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누가복음 1장 67-80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0.12.20 18:27

본문말씀 : 눅1:67-80절

제    목 : 구원의 뿔 예수그리스도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 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눅1:68-69) Blessed be the Lord God of Israel; for he hath visited and redeemed his people, And hath raised up an horn of salvation for us in the house of his servant David;           (Luke 1:68-69) 

 

동물의 왕국에서 맹수인 사자가 코뿔소를 잡기 먹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려드니, 뿔로 받아 집어 던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뿔(角,cornu)은 발굽을 가진 포유동물(소, 염소, 사슴 등)의 머리에 튀어나온 부분을 말합니다. 

 

뿔이 단단하고 뾰족한 것은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하나님이 공격 혹은 방어수단으로 이용하도록 주셨습니다. 

 

예로부터 동물의 뼈는 무기로 사용되어, 물리적인 힘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어른들이 전해주신 도깨비 이야기에는 언제나 정의에 뿔이 있어 방망이를 들고 나온다는 이야기며, 소시적에 북한 괴뢰군들은 뿔이 달린 사람들로 알기도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뿔이 나다(뿔이 솟다)’ 의 표현은 대단히 화가 남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요즘 들어 우리는 뿔이 나는 일들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등 세상이 왜 이러는지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벌써 코로나로 1년여 고생고생 하고 있습니다.

 

요즘 테스 형이란 노래가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이 왜 이런지, 희한한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합니다.

 

국민 대다수가 뿔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잘못된 정책은 과감하게 버리고, 부자나 가난한 자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개방적 정책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고려 말의 일입니다. 

 

어느 날 밤 태조 이성계가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다, 양의 뿔과 꼬리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 잠을 깼답니다. 

 

그는 꿈이 불길하다고 여겨 날이 새자마자, 스승을 불러 자신이 꾼 꿈의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스승이 듣고서 말하기를, '羊' (양 양)이라는 글자에서 뿔과 꼬리를 떼면 ‘王(임금 왕) 글자가 되니, 주군께서는 왕이 될 운명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라고 해몽한 설화가 우리네 문헌설화집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성계는 꿈 덕택인지 아니면, 꿈을 신봉하고 위화도 회군을 감행한 쿠데타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고집 센 노인으로 비유되는 황소를 끌고 갈 때, 안 끌려가려고 안간힘을 쓴데서 고집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사슴은 사람이나 다른 짐승에 상처받기 쉬운 짐승이지만, 남에게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보답하는 짐승이며, 그 뿔은 인간의 허약한 몸을 보양해주는 녹용을 주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없는 사람을 비유로 쥐뿔도 없는 것이라 하는데 원래 쥐는 뿔없습니다

 

성경에도 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만든 모세의 형상은, 흥미롭게도 머리에 뿔이 돋아 있습니다. 

 

모세의 머리에 뿔이 달린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돌판을 갖고 내려오자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을 쳐다보니, 광채가 나서 그를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고 다가설 수 없는 장면입니다. (출34:29-35)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威嚴)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신33:17)” 

 

이 구절에서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는 모세의 일화에 근거해서 조각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제13장에서는 바닷가 모래 위에 서서, 사단의 지휘를 받아 성도들을 핍박할 두 짐승이 출현합니다.

 

먼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이어서 용을 닮았습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계 13:11).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2) 

 

이 말씀은 여호와의 종 뿔은 적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감사하는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노래의 표상입니다.

 

신약에서도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계12:3) 의 구절은 사탄과 악의 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가랴의 찬송 시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주신 것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찬송 시입니다. 

 

저는 우리의 삶이 사가랴처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이 늘 차고 넘쳐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사가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구원의 뿔’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68절)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 보사 속량하시며” 여기서 ‘돌보신다.’는 말은 영어로 ‘has come’ ‘찾아오셨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을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 누군가 나를 찾아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누군가 면회와 함께 해주면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병원에 누워 있을 때 누군가 찾아와서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면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인생의 고난 중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찾아와 식사 한 끼 사주면서 격려해 주면 얼마나 큰 위로를 얻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 곁에 진심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죄인이 되고 실패하고 무너졌을 때, 우리 곁에 찾아온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유익을 따라 관계를 설정하고, 만나기도 하고 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산하지 않고, 친히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것도 우리는 하나님이 찾아오실 만한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떠난 죄인들입니다. 

