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이란?”(복 있는 사람은... 아니라[not=3번] 오직[only]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2)
1. 복 있는 사람이란?
• 먼저 최소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아니라”(not)고 소개합니다(1절). 즉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측면에서 명확한 구별과 차이를 제시합니다. 쉽게 말해 복 있는 사람은 악인(꾀)과 죄인(길)과 오만한 자(자리)와는 전혀 다르다고 제시합니다. 결국 두 부류(복 있는 사람//그 반대편자)는 결코 함께할 수 없고 서로 나누어져 갈라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구별과 차이점은 선과 악을, 의와 불의를, 행복과 불행이라는 대조관계를 의식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2. 복 있는 사람이란?
• 그 다음으로 “오직”(only) 이런 사람이다 하면서, 구체적으로 그 복된 사람을 소개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것은 복된 자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를 (그 깊이를) 알려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꾀)이나 죄인(길)이나 오만한 자(자리)가 아니라고 제시하였기 때문에, 이것의 반대말로서 복 있는 사람이란 ‘선한 자’나 ‘의로운 자’나 ‘겸손한 자’라고 말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질문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쉬운 복 있는 사람의 개념을 취하지 아니하고 본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3. 왜 ‘복 있는 사람’을 선한 자, 의로운 자, 겸손한 자와 연결시키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무엇이 진정으로 선한 것이며, 무엇이 옳고 바른 것이며, 무엇이 바른 태도와 자세(=겸손)인가를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선천적인 성품에 의한 것도 아니고 태어나 자라면서 배우고 습득하는 사회법과 교육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을 초월해 있는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이런 것들 위에 훨씬 뛰어나며 탁월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율법이 그 판단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율법이란 말의 기본 의미는 ‘가르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이란 말에는 사람 편에서 스스로 선악을 결정하거나 터득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옳고 바른 것인지 무엇이 바른 태도와 자세인지를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복 있는 사람’이란 사람들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기뻐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복된 자이십니까? 여러분의 타고난 형편이나 배우고 터득한 지위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알려주시는 그 가르침(=율법) 때문입니까? 제가 소원하기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율법) 때문에, 여러분의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