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6:1-16절 말씀 묵상
제목: 되돌려진 법궤
1-2절: 법궤를 취한 지 일곱 달이 지 난 후 블레셋 방백들은 재앙에 대한 종교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제사장과 복술가들과 상의하기에 이른다. 복술가들은 징조를 해석하여 신들로부터 감추어진 지식을 알아내는 전문가로서 고대 사회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여호와의 궤를 본처로 돌려보내기로 이미 결정했으나, 그 방법을 몰라서 제사장들과 복술가들을 불렀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역사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하였다(신 18:14).
3-5절: 블레셋의 제사장과 복술가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법궤를 맨손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속건제물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속건 제물은 병도 낳게 하고 징계도 멈추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물은 블레셋 통치자의 수효대로 금으로 만든 종기 다섯 개와 금으로 만든 쥐 다섯 개였다.
6절: 블레셋의 제사장과 복술가들은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놀라운 권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출애굽이 이웃 여러 나라들에게 널리 알려진 역사적인 큰 사건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7-9절: 그들이 새 수레에 언약궤를 실어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사를 표시하여 진노를 덮어 보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두 마리의 “젖나는 소”즉 새끼가 딸린 암소가 그 수레를 메고 가게 한 데에는 저들의 세심한 배려가 깔려 있었다. 당시에 블레셋이 당한 재난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일으킨 것으로 생각되지만, 어쩌면 우연히 발생된 재난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만일 새끼가 딸린 암소 두 마리가 도중에 집에 떼어 놓은 송아지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목적지를 향해 간다면 동물의 본능이 무시된 것으로 여호와가 그렇게 인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 재앙은 언약궤로 말미암아 여호와가 내린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짐승이 끄는 수레로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메고 운반하게 되어 있었다(민 4:15). 하나님께서 이를 묵인하신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형태로나 당신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것을 나타내시려고 하셨다. 그러나 저들이 언약궤를 벧세메스에 보낸 것은, 언약궤가 안치되었던 성막이 있는 실로는 블레셋군에 의해 크게 파손되고, 벧세메스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22km 떨어진 곳으로 에그론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이었기 때문이다.
10-12절: 블레셋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의 지시대로 하였다. 벧세메스를 향해 수레를 끌고 가는 두 마리의 암소는 집에 떼어 놓은 송아지에 대한 모성적인 본능보다 하나님이 이끄심에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암소들은 송아지가 생각나서 울면서도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곧장 목적지로 향하였다. 방백들이 벧세메스의 경계까지 뒤따라간 것은 재앙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13절: 보리를 추수하던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언약궤를 빼앗겼을 때의 충격과 슬픔만큼이나 언약궤의 귀환(歸還)은 그들에게 커다란 감격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온 것은 그 누구도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이 일은 뻗세메스 사람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의 기쁨이었다.
13-16절: 이스라엘의 벧세메스 사람들은 빼앗겼던 언약궤를 되찾게 되어 크게 기뻐했고, 언약궤를 운반한 수레는 여호수아라는 벧세메스의 사람의 “밭 큰 돌이 있는 곳”에 이르러 멈췄다.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는 하나님이 언약궤를 운반한 수레는 다른 용도에 쓰일 수 없고, 오직 번제를 위한 땔감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주의 구원을 인하여 항상 기뻐하고 즐거위하며 살아가게 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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