 

추악하고 탐욕과 악의가 가득한 자였으며, 시기하고, 살인하고, 분쟁하는 악독한 사람들이었습니다.(롬1:29) 

 

이러한 자들은 사형에 해당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롬1:32)

 

우리는 사형수와 같이 극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을 친히 찾아오신 것입니다. 

 

더럽고 추하다고 부담스러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소망이 없다고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오셔서 잠깐 면회만 하고 가시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셨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 그 백성을 돌 보사, 속량하시며....” 

속량해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68절)

 

여기서 ‘속량하셨다’는 것은 ‘몸값을 지불하여 노예나 포로를 자유인이 되게 한다.’ 는 뜻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인의 신분을 벗을 수 없습니다. 

 

감옥에서 나올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 대신 값을 지불해 주어야 합니다. 그 값은 돈이 아닙니다. 생명입니다. 

 

사형수인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대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대신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속량해 주시기 위해서 찾아 오셨습니다. 

 

즉,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사,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왜 굳이 찾아오셔서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절)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 주시며 우리를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 때, 우리는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돌아 보사, 속량해 주시며” 

 

나를 찾아오시고 속량해 주신 주님을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속량하시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69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습니다. 

 

구원의 뿔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뿔은 강력한 힘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강력한 뿔이 필요한 것입니까?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이라” (71절)

 

우리를 미워하는 원수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사탄은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 개라고 하였습니다. (계12:3) 

 

사탄도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이 뿔을 가졌다는 것은 사탄도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열 개나 되는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의 힘으로는 사탄이 가진 뿔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사탄은 열 개의 뿔로 열불나면 찔러댑니다. 

 

또한 머리가 일곱 개입니다. 이것은 완전수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처럼 사탄도 무궁무진한 지식과 지혜를 가졌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마귀사탄도 영악하고 계략과 속임수가 능수능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저히 사탄의 힘과 간교한 계략을 당해낼수 없습니다. 

 

삼손은 맨손으로 사자를 염소새끼 찢듯이 찢었던 장사였지만, 사탄에 정욕의 뿔에 찔렸을 때, 들릴라 치마폭에 누워 재롱이나 떨다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지고 사람들의 약점을 찾아 마구 찌르고, 또 유혹합니다. 

 

정욕의 뿔, 물질을 탐하는 탐욕의 뿔, 혈기의 뿔, 미움의 뿔, 쾌락의 뿔, 게으름의 뿔, 이기심의 뿔, 판단의 뿔... 수없이 많은 뿔로 우리를 찌릅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가 들이박는 이 뿔, 저 뿔에 찔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뿔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 뿔로 또 다른 사람을 찌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사탄의 뿔들은, 너무나 강하여,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뿔들을 파 할 수 있는 더 강력한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런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구원의 뿔이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강력하십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니라”(눅10:19)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사탄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사탄의 세력을 이깁니다. 

마귀의 간계를 깨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뿔로서, 예수님보다 더 큰 통치와 권세와 능력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권자이십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구원의 뿔은 온 천하에 가장 강력한 힘과 능력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로써 사탄이 휘두르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죄와 죽음의 뿔까지 다 꺾어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힘과 능력 앞에서 사탄은 벌벌 떨 수밖에 없습니다. 

 

거라사 광인이 사단의 뿔에 찔려 고통 받을 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말씀 한 마디로 모든 악한 뿔을 제압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어떤 것이, 악한 영들이 휘두르는 뿔에 찔린 자들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의 뿔이신 예수님만이 이런 사탄의 뿔에 찔린 영혼들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이 예수님 앞에서 사탄의 열 개의 뿔들, 백 개, 천개라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던 모든 뿔들을 단번에 제압해 버리셨습니다. 

  

한나는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삼상2:10) 이렇게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여러분! 구원의 뿔 되시는 예수님을 굳게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대적하는 악한 뿔들이 산산이 깨어질 줄 믿습니다. 

 

구원의 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둘째, 사가랴는 돋는 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78-79절) 

 

또한 예수님은 돋는 해도 되십니다. 

