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 Give me happiness, O Lord, for my life depends on you.” (시편 86: 4)
다윗의 시편을 읽다가 오늘 아침에는 나의 관념을 벗어난 평소와는 다른 표현을 읽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올리며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기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다윗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일정한 법도와 예절, 그리고 보편적인 사고 안에서 살게 된다. 그것은 삶을 규격화하여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으로 굳어져 그 범주 안에서 살면 편하게 여겨지나 범주를 벗어나는 어떤 삶의 행태를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이를 지적을 하게 되는 것이 습관화되어 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고정관념이라 할 수도 있고 삶의 틀, 혹은 굴레를 따라 산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내가 시편 86: 4를 읽으며 이상하게 생각한 것도 고정관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여기기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분야에서 고정관념을 갖고 살고 있는가하는 것을 실감한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자기를 기쁘게 해 달라고 한 이 표현은 어쩌면 매우 솔직한 표현의 기도라 생각한다. 이렇게 외치고 싶은 인간 본능적 소망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선 나부터도 이를 억누르고 살거나 아니면 하나님께 그 같이 나의 속마음을 표출하는 것은 무엄하고 있을 수 없는 행동으로만 여기고 살아 왔기에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짖어 본적이 없다.
일반적인 예의범절에 의하면 솔직하게 말한다고 하여 어떤 말이나 다 내 뱉을 수 있고, 마음을 열고 대한다고 하여 무슨 언행이라도 무방하게 취급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지위나 연령의 차이가 큰 관계에서는 지위가 낮거나 젊은 측이 상당부분 언행과 속마음을 억제하고 감추며 삼가하여 처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어찌 하나님께 인간인 자신을 기쁘게 하라고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 안에서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고 입으로는 흔히 말하지만 다시 나 스스로를 점검해보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결코 말대로 감사가 충만하거나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내가 아님을 나는 잘 안다. 우선 하나님을 향해서는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비하여 내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사는 부끄러움과 죄송함이 늘 나를 누른다. 아무리 부지런히 일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수준에는 도저히 못 미친다고 여기며 살다보니 이런 생각이 상당부분 감사를 앗아가 버리고 영혼의 기쁨은 수줍어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모양새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수준을 내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것에 도달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라 생각한다. 만약 하나님이 만족하실 만큼 나는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면 이 또한 엄청난 교만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나로서는 도저히 하나님께서 나로 인하여 만족하실 단계에 이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생각일까 하는 것이 또한 나의 마음을 찌른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피조물의 모든 것을 꿰뚫고 계시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에 이 보잘 것 없는 나를 보시며 나로부터 기대하시는 결실과 충성도조차도 극히 나의 수준에 맞게 잡으시고 계시지는 않으실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나마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도 하나님이 나를 보시며 바라시는 수준 안에 들어 작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나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에 한편 안도하게도 된다. 내가 자주 말하는 그대로 내가 주님 앞에서 일을 하면 얼마나 큰일을 하겠냐 하는 것이다. 주님이 기회를 열어주시고 동역성도들을 만나게 하시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며 힘주시니 심히 작고 미미하나마 이곳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때 이것만으로도 내가 늘 감사하며 살아갈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한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께 나를 기쁘게 해 달라고 마음의 소원을 올려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항상 법도에 묶여 드리고 싶은 말을 누르고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기에 간격을 느끼게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나를 더욱 가까이 두시고 싶으심에 틀림없다. 내가 날마다 더욱 가까이 다가오기를 고대하시며 지내시는 중에 내가 다가갈 때 심히 기뻐하실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만약 다윗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면 그 이전에 나는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을 나의 산성으로 삼고 사는 독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가끔 하나님께 나를 기쁘게 해 달라고 구할 만큼 하나님 아버지와 나의 간격을 점차 좁혀가서 진정 내가 주 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도록 내 영혼의 밭을 일구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