯이 조원을 때리기 시작했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머리통, 입,다리 등 온몸에서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다른 조교들 이 달라붙어 열받은 조교를 떼어 놓는 틈에 그 사람은 간신히 그 자리에서 개죽음 당하는 것을 모면했다. 그렇지만 그날 이후로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더니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소식을 듣지 못했다. 물론 그의 생사여부를 확인할 길도 없었다.
미친 듯이 하루 종일 훈련을 받은 후 내무반으로 돌아와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려면 '취침 전 내무반 점호'라는 것이 시작된다. 점호 시간은 조원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고, 조교들은 어쩌면 이 시간을 가장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빨간 모자의 조교 중에 유난히 악랄하고 신경질적인 조교가 한 명 있었다. 그 조교가 점호를 하는 날이면 대개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새도록 기묘한 형태의 기합과 구타를 당하는 악몽을 겪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 악랄한 조교가 자신의 더러운 정체를 밝혔다. 기합 도중에 난데없이 모두 옷을 벗으라고 명령하더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황에서 몇 사람을 불러 거꾸로 물구 나무서기를 시켰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의 물건에 이상한 것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는 순진한 여자들을 몇 명이나 울렸냐면서 다짜고짜 몽둥이 구타를 시작했다. 그는 성도착증 환자였다. 우리 소대에는 고등학교에서 불량학생으로 찍혀서 교실에서 수업을 받다가 끌려 온 제일 막내가 있었는데, 한번은 그 학생의 바지 뒤에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저녁에 약을 좀 발라 주기 위해 바지를 벗겨 보니 항문 주위가 완전히 걸레조각처럼 헤어져 있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모습 이었다.
ㅡ이런 지옥 불에 떨어질 더러운 놈들 같으니라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분노와 서러움이 솟아 올라오는데 그럴 때는 정말 주위에 있는 모든 군인들을 다 총으로 쏴 죽이고 나도 죽어버리자는 독한 마음이 굴뚝같이 일어났다. 삼청교육대는 현실 세계 속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생지옥이었다.
지옥훈련을 받는 동안 우리는 옆에 있는 조원의 이름이 뭔지, 뭐하다 잡혀 온 사람인지 서로 알지 못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 오던 날부터 우리는 별도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말을 할 수 없도록 함구령이 내려져 있어서 그 흔한 통성명도 할 수 없 었다.
또한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육신적으로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관심을 둘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저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들어오면 단 1분이라도 더 자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생각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원들 사이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동료애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어 옆에 누워 있는 조원에게 슬쩍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러면 그 사람도 웃음으로 답해 주곤 했는데 그런 짧은 미소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 당시 빨간 모자를 쓰고 조교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오늘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물론 그동안 거리를 지나가다가 스치며 지나간 조교들도 있었으리라. 단지 그들이 과거 삼청 교육대 조교로서 여러 사람들을 가해했던 자신의 과거를 철저 히 감추며 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애통하게 여겨질 뿐이다.
그들 중에 자신은 단지 상부의 명령에 충실했을 뿐이지 개인적인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말하는 조교 출신들도 있는 줄로 안다.
그렇지만 스스로 양심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바란다.
자신들이 행했던 일들이 과연 단지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는지, 아니면 본인들의 집단 가학적 악의 본성을 드러낸 채 철저하게 인권을 묵살하며 행한 가학적인 행동들이었는지 누구보다도 당시 빨간 모자를 썼던 본인 스스로 잘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삼청교육대 조교로 일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양심 선언을 하고 나왔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삼청교육대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휴전선 인근 한탄강변에 임시로 시체 소각장이 세워졌었다고 한다. 거기서 삼청교육대 훈련 중 사망한 사람들의 시체를 화장했는데 그 숫자가 얼마나 많았던지 그 일대에서 화 전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주민들이 시체 태우는 냄새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했을 정도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삼청교육대 사망자 수는 57명에 불과하다.
과연 언제까지 삼청교육대의 만행이 제도와 권력의 이권 때문에 안개 속에 가려져 있을 지 미지수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냥 지울 수 없는 삼청교육대 인권 유린의 역사가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관련자들이 공개 사과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상처가 치유되는 그런 날이 오게 되길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