 

돋는 해 되시는 예수님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강력한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부산 해돋이 길에서 처음으로 새벽 일출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의 세상은 어둡고 냉기로 가득하였습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르자, 모든 어둠과 냉기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질 때, 불안한 마음도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붉게 타오르면서 떠오르는 태양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돋는 해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돋는 해란 솟아오르는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돋는 해는 동해안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즉 하늘에서 임하는 해입니다. 

 

즉, 자연발광 빛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비추는 구원의 빛이요. 

사랑의 빛이요 진리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요 소망의 빛입니다. 

 

창1:3절에 선포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바로 그 빛입니다. 모든 생명을 창조하는 빛입니다.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빛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빛, 생명의 빛이 되사.... 

돋는 해로, 위에서 부터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돋는 해가 되어, 우리의 심령에 비추기 시작하면 어둠과 죽음, 문제, 질병의 그늘은 순식간에 물러가게 됩니다. 

 

모든 불안과 염려도 물러갑니다. 

 

우리 속에 잠재된 모든 거짓도 물러갑니다.

 

오늘날 여전히 여러분들을 어둡게 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는 줄 압니다 

 

젊은이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할 때 앞이 캄캄해 진답니다. 

 

취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3포, 5포만 나오면 정신이 아찔합니다.

 

요즘 정신과를 지원하는 의사들이 많아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울증, 정신질환,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그늘에 갇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 해 우리나라에서 13,670명이 자살하였습니다. (2018년)

 

자살 충동을 심하게 느끼는 ‘자살 고위험자’는 125만 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절망과 죽음의 그늘에 갇힌 자들이 이토록 많습니다. 

 

그 외에도 운명주의, 슬픔, 패배주의, 열등감, 절망의 세력들이 사람들을 짓누르고 이런 그늘에 갇히면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어둠과 사망의 그늘을 어떻게 몰아낼 수 있습니까? 

 

빛이 임해야 합니다. 그 빛이 누구입니까?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 이로라.” (요 9:5) 

 

돋는 해 되시는 예수님이 강력한 빛을 비추실 때 모든 어둠과 죽음의 그늘은 사라지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율법과 죄의식으로 어둠에 사로잡힌 자였습니다. 

 

자신의 의를 주장하며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던 자였지만 전혀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이것이 사도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멀 정도의 강력한 예수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돋는 해가 떠오른 것입니다. 

 

그 빛이 비추어지자 그를 둘러싼 모든 어둠의 세력은 싹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율법, 자기의, 교만의 어둠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방의 빛”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5:8절

 

주 안에서 우리도 빛이 되어, 빛의 자녀들처럼 살게 됩니다.

 

 이처럼 돋는 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비추어지면, 더 이상 어둠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도 빛이 되어 빛의 자녀들처럼 살게 됩니다. 

 

신앙생활 잘하는 성도들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밝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조건으로는 그렇게 밝은 조건이 아닌데, 예수님이 빛으로 임하시니 밝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돋는 해 되신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갈 때 나를 짓누르는 어떠한 상처와 아픔도 다 치유되고 영적으로 회복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됩니까?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5절).

 

우리의 구원의 뿔이시오 돋는 해 되시는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게 되고, 종신토록 하나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원수가 아닙니다. 실패가 아닙니다. 질병이 아닙니다. 고난이 아닙니다.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 이후에 있는 심판입니다. 

 

죽어서 내 죄에 따라 심판을 받아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하나님만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요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인이시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최후의 심판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나의 어두움을 몰아내시는 돋는 해가 되십니다.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이 번 성탄절에 우리가 구원의 뿔이시며, 돋는 해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더 깊이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사가랴와 같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힘차게 찬양 하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 사탄이 찔러대는 각종 죄의 뿔을 이기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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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2 사무엘하 18장 1-33절 말씀 묵상 [임근영 목사] 복음뉴스 2023.01.17
4701 빌립보서 3장 10-21절 말씀 묵상 [이정애 사모] 복음뉴스 2023.01.17
4700 요한계시록 22장 1-5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복음뉴스 2023.01.17
4699 사무엘상 17장 1-29절 말씀 묵상 [임근영 목사] 복음뉴스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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