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출애굽기 16장 1-12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2022.06.18 07:11

 

제목 : 환경을 뛰어 넘어 믿음의 이성을 발휘하라 

본문 : 출애굽기 16:1-12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로 가득찬 애굽에서 살아갑니다. 어디를 가든 처음엔 낯설고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갑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애굽 생활도 마치 고향처럼 익숙해집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셔서 번성했습니다. 애굽 왕이 볼때 히브리 민족의 번성은 두려움을 갖게 했고, 정책을 바꿔 히브리 민족을 노예로 전략시켜 버렸습니다. 

 

처음 팬더믹 상황을 접했을때  어리둥절 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바깥 출입은 자재해야 했고, 사람 만나는 일이 거의 금지 되었습니다. 만남 자체가 허락되지 않다 보니까 답답해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처음엔 그렇게 낯설고 어색한 팬더믹 상황들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채 몸에 배어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매 모세를 통해서 노예로 살던 히브리 민족은 출애굽을 합니다. 

하나님이 이들의 부르짖음과 고통의 호소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히브리 민족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광야로 탈출했다는 것은 바로의 지배력이 미치는 곳 밖으로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접한 새로운 환경은 광야 였습니다.

광야는 애굽의 바로처럼 폭력과 강한 억압에 의해 살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광야는 애굽처럼 필요한 것을 금방 얻을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광야는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곳입니다. 

이제는 누가 자신들을 이끌고 갑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이라는 곳으로 이주하기 위해 광야를 거치게 하십니다.

 

열악한 환경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는 생각없는 말들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으면 아무 생각없이 말을 합니다. 백성들이 몸은 애굽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생각과 머리는 여전히 애굽에 머물러 있습니다. 몸은 애굽 밖인데 머리는 애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이런 기대감은 없습니다. 

지금 당장 굶주림이 앞으로 들어갈 약속의 땅에 대한 기대감은 뒷전 입니다.  자신들의 욕구가 해결되야 한다는 원망이, 앞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영적 희망은 안중에 없습니다. 

사람은 본능 충동 욕망에 좌지우지 합니다.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욕망을 이겨내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광야에서 지금 좀 불편하다고 어떤 태도를 보이나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은 과거를 먼저 기억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이 하나님께 노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건만.. 광야의 삶이 좀 힘들다고 다시 애굽으로 보내 달라고 투정을 부립니다.

 

믿음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단순히 욕망에 사로잡힌 말만 쏟아부을 뿐입니다 .지금의 열악한 환경에 눈이 멀다 보니까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그들의 불평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거를 왜곡하기도 했습니다. 언제 이들이 과거에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고 그랬던 적이 있었을까요.. 과거의 시간이이라고해서 함부로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자신들의 불평을 합리화 시키고 있는 겁니다.

 

요즘 사람들도 불리하다 싶으면 “마치 누가 나의 과거를 알랴” 는 식으로 과거를 운운하면서 거짓말도 하고, 온갖 것들로 포장을 해 버리곤 합니다.

 

우선 먼저 이들은 왜 원망이 끊이지 않을까? 왜 자꾸 억지 아닌 생떼를 부리는 걸까요? 그 이유가 뭘까요? 생각해 보셨나요. 환경이 나빠서 .. 사실 한편으로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노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먹는 것, 잠 자는 것이 불편하다고 불만이 높습니다 .

 

둘째, 습관적으로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반응

광야 내러티브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증거들을 찾아 본다면 .. 백성들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부을 때에 단칼에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원망의 소리를 들으십니다.사람도 한 두번 불평하면 어느 정도 받아 줍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게 불평하면 수용은 커녕 화가 치밀게 됩니다. 그 때는 국물도 없습니다. 

 

모세가 원망하는 자들을 향해 뭐라고 말씀하고 있나요?

9절에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하나님이 습관적으로 원망과 불평을 쏟아붓는 백성들을 향해 보이신 반응은 분노가 아니라 자상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들을 향해 “내가 불과 유황을 이 투덜 거리는 자들에게 비같이 내려 그들을 사르리라” 고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약 200만명 정도가 불평을 내뱉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만 해도 귀가 아플 것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이 백성들의 끊임없는 원망을 어떻게 반응하고 계시나요..

