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금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Now I rejoice, not that ye were made sorry,
but that ye sorrowed to repentance : for ye were
made sorry after a godly manner, that might receive
damage by us in nothing.(2 corinthians 7:10)]
사람은 누구나 근심없는 세상을 원합니다.
그래서 현대 문명은 근심을 해결하고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기다리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합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근심과 걱정은 더 많아집니다.
소유가 많으면 근심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 자동차가 없을 때는
교통사고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2) 핸드폰 없을 때가 차라리 편했던 것 같습니다.
이젠 핸드폰에 코가 꾀어서 너무 빠른 소통 때문에
오히려 삶이 피곤해진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개도 목에 핸드폰을 걸고 다닌답니다.
(3) 전기 불이 들어오기 전에
밤 문화에 방황하는 범죄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낮인지 밤인지 생활이 구별이 안 될 정도입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정신이 파괴되고 육체가 병듭니다.
시골에 가면 가로등 때문에 곡식이 잠을 못 자서
열매로 영글어 가질 않는답니다.
자연환경의 무서운 질서 파괴입니다.
(4) 옛날에는 스트레스가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지금은 가장 많이 받는 것이 스트레스입니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이름 모를 질병이 너무 많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이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룰 때까지는
근심이 떠날 날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근심도 무익한 근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유익한 근심도 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소망이 되고
회개를 하게 되고 어그러진 인생을
바로 살게 하는 '거룩한 근심'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근심이라 했습니다.(10절)
근심이란 고통, 슬픔이란 뜻입니다.
같은 근심이라도 어떤 방향에서
어떤 마음으로 하는 근심이냐에 따라
사망에 이를 수도 있고
생명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신앙 안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인간적인 세상 근심은 할수록
무거운 짐이 되고 고통과 슬픔이 됩니다.
그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요 14:1)
세상 근심은 할수록 고통과 슬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 없는 생명에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근심에 사로잡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 근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근심입니까?
1. 세상 근심은 버려야 합니다.(10절)
1) 세상 근심은 결과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근심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염려, 걱정, 불안 두려움은 절망에서 오는 근심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염려와 불안이
마음을 지배하면 삶이 흔들립니다.
염려란?
‘마음을 나눈다, 쪼갠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들어오면
마음이 나누어지고 쪼개지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이 생기면
마음 안에 있는 평안과 기쁨과 안식이 새어 나갑니다.
그래서 주님도 네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염려와 근심은 생명의 적이다."
라고 했습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독입니다.
시카고 러쉬 대학교 메디컬 센터에서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걱정 및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알츠하이머병 즉, 치매에 걸려 있는지를
조사해 보았더니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들 일수록 치매에 걸릴 위험이
2배 이상 높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받으면
스트레스성 질병이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세상 근심은 영혼을 파괴할 뿐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독이기 때문에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10절하)
믿음을 떠나 세상 근심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면
문제를 만났을 때 인간적인 방법과 노력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다가 삶이 황폐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다가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앞날을 묻는 사울왕의 불안과 초조, 근심에
사로잡힌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28:7-8)
가룟 유다가 그러했습니다.
자기 스승을 은30냥에 팔아먹고 불안과 근심이 생기니까
하나님 앞으로 찾아오지 않고 괴로워 하다가
돈을 성소에 던져버리고 스스로 목 매달아
자살해 버렸습니다.(마 27:5)
근심의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든지 세상 근심은 결코 유익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영혼도 마음도 육체도
파괴하고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세상 근심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2) 그러면 세상 근심의 출처는 어디인가요?
(1) 믿음을 떠난 환경에서 옵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근심의 사슬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산골의 한 소년이 산에서
독수리 새끼 한 마리를 잡아왔습니다.
철사로 다리를 꽁꽁 묶어 먹이를 주면서
마당에서 키웠습니다.
독수리가 성장하니 날아가겠다고
수없이 날개 짓을 하며 퍼덕거렸습니다.
그때마다 철사에 묶인 다리에서 피가 났습니다.
어느 날 독수리의 다리를 묶고 있던
철사가 풀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날아가지 않고 얌전히 날개를 접고
마당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먹이를 주워 먹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날 수 없어. 나는 묶여 있잖아.'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리에 묶인 것이 풀어졌어도
날아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의 조건과 환경만 바라볼 때
생각이 환경에 갇혀서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신앙은 환경을 넘어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비상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끝이라고 할 때 신앙은 시작입니다.
의사는 끝이라고 할 때도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존 칼빈은 신앙은 문제 건너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 또한 세상 근심은 잘못 살았을 때 찾아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숨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잘못 살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떳떳하게 살지 않을 때
세상 근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가인은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4하)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불안과 근심과 두려움에 떠는 모습입니다.
모든 게 적으로 보이고
축복의 땅이 저주의 땅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하루를 지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
마음에 세상 근심이 있다면
근심하는 원인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평안한 마음을 회복하도록
주님의 보혈로 영혼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세상 근심의 사슬에서
완전히 벗어나시길 축복합니다.
2. 성도가 해야 할 유익한 근심이 있습니다.(10절 )
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갈망하는 근심입니다.
당장 손해를 보면서도 믿음으로 선택하기 위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거룩한 근심입니다.
잘못 살아 하나님 영광 가리고
교회를 욕되게 하지는 않았나 하는 근심입니다.
(1) 잘못 살았을 때 애통하며 회개하는 마음이
거룩한 근심입니다.
잘못 살았을 때 괴로워하면서
거룩한 탄식을 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
다윗이 시 51편에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나단의 책망을 들은 후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침상이 젖도록 눈물로 회개하면서
밤이 새도록 새 영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근심이요, 유익한 근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습니다.
베드로도 빌라도 법정에서 주님을 부인하고
돌아서 후회하면서 통곡을 했습니다.(마 26:76)
이런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근심이요, 유익한 근심입니다.
(2) 또한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거룩한 근심입니다.
정직한 자가 하나님과 축복의 관계를 맺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은 항상 마음이 평안합니다.
정직한 나라가 건강한 나라입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형 정신병의 원인이
거짓을 감추고 있는 자책감과 불안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직한 사람은 항상 평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은 늘 불안합니다.
언제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당신이 늘 정직한 마음으로 진실을 말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해 내려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언제나 같은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을 말하면 늘 기억해 놓으려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합니다.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살면 근심이 줄어듭니다.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정직하게 살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3. 거룩한 근심의 결과를 보세요.(10-11절)
1) 거룩한 근심은 후회가 없습니다.(10절)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갈망하는 근심이기에 열매가 좋은 것입니다.
후회할 것이 없는 생명에 이르는 근심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