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오늘날까지 그들이 경험한/본 바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heart), 볼 수 있는 눈(eyes), 들을 수 있는 귀(ears)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 아니하셨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본문: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큰 시험(증거)과 이적과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heart)과 보는 눈(eyes)과 듣는 귀(ears)는 오늘날(=가나안 입성 직전)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명기 29:2∼4)
구약 이스라엘 온 백성은 애굽에서부터 여러 가지 놀라운 증거(이적과 기사)를 보고 경험하였다. 즉 바로 왕과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셨던 여호와의 모든 일(증거, 이적, 기사)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열 가지 재앙, 홍해 사건,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일, 광야 40년의 생존 등등을 경험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만으로는 아직도 뭔가 부족하더라, 눈과 귀가 열리지 않더라, 심지어 마음(심령=영[롬 11:8])이 이해하지/깨닫지 못하였다고 밝힙니다. 도대체 뭐가 부족하기에 그럴까요?
1. 가나안 입성 직전까지 이런 놀라운 경험에도 불구하고(애굽에서부터 가나안 입성까지의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이 백성들의 마음은 아직 이해하지/깨닫지 못하며 눈과 귀가 열리고 뜨이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전능하신 여호와의 능력(증거와 이적과 기사)을 아직도 충분하게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일까요?
2. 이런 현상은 주전 8세기 선지자 이사야에게서도 동일하게 언급됩니다. 이때 북 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했고 남 왕국 유다도 약 150년 정도는 더 생존하였을 때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사 6:9∼10) 이제 이스라엘 자손은 영적으로/신앙적으로 완전히 무감각의 상황에 처해진/떨어진 느낌을 받습니다.
3. 그런데 나중에 사도 바울(주후 1세기)께서도 이 표현을 다시금 끄집어내서 그 원인이 무엇 때문이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8) 결국에는 그들(이스라엘)의 밥상(잔칫상)이, 그들이 당연하게 먹을 것이라고 여겼던 밥상이, 그들에게 (오히려) 올무와 덫과 넘어지게 하는 돌부리가 되었고 그들의 눈이 흐려 보지 못하였고 그들의 등(허리)은 항상 굽게/떨리게 되었다고 밝힙니다(로마서 11:9).
4. 구약성경의 그 오랜 역사의 핵심은 바로 그리스도의 오심이었지만, 이스라엘 후손들은 정작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놓치고 말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밝혀줍니다. “그들(이스라엘)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 수건이 그(이스라엘 자손의)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4∼17) 형제자매 여러분, 대림절을 지나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으로 깨닫고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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