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좋은 멘토가 필요합니다.

김경열 목사 0 2020.04.26 17:08

본문말씀: 왕하18:3-8

제   목: 좋은 멘토가 필요합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18:5~6) He trusted in LORD God of Israel; so that after him was none like him among all the kings of Judah, nor any that were before him, For he clave to the LORD, and departed not from following him, but kept his commandments, which the LORD commanded Moses.(2King 18:5~6) 

 

우리의 용어 중에‘멘토’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멘토(Mento)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도르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나가 싸우는 동안 집안일과 아들을 친구 멘토르(Mentor)에게 맡겼고, 그의 아들이 잘 성장하여 이후 사람들은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를‘멘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아끼면서 아름다운 꽃이 피도록 시간과 경험을 나누어줄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청년들에게 설문조사 한 것 보면 94%가 멘토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필요하다면 좋은 멘토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귀하게 여기고 도움을 주는 멘토가 되십시오.

 

건강한 관계는 멘티에 잠재력을 키우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멘토링 을 활발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멘토는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과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하여 잠재력 개발을 하고 성장능력을 발전시켜 주는 것입니다.

 

멘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멘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멘티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이 필요합니다.

 

인생에 좋은 멘토로 삼을 수 있는 롤 모델이 있다면 분명 많은 도움이 됩니다.

 

멘토가 필요한 이유는 사회에 필요한 조언을 듣고 싶을 때, 마음속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의지할 사람이 필요할 때,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고 싶을 때, 필요성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현실적으로 좋은 멘토를 찾기가 어렵답니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일지라도 본인과 가치관이 다르다면 장기적으로 멘토로 삼기엔 힘들 것입니다.

 

교회도 멘토가 필요하고, 직분자들도 멘토가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모델로 요한 계시록에 빌라델교회로 삼고 있습니다.(계3:7)

1, 빌라델비아 교회는 변치않는 영적 풍성함을 가진 책망이 없는 교회

2, 연약하나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킨 

   칭찬만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서 문을 열어주시고, 뒷문을 닫아 주시는 복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뉴욕 영안교회가 이런 교회되길 사모하며 달려갑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좋은 제직들이 교회 기둥이 되어서 든든히 서 가며 데살로니가 교회같이 좋은 소문나는 교회로 계속 성장되기를 원합니다.(살전 1:3)

 

좋은 성도가 되기 위해 좋은 신앙인의 멘토가 필요합니다.

 

요즘 교회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영성이 사라져 갑니다. 

바로 야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지성이 발달되어서 말씀의 원리를 삶에 적용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싸움의 현장이 없어졌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처음에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에는 핍박이 많았습니다. 

 

제사문제나 사회적 문제와 많이 걸리기도 하고, 외세종교라는 오해로 핍박도 많았습니다. 

 

기독인들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기해하기도 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 믿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신앙에 야성은 살아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매 맞는 것은 예사고, 때로 집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면서 죽어도 믿겠다는 고집과 당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숫자가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문화수준이 높아지면서 신앙에 어느 정도의 보호막이 쳐졌습니다.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상황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야성을 잃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혈통은 좋습니다. 

이제 덩치도 컸고. 힘도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세상과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아니 싸움에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크리스천은 타락하게 됩니다.

 

다윗은 감성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는 야성을 잃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두 번 야성에서 실패한 일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밧세바의 사건 때이고, 다음은 노년에 인구 조사 때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혹독한 채찍을 가하셨습니다. 

 

배 두드리고, 안일에 빠지게 되면, 반드시 고난이 다가옵니다. 

아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입니다.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배부르고 등 따습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조지 바너가 지적한 것처럼 주전자속의 개구리가 물이 점점 뜨거워지는 데도 알지 못하고 잠이 들어 있다가 죽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영적으로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병들은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유렵교회가 그렇다고 하는데, 한국교회도 그런 모습으로 변해 갑니다.

 

우리는 세상에 어둠의 영과 싸워야 할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군인은 군인이 아닙니다. 

 

적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영성에 야성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멘토를 만나야 합니다. 

멘토 란 인생의 지혜와 신뢰로 이끌어 주는 조언자를 말합니다.

 

저의 목회가운데 좋은 신앙의 멘토가 있습니다. 

 

(1) 목회자로서 철저한 사명감을 불 타계십니다., 

(2) 정직하며 철저하게 말씀만 전하려는 영성이 있습니다. 

(3)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세요. 

(4) 설교를 할 때 마다 마지막 같은 종말적 의식을 같고, 생명을 걸고 

    설교하시는 그 목사님을 저는 목회의 멘토로 삼았습니다. 

 

지금도 설교를 들으면 저의 신앙과 사명에 불붙여 주시고 멘토 로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멘토를 만나면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멘토를 만나면 실패한 인생이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믿을 때 믿음이 좋은 사람만나면 좋은 신앙을 배웁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주일도 바쁘면 빠지 고, 십일조도 적당하게 드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런 신앙을 배우 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좋은 신앙의 멘토를 만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에 위대한 멘티 한 사람이 있습니다. 히스기야입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왕되어 나라를 잘 다스리려니 두렵고 고민이 생겼습니다. 

 

조상들 중에 어떤 왕이 정치를 잘했나를 알아보니 다윗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다윗 왕을 멘토로 삼았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소개합니다.(3절) 

 

다윗 왕이 걸어간 길을 히스기야도 걸어가려고 힘썼습니다. 

