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 갈 5:16-23
제목 : 성령을 좇아 사세요
김경열 목사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에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This I say then, Walk in the Spirit,
and ye shall not fulfill the lust of the flesh.(Gal 5:16)]
18세기 초 영국은
말할 수 없는 도덕적 부패와 타락, 경제 문제로
극도의 사회적 혼란과 신앙 붕괴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성령 충만한 지도자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바로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레 목사입니다.
웨슬레가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할 때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집을 떠나 거리를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하며
술집에 들어 앉아 있던 사람들이
털고 일어나 술집들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다시 꿈을 안고 일터로 나갔습니다.
정신과 영혼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의 마음에 용기와 희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적인 부흥 운동은 심령뿐만 아니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고 가정을 건강하게 만들고
사회와 국가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한 지도자의 영향력은
한 시대의 민족을 변화시켰고
침체된 영성에 대 각성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성도의 삶은 날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마음이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주변에 보면 신앙 생활을 힘들어하며
주님의 일 하는 데에 사명감으로가 아닌
노동하듯 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믿음의 사람들은
주의 일을 할 때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임했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지만 승리했습니다.
내 힘으로 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재능이나 경험이나 지성보다
성령의 능력을 더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바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 3:34에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주님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일하셨거늘
어찌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없이 무언가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일에 대한 비전과 열정,
능력을 갖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세상에는 여러 갈래 길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순간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많이 있지요.
이럴 때 바른 선택이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합니다.
오늘 말씀에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두 갈래 길이 나옵니다.
하나는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길입니다.
무엇을 좇아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법대를 졸업한 두 젊은이가 어느 날 술집을 가다가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한 젊은이는
우리가 그동안 공부한다는 핑계로 교회를 못 갔는데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한 친구는 우리 같은 젊은이들에게
종교란 마약과 같은 거야, 술집으로 그냥 가자.
두 사람은 끝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교회당 앞에서 한 사람은 교회로
한 사람은 술집으로 갔습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술집으로 향했던 친구는
사람을 잘못 만나 마약 중독자가 되었고
중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습니다.
예배당을 선택한 친구는 미국의 22대와 24대
대통령에 당선된 클리브랜드였습니다.
대통령 취임 연설을 하는 모습을 TV로 보던 친구는
“백악관과 교도소, 저 대통령의 자리와 사형수의 자리는,
20년 전 교회당 앞에서 짧은 선택의 문제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저 친구는 하나님께로 갔고
나는 술집을 선택한 결과라고 하면서
피를 토하듯 아픈 가슴을 쓸어 내렸답니다.
그렇습니다. 선택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승리하는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성령을 좇아 살아갈 때에
영적 생활이 승리하게 됩니다.(16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했습니다.
1) 육체의 소욕이란 무엇일까요?
타락한 사람들의 부패하고 악한 심성을
육체의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가로막고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장애물들입니다.
오늘 본문 19-21절에 보면
육체의 소욕을 15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소욕들은 한 가지도
우리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2) 육체의 소욕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육체의 소욕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 막습니다.
신앙을 파괴하고 틈을 타는
사탄의 통로가 됩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행복이 없고
평안이 없고 안식이 없습니다.
정신과 영혼과 삶을 부패하고
파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
이런 육체의 소욕을 마음에서 버리라고 합니다.
버릴 때에 평안과 안식과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마치 쓰레기통을 비워 버리듯
우리 마음 안에서 육체의 소욕들을 버릴 때
마음에 성령이 내주하시게 됩니다.
문제는 내 힘과 노력,
내 의지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담배가 내 마음대로 쉽게 끊어지나요?
악습관이 쉽게 끊어지나요?
신앙 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육체의 소욕들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갈 때에
인격을 파괴하고 마음을 부패하게 만드는
육체의 소욕들을 이기는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성령을 좇아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에 성령께서 힘을 주시고
안식과 평안과 은혜로 인도해 주십니다.
둘째, 성령을 좇아 살아갈 때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22-23절)
성령의 열매를 9가지로 소개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열매들입니다.
성령 안에 살 때 이런 열매들이 풍성하게 맺어집니다.
1) 신앙은 열매가 좋아야 합니다.
아무리 나무가 좋다 말해도
열매가 좋지 아니하면 그 나무는
좋은 나무라고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의 질을 알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돼지에게 양의 가죽을 씌웠다고 양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돼지가 좋아하는
시궁창에 가서 뒹굴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본질이 변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심령이 변화면 생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날 왜 많은 신앙의 문제들이 생길까요?
신앙생활이 생활신앙으로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활신앙이란 신앙이 생활화된다는 말입니다.
생활 속에서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해도 생활에 변화가 없다면
좋은 신앙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주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시면
자신도 모르게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 영혼 속에 주님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잘났든 못났든 부모를 닮는 것은
부모의 DNA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자녀가 이웃집 아저씨를 닮았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DNA를 검사해야 합니다.
신앙의 변화는 내적인 변화입니다.
근심하던 사람이 기쁨을 얻고
어두웠던 마음이 빛을 찾아야 합니다.
낙심하던 사람이 용기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던 마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긍휼의 마음으로
성령님이 바꿔주셔야 합니다.
억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됩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모두가 성령이 주시는 열매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 때문에 사업이 다 무너졌습니다.
