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2:1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호세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으로 주전 755년 무렵에서 주전 722년 경까지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북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슬픔과 안타까움과 분노의 마음을 말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런 삶을 살도록 부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게하셔서 부부로 하나가 되어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 자녀를 낳게하시는데 그들의 이름이 이스르엘, 로루하마와 로암미라 하였습니다. 원어적으로는 ‘하나님이 심으시다’의 뜻의 ‘이스르엘’은 아합 왕가가 멸망한 장소의 지명으로,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시다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로루하마’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용서하지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로암미’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타락하고 부패하여 더 이상 소망도 하나님의 용서도 없을 것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 포기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회복 되는 크신 구원의 계획으로 약속하십니다(1:7,1:10-11,2:1)
이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음란한 아내와 음란한 자식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호세아처럼 우리 또한 타락하고 음란한 이 세상을 주께서 하늘 나라로 부르시기 전까지는 떠나 살아 갈수 없습니다. 이 가운데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선지자 호세아와 같은 선지자적 사명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주의 소유된 백성으로 택한 바된 하나님께 속한 자녀들이지만 우리가 실제 살아야만 하는 이 세상의 현재 모습은 더 이상 악할래야 악할수가 없을 것 같은 극악과 음란과 타락과 부패와 불의로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긍휼히 여기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 같은, 끝난 모습으로 마치 호세아 세 자녀들의 이름과도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죄악이 가득한 이 세대의 끝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하나님은 소유삼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지시고자 예수 내 구주를 고백하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은 나로 하여금 소망 없는 이 땅 가운데서 오직 주님 만을 바라며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임을 알게 하십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망해가는 이 세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알게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우쳐 주시므로, 이미 구원을 얻은 우리로 하여금 타락한 이 세대를 방관하지 말고 버려두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의 메세지로 그들을 찾아 나서도록 촉구 하십니다. 마치 호세아가 음란하고 부정한 아내를 찾아 헤메는 것처럼 말입니다. 찬송가 527장 ‘어서 돌아오오’에 나오는 가사처럼, 어서 돌아만 오라고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담당 못하시겠느냐고? 반문하시면서 ~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라고 외치는 전도자의 책무를 감당하라고 재촉하십니다.
오늘도 종말을 향해 치닫는 세상을 정죄 비방 판단하기 보다는 먼저 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과 슬픔과 분노와 긍휼을 알았기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호세아와 같이 하나님께 드려지길 원합니다. 끝없이 용서하시며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타락한 이 세대를 향해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그리스도의 편지로, 받은 은혜의 복음의 증거를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