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칼럼

사막은 은혜의 땅 35

김태훈 목사 0 2017.05.04 08:59

"김 목사님, 아들이 마약에 빠져있는데 며칠 동안 집을 나가서 소식이 없습니다. 아들을위해서기도해주십시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시간에 로버트의 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의 아들이 지금 이 시간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저희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간구하건대 천군 천사를 동원하시사 그 아들을 사단의 공격에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마약의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아직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데 그 아들이 하루빨리 학교로 돌아가서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대학까지 잘 진학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또한 이 시간에 부모를 위해 기도하오니 저들의 마음을 위로하시사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평안을 회복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한국말로 기도했다. 물론 그가 알아들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기도니까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기도하는 동안 그 매니저의 어깨가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언어는 유한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어는 인간의 말과 사상과 문화적인 차이를 모두 초월한다. 얼마 후 로버트의 아들은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학교에 출석했다. 그는 늘 나를 볼 때마다 감사의 뜻을 전하며 계속적으로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나는 피닉스 다운타운에서 노방 전도를 시작했다. 성경책 한 권을 들고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외쳤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부끄러운 것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염려도 없었다. 내 평생에 지금처럼 구원의 확신이 이렇게 강하게 내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았으면 죄를 범하며 낭비했던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나의 갑작스런 변화를 그저 주시하고만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며칠 동안 저러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지'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 수 있었지만 구태여 미주알 고주알 설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아내의 마음을 먼저 움직여 주실 것을 나는 믿고 있었다. 그러던 아내가 서서히 내 행적에 대한 질문을 해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낮에 어디 다녀왔어요?"

 

"응, 다운타운에 잠깐 나가서 전도하고 왔지."

 

"날이 무척 더웠는데…"

 

"그래도 그늘 밑에는 괜찮더라고."

 

"전도지 같은 것은 좀 구했어왔어요?"

 

"아니, 아직…. 근데 그냥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만 해도 성령님께서 나중에 그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여 주실 거라는 확 신이 들어. 그래서 그냥 계속하고 있지."

 

"근데, 당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람이 표정부터 변한 거 아니겠어요."

 

"좋은 일,놀라운 일이 있었지. 얼마 전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나를 다시 만져주시고 회복시켜주는 영적인 체험을 아주 구체적으로 했어."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그날 아내에게 결혼생활 18년 만에 처음으로 삼청교육대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를 아내에게 털어놓았을 때 아내는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한동안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니,당신이 그런 끔찍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곳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이야기 가 정말 사실이에요?"

 

"그래, 모두 사실이야. 하지만 그동안 삼청교육대에 대해서 말을 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어. 오히려 나를 더 이상한 사람 으로 보는 주위의 눈초리 때문에 내 생각 가운데 아예 없었던 일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었지. 그렇지만 그 상처는 말을 안 한다고 없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나봐. 지금이라도 당신에게 당시의 일을 말하고 나니까 얼마나 속이 시원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속에 있던 아픔과 상처들을 다 털어놓을 걸 그랬다."

 

나는 그날 이후 삼청교육대의 관련자들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던 마음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제는 내가 그 사람들을 직접 다시 대면하게 되더라도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의 확신이 섰다. 세상이 확 달라 보였다. 20여 년 동안 막혀 있던 체증이 한 순간에 뚫리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성령의 뜨거운 조명이 있은 후 이번에는 삼청교육대에서 받았던 과거의 상처를 대기 중으로 드러냄으로써 과거의 악몽으로부터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변하자 세상이 덩달아 변했다. 아내가 변했고, 아이들 이 변했다. 사업장에서 고정적으로 만나던 사람들이 변했고,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도 변했다. 결국 내가 변할 때 세상의 모든 환경이 더불어 변화된다는 간단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전도의 열정을 되찾으면서 마음에 가장 부담으로 다가온 것은 내 가족, 친지들에 대한 전도였다. 8남매 가운데 먼저 세상을 하직한 둘째 누님을 제외한 7남매가 모두 생존하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형제는 아무도 없었다. 먼저 둘째 형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국에 가장 먼저 이민 와서 미국 식당을 운영하며 탄탄한 재력까지 갖춘 둘째 형님은 아직까지도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전도를 하려면 가슴부터 떨려왔다. 물론 둘째 형님 덕분에 미국에 이민 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어렸을 때 그렇게 천대를 당했기 때문에 둘째 형님은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도 힘든 존재였다. 나이 차이도 열일곱 살이나 되고 나보다 모든 면에서 경험도 많고 배운 것도 많은 형님에게 감히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인간적인 나약함 때문이 었지만 그런 마음의 부담을 극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을 강하게 먹고  충분히 기도한 후에 둘째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평안하시지요?"

 

"그래, 너는 좀 어떠냐. 애리조나는 많이 덥다고 하던데."

 

"지낼 만합니다. 형님, 그런데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그럭저럭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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