너무 분해서 칼을 품고 매일같이 죽이려고
그 집 앞에서 잠복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일 저녁에
교회 십자가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 불빛을 보는 순간, 어렸을 때에
교회학교 다니던 생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예배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날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품었던 칼을 빼어 놓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내 마음은 용서가 안 되는데
하나님이 내게 용서할 마음을 주셨군요.
나는 도저히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하나님이 내 마음에 용서할 마음을 주셨다고
울면서 고백했습니다.
용서의 마음도 성령이 주셔야 됩니다.
사랑할 마음도 성령이 주셔야 하고
은혜의 마음도 성령이 주셔야 하고
좋은 열매도 성령이 맺게 해주셔야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세요.
성령을 좇아 살아가세요.
성령은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절을 지었던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의
간증입니다.(79세 약사, 소망교회)
그는 화장품 업계에 화제를 모은 사람인데
젊은 날의 그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성대 약학과를 졸업한 그는 종로 피보약국을 경영하면서 장안의 유명인이 됐습니다.
피부를 보호한다는 뜻의 피보약국은
예뻐지기 원하는 여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날로 번창했습니다.
약을 팔아 번 돈으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도봉산 기슭에 절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1천여 명의 신도가 모여 들었고
그는 신도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피보약국이 유명해지면서 전국 약사들이 그를 방문했고
직접 조제해 팔고 있는 약을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그 역시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괜찮겠다 싶어 전국 60군데에 약을 조달했습니다.
그것이 무허가 제약으로 보건 범죄에 단속되었습니다.
약사법에 저촉된 것입니다.
‘잘나가던 약사’에서 ‘도망자’로 변한 그는
전국의 절을 찾아다니며 도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6개월을 피해 다니자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간 곳이 양산 통도사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었고
숙소 텅 빈 방 안에는 빛바랜 신문 한 장만이
그를 반겼습니다.
이 신문은 다름 아닌 6개월 전
자신의 기사가 실린 것이었는데
갑자기 울분이 솟구쳐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고 한심했답니다.
신문을 움켜쥔 채 울고 또 울었습니다.
갑자기 입술이 열리며 하나의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 나왔습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했습니다.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러보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웠습니다.
왜 하필 그곳을 찾았고 그 방에
그 기사가 실린 신문이 놓여 있었을까요?
그날 그는 알 수 없는 기도 끝에
하나님을 영접하는 행운을 안게 됐답니다.
절에서 내려와 자수를 한 후
그의 삶은 변해도 너무 변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을 때 그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기초 전문 화장품 회사인
‘참존’을 만들었습니다.
기도 중에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된 사업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화장품 업계에
김 회장의 신화가 생긴 것입니다.
(샘플만 써 봐도 알아요)
김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답니다.
바로 십일조의 역사라고 합니다.
사업가가 십일조를 한다고 하면 모두
정신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먼저 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그에게 놀라운 간증이 됐습니다.
정확한 십일조 후에는 신기하게도
매번 두 배의 경제적 축복이 쏟아졌습니다.
김 회장은 만나는 사람마다
‘십일조 축복론’을 강의 한답니다.
또 아무리 바빠도 새벽기도에 간답니다.
그것은 시간의 십일조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경험한 것은
부자가 되길 원하시면 하늘나라에 저금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아파트 500만원 할 때 8천 3백만원의 벌금은
5년 만에 다 갚아졌습니다.
기업가로도 최선을 다하는 그는 전경련에서 주는
글로벌 경영인상을 수상했고
정직하고 청렴한 경영인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기도의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김 회장은 1년 2개월째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며
신앙을 키워가고 있다고 합니다.
([국민일보] 진정한 신앙은 열매로 나타납니다.)
끝으로,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까요?(24절)
1) 정과 욕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사람에겐 세 종류의 눈이 있습니다.
사물을 보는 육안이 있고,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지안이 있고,
그 다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안이 있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다윗이 시편에 하나님이여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한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면서 다시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땅만 보던 눈이 하늘을 보게 되었고,
자기를 자랑하던 삶이 주님을 자랑하게 되었고
육의 것만 추구하던 삶이 영의 것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이름이 영안교회입니다.
신령한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자는 뜻입니다.
다니엘이 마지막 때에 되어
벌어질 사건을 깨닫기 위해
21일 금식기도를 하던 중 사명에 대한
확실한 터닝 포인트를 주셨습니다.
놀라운 영적 경험입니다.
이 시대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안약을 사서 발라 신앙의 눈으로 고쳐야 할 때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왜 그리 근심이 많습니까?
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안을 뜨고 주님을 바라보세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할 때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병든 자가 일어났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옥문이 열렸고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한국 교회가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은
기도 줄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밤마다 철야합니다. 24시간
사슬을 이어가면서 기도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럽 교회와 달리
한국 교회가 살아있는 비결입니다.
기도하면 지혜가 생기고 영감이 떠오릅니다.
기도하면 새 힘이 생기고
마음에 평안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령을 좇아 살아가십시오.
성령님이 도와주시면 됩니다.
성령은 육의 못된 성질을 고쳐주시고
좋은 열매를 맺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는 성령을 통해서
신앙생활이 생활신앙으로 바꿔지길
축복합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드림
(917-963-8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