7,8,9, 12절에 연거푸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고 말씀 하십니다. 무슨 의미 입니까? “하나님은 약자와 소통하시는 분입니다” 라는 사실 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원망의 소리를 들으실 것입니다. 그 분은 당신의 원망꺼리들을 들으시고 소통하실 것입니다. 그 분에게 토해내면 하나님이 정답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반응을 볼까요..

4절 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신속하고 충분하며 지속적인 공급을 약속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셨다는 증거 입니다. 라고 8절에 말씀 합니다. 듣지 않으시면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동문서답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백성들의 원망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벼룩의 간처럼 소량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광야는 물이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환경에 눈이 멀면 엄청난 것들을 보지 못합니다.

 

12절에 고기를 주어 배불리 먹게 하시리라

 

왜 하나님은 뻔히 알면서도 원망들을 들으시고 야단치시기 보다는 기다려 주고 인내하시는 걸까요?

백성들로 하여금 변화를 기다리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로 하여금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간사한 모습을 보면서도 참아내시면서 회개와 새로운 자아로 나아가기를 기대 하십니다 .

 

광야는 침묵을 강요하는 곳이 아닙니다 .

하나님을 향해 너의 답답한 심정을 소리지르라 는 겁니다 

광야는 숨이 꽉꽉 막힐 정도로 입을 다물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너희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있으면 외쳐라. 내가 들을테니까.. 이런 곳이 바로 하나님이 이끄는 광야의 현장입니다.

 

이민 생활 하면서 푸념 거리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푸념의 보따리들을 풀어 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의 원망을 들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수고 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삶의 여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직접 나의 입을 통해 듣고 싶어 하십니다. 

 

 팬더믹 상황이라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향해 소리 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원망의 소리를 들으시고 해답을 주십니다. 

 

그 해답이 4절입니다.  .. 하나님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해답은 주셨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수고하는 믿음을 요구 하십니다. 

믿음의 요구가 뭔가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신 미션입니다.

하나님은 차려 주시고 밥까지 먹여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준비해 놓으시면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실천 해야 합니다.

 

소위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의 이성입니다 .

5절을 볼까요.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것은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매일 한 오멜씩 거두게 하셨고, 육일째는 갑절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

 

매일 그날의 몫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냥 백성들로 하여금 입만 벌리면 그저 먹여 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면 그 날의 몫에 필요한 만큼 직접 나가서 노동을 통해서 양식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소위 이성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성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본능·충동·욕망 등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도덕적 법칙을 만들어 그것에 따르도록 의지를 규정하는 능력” 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살아가면서 이성이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모두들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은 자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속에서 영향을 받거나 줍니다. 하지만 믿음의 이성이란 나의 이성을 초월하게 하는 밑거름이 바로 믿음에 근거 합니다. 믿음의 이성이란 자신의 범주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우선시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성적인 판단이 과오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이성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사고 입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는 자세를 갖고 감정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성적인 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한 오멜이 아니라 몇 오멜씩 한 번에 가져 갑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때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

그런데 자신의 이성적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금방 탄로가 납니다. 부패하고 썩어 버리는 겁니다 .

 

믿음의 이성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사는 사람입니다. 철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합니다. 이성적인 생각을 포기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신뢰에 더 집중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순종 밖에 없습니다 . 내 생각이 하나님의 크신 생각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으면 은혜로 감당하는 겁니다. 

 

5절 말씀처럼 매일 한 오멜씩, 그리고 육일째는 갑절로 거두라. 주님 말씀 하시면 그대로 순수한 마음을 갖고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우리를 가나안을 향해 이끌고 가시는 인도자이십니다. 

믿음의 이성이 활발해 지면 성도의 삶은 결코 포기나 좌절을 찾기 어렵습니다 .

 

마지막,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라

12절을 보라…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름이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십니다 .광야에서 벌어지는 수 많은 일들을 함께 겪으면서 풀어 가십니다 .실수 연발이지만 연단시키시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가나안을 향해 나아갑니다. 

여기 원망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풍족함입니다. 고기와 떡을 통한 질리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하라 하십니다. 

투덜 되는 백성들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임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 합니다. 

사실 원망과 불평이 애굽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불평은 곧장 죽음과도 같습니다. 눈꼽만한 불평은 단칼에 목이 잘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원망은 커녕 쥐 죽은듯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광야에서는 엄청난 원망과 불평을 퍼부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십니다.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삶의 애환을 들으려고 하십니다. 