 

히스기야는 영성과 야성이 강한 다윗을 신앙의 멘토로 삼았고, 왕이 되자마자 산당을 부숴버리고 목상을 찍어내는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이런 히스기야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가는 길을 형통하게 복을 주셨습니다. 

 

형통하다는 것은 막히는 것이 없고, 장애물이 없고, 열려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사는 것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히스기야를 본받아 신앙의 멘토 삼고저 합니다. 

 

1. 무엇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했습니다.(3절)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했습니다.(3)

 

 1)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말씀을 주목하세요.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면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사는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 가는 더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나의 중심’을 보시고,

‘나의 말’을 들으시고,‘나의행동’을 보신다는 

코람데오의 신앙  즉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중요합니다. 

 

실수가 많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돌아올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버리지 않고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다윗이 그러했고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음은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좋은 열매를 맺듯이,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성경에 쓰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세요. 

한결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이 정직했습니다. 

 

이스라엘 2대왕을 뽑는 기준을 보세요.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사람의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삼상16:7)

 

하나님은 지도자를 뽑는 첫 번째 기준을 중심에 두셨습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가운데, 일곱번째까지 데려왔으나 내가 찾는 자가 아니라고 거절하셨습니다. 

 

여덟번째 다윗을 데려왔을 때,“내가 찾는 자가 그 니라. 그에게 기름 부어서 왕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삼상16:12) 

 

사실 다윗은 허물도 실수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이 바로 된 것을 보시고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정직하게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성경에는 드리나 마나한 예배도 있었습니다(사1:12~13),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눈을 가리 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사1:15)

 

드리고도 화를 입은 예배도 있었습니다(말1장) 

 

오늘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신령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길 원합니다. 

 

기도를 드려도 정직한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거짓된 기도는 마귀가 듣습니다. 

 

바리세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보세요.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바리세인의 기도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노라고 고백할 때 주님은 이런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헌금도 정직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리차드 포스트는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가 거듭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고. 또 하나는 돈주머니가 거듭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돈에 대한 태도를 보면, 하나님께 대한 태도를 알 수가 있습니다. 돈은 영성의 척도가 된다. 고 해도 틀림이 아닙니다.

 

신학자인 헤롤드 피케트는‘그리스도인의 영성의 출발점은 바로 십일조의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온전하고 정직한 십일조를 드리세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출발점이 됩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을 줄이려고 하지 말고 진실하게 드리길 기도하세요. 

 

우리는 무엇을 드리느냐 보다 드리는 마음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직한 예배. 정직한 기도, 정직한 헌금을 드리라. 하나님이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만 의지했다 고 했습니다 (5절)

하나님만 의지 할 때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지배하였는데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7절)

 

2) 정직할 때 신앙의 야성이 회복됩니다. (4절)

 

정직하게 살면 담대해 집니다. 떳떳하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그 시대 

종교개혁을 단행 할 수 있었습니다. 

 

산당을 부수고 주상을 깨트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습니다. 

그 시대에 우상을 제거하는 엄청난 종교개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이런 용기와 담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하면 담대해집니다. 강한 신앙의 야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 때 세상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반면에 거짓되게 살면 늘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산야를 호령하던 호랑이가 야성이 죽어버리고, 이빨 빠진 호랑이는 

힘없는 짐승에게도 당 합니다. 

 

신앙은 야성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앞에 정직한 히스기야의 야성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기도했습니다. (시51:10)

 

 2. 히스기야 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5절)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향해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히스기야와 

 같이 하나님만 의지할 왕이 없다고 인정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신앙은 먼저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히스기야는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과 연합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모세에게 명령했던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6절)

 

여러분도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과 연합하시길 바랍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 한다는 말입니다. 

 

학생이 공부를 해도 하나님과 연합하고, 사업을 해도, 진로를 결정할 때도, 정치를 할 때도 하나님과 연합하세요. 

 

나 혼자는 약합니다, 넘어지고 찢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힘의 근원이요. 

하나님께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여러분도 히스기야처럼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과 연합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히스기야에게 두 가지를 축복하셨습니다.(7절)

 

1)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느냐? 무엇을 하느냐 보다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가 더 중요합니다.

 

2)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습니다.

 

형통이란 막힘이 없는 삶을 의미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해야 합니다. 

은혜가 막히지 않고, 기도가 응답되며, 축복의 통로가 열려야 합니다. 

 

요셉이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어인이 찍힌 줄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를 하고. 사자 굴속에 던져 지는 줄 알면서도 기도했습니다.

 

또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형통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때를 만나도록 하나님이 형통케 하심은 큰 복입니다. 

 

코로나19 로 한국교회에 환란의 영적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물질관계도 형통해야 합니다. 인간은 물질을 떠나서 살수 없습니다. 직장이나 사업이나 진로가 형통해야 합니다. 

 

바로 여호와 앞에 정직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히스기야의 앞날에 이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히스기야처럼 신앙의 야성을 키우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주 만 의지 하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요14:26)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고,(16:8)진리 가운데 인도 하시고,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십니다.(요16:13)

 

성령을 멘토로 영접하십시오.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도록 성령께서 위탁받으셨습니다.

 

히스기야에게 복 주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멘토로 삼는 가족들, 우리 영안교회에 반드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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