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율법의 요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본문 : 로마서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것, (이것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위하여 자기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그 육신에 죄를 정죄하셨으니, 이는 육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내(God)가 거룩하니 너희(all humans)도 거룩하라!”(구약 레위기의 반복적인 후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이요 율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에게 곧바로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태초(시작)부터 아담(인간)의 타락한 육적 성품으로 인하여, 즉 “육신으로 말미암아”(by the flesh) 율법이 연약해져서 작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율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육신 때문에(=인간의 부패한 육적 성품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본래의 자기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즉 율법은 정상적인 기능과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역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죄의 정욕을 불러일으키고 범죄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1. 가장 먼저 율법(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까지도 아담(인간)의 “육으로 말미암아”(하나님을 거스르고 불순종하는 본질과 속성 때문에) 연약해져서 할 수 없었던 것, (이것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는 속죄를 위하여 자기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그 육신에 죄를 정죄하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제 그 아들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에게는 율법의 요구, 곧 죄 사함(forgiveness of sins)과 칭의(justification)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2. 동시에 이제는 “육을 따라”(아담의 타락한 육적 성품을 따라) 살지 않고 내주하신 성령을 따라 “행하는”(walking=현대분사, 지속적으로) 자에게서 참된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하십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신자가 비록 이 세상에서 “육을 입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죄와 사망의 권세와 지배로부터 휘둘리지 아니할 것이며 참된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내주하신 성령을 따라 “행하는”(walking) 자에게서(=현재분사로서 지속적인 의미) 라는 말입니다. 신자는 항상(=매일 매순간) 성령님과 동행함으로써 좌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과 자유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핵심적 본질적인 차이는 바로 기독교는 (1)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죄 사함과 칭의를 붙잡는 것이며 (2) 동시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생명의 은혜(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을 누림, 정죄로부터 벗어남)을 붙잡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두 가지 은혜가 매순간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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