 

나 여호와니라는 말에 대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분은 살아계셔서 나의 아픔과 슬픔의 소리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를 인도하는 나는 애굽 바로왕과는 같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조그만한 불평 조차 입 다물고 사는 답답한 삶이 아니라 얼마든지 말하라. 내가 듣겠다는 하나님의 크신 마음을 보여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고의 태도는 바로 경외 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 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주신 친밀함 입니다. 자상함입니다. 우리의 처지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면서 인간을 자비로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동행하며 사는 겁니다 .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주님을 경외하면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겁니다 

 

사람은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이성을 갖고 얼마든지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

 

팬더믹 상황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습니다. 

여기 저기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갑니다. 전염이 되고 병들고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우리가 지녀야 할 영적 태도는 뭘까요?

 

강영안 교수는 철학자의 신학수업 이라는 책에서 혼돈스런 팬더믹 상황에서 영적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강 교수는 성경의 지혜서로 잘 알려져 있는 코헬렛(전도서, 전도자의 히브리어)을 통해 우리 삶에 두 가지 모티프가 교차함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벨 하발림’, 즉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의식하면서 사는 방식(메멘토 모리)과 ‘마타트 엘로힘’,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것 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두 모티프가 교차하는 삶의 음악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잠 12:13)을 강조합니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이성에 의한 생각은 인간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이 곤궁에 처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때 입니다.

술맡은 관원장이 내가 복직되면 너 빼내 줄께.. 요셉은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만 의지 합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다시금 하나님만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기도로 간구할 때에 요셉은 바로왕으로 하여금 부름을 받게 됩니다. 

또 하나는 자아가 구멍이 뚫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자아가 구멍이 뚫렸다는 말은 소통이 된다는 겁니다. 자아가 끊임없이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환경을 극복해 가는 겁니다. 그럴려면 자기 밖에 모르는 구멍이 막힌 자아는 소통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마음이 열려지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자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리는 믿음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때 입니다.

 

그리고 일상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찾아 보기 힘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감사 “ 입니다. 노예 생활에서 극적인 탈출로 해방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면 먼저 마음속에서 고백해야 할 게 감사가 아닌가요.. 그런데 감사는 커녕. 불평과 원망의  벽돌을 쌓기 바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선물을 감사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겁니다. 

일상을 건강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역할을 보세요. 기가 막힌 플랜을 가지고 백성들을 먹이십니다. 영적 고향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도달하게 하십니다. 

 

“일상은 코헬렛이 반복해서 말하듯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먹고 마시고 일하는 가운데 즐거워함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감사밖에 없다.”

 

손흥민 에세이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이란 에세이가 출간 되었습니다. 아버지 손웅정씨는 손흥민에게 축구장 밖에도 늘 축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만 성도가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이성이 필요합니다.

 

팬더믹 상황은 다양한 선택속에서 하나의 길을 결정해야 합니다. 

팬더믹 상황에 머물러 있으면 삶은 늘 원망뿐입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야 할 길이라 한다면 믿음의 이성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인생에는 모퉁이와 우회로와 갈림이 있습니다. 아마 가장 곤혹스러운 길은 교차로일 것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4개의 도로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제한된 지식을 가진 우리는 망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바 이지만 잘못된 결정은 항상 뒤늦게 찾아 옵니다. 

후회 없는 일상의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확신 입니다. 의심없는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 때론 육신의 눈으로 볼때는 위험해 보이거나 고난이 뻔히 보이는 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 길이  고난의 길이고 좁은 길이라 할지라도 즐겁게 선택하고 나아가는 겁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한다 할지라도 철저한 믿음의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겁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늘 형통 이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팬더믹 상황은 광야의 삶입니다.새로운 환경속에서 팬더믹 전에 사고 방식을 버리는 겁니다 .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도는 지금까지 익숙해져 있던 가치나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서 추구하시는 가치에 집중하라는 의미 입니다 . 그리스도가 추구하는 내용을 내 삶에 습관화 하는 겁니다. 불편함에서 익숙함으로 만들어 가라는 겁니다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변화속에 믿음의 이성을 가지고 대처해 가야 합니다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본질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다양한 환경을 믿음의 이성을 가지고 헤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 때에 하나님은 일을 멈추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광야를 지나면서 뿜어되는 수 많은 원망들.. 바로 우리들의 원망들은 아닌지요..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원망의 옷을 벗기시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어떤 삶의 환경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믿음의 이성을 발휘하며 사는

한 주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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