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요한계시록 3장 1-6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2022.06.11 06:38

 

제목 : 죽어 가는 신앙

본문 : 계 3:1-6

 

살면서 진단과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지..내 건강 상태는 양호 한지.. 내 정서나 감정 상태는 비뚤어져 있지는 않는지...믿음이 병들지 않았는지..하나님, 저 잘 살고 있나요. 늘 수시로 점검하면서 살면 좋습니다. 난 아무 탈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동안 나름대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진단과 평가를 통해서 훨씬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일곱교회가 등장 합니다 .

그 중에 한 교회가 사데 교회 입니다. 주님께서 사데 교회를 진단한 내용을 보면.. 먼저 네 행위를 아노니…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네 행위를 아노니.. 지금까지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깨닫게 합니다. 네 행위를 안다 는 말씀에 우선 나의 삶을 속일 수 없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우리는 믿음만 강조 했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데 교회를 향해서 행위에 대해서 말씀 하십니다. 믿음만 말했지.. 믿음에 걸맞는 행위는 없었다는 점 입니다. 

 

성경도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행함으로써 네 믿음을 보이라 고 했습니다. 

사데 교회를 향해서 죽은 교회 죽은 신앙이라고 지적한 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사데 교회는 죽은 신앙이 되었을까요?

1절 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라고 말씀 합니다.

 

여기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 의 역할 입니다. 누구 입니까? 살아계신 성령님 이십니다.성령님이 우리 삶에 늘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사데 교회를 진단하시고 하시는 말씀 입니다. 

 

이 진단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진단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보시고 진단하신 영적 평가서 입니다.

사데 교회는 어떻게 살아왔다는 말입니까?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살아왔습니다 . 하나님과 무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한 때는 성령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적인 삶에 도취되어 삽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점검이 없습니다. 특별히 자기 부인이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자기 부인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순종할 때에 자기 부인은 가능 합니다. 

 

죽어 가는 신앙은 성령과 멀어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자연히 내가 나를 판단 합니다. 뭐. 이정도 면 됐지, 남들과 비교해 보아도 뭐 뒤질 것 없지뭐.. 내가 나를 그저 좋게만 평가해 버리는 겁니다. 

 

죽은 교회, 죽어 가는 교회, 죽어 가는 신앙 은 어떤 상태를 의미 하는 걸까요?

2절 중반에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말씀 합니다. 무슨의 미 인가요?한 마디로 하나님과 연결된 행위가 없다는 말입니다. 선택을 하는 것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전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겁니다.내 뜻으로 해피한 삶을 만들어 가겠다는 생각 입니다. 나의 뜻을 통해서 삶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섞인 삶입니다. 말은 그리스도를 운운하는 데 행위를 보면 전혀 하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길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어떤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오직 한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탈하지 않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게 어둠과 두렵게 하는 현실 속에서 방향을 정하는 기준입니다.

 

죽은 신앙은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신앙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죽어 있는 신앙 상태는 순종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신앙은 죽을 힘을 다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목숨 걸고 순종을 즐거워 합니다. 

 

살아 있는 신앙은 순종이 민첩 합니다. 귀가 발달되어 듣는 대로 순종을 즐거워 합니다. 

믿음의 장소성을 즐거워 합니다 .하지만 죽은 신앙 상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반응이 없습니다. 불순종 합니다. 순종하지 않는 상태는 듣는 마음이 없다는 점입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경험이나 자기 뜻을 추구합니다. 자기 생각속에 치우쳐 살다 보니까 영적 긴장감도 사라졌습니다. 

 

보통 죽어 가는 상태라 함은 식어가는 상태 입니다. 

열정이나 의욕이 사라진 상태 입니다. 뭘 하겠다는 의지나 목표도 없습니다. 자신의 일은 바쁜데 주님과 연관된 영적 일에는 너무나 게으름을 피웁니다. 

 

죽어 가는 상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펄떡 펄떡 뜁니다. 죽어 가는 고기나 죽은 고기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전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도는 상태 입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푯대를 향해서 나아갑니다. 목표점을 향해서 희생과 도전을 즐거워 합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신앙은 아예 꿈이 없습니다. 그저 굳어진 상태 속에서 말만 살아 있습니다 .

 

죽어가는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지 못하고 끊겨진 상태 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지 못하니까 동행이 어렵습니다. 서로 교통해야 하는 데 불통이 되어 하나님 과 틈을 두고 살아갑니다. 

 

죽은 교회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결정적인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에서 인류를 구속하셨다는 믿음이 약해진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의심합니다. 더 나아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을 믿지 못합니다. 부활의 능력을 믿지 못하니까 조그만한 일 앞에서도 믿음 없는 죽은 신앙처럼 삽니다. 

 

오늘날 교회도 2년간의 팬더믹으로 인해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코로나 라는 바이러스에 몸과 마음이 온통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목숨 걸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겠다는 강한 정신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나 이탈하여 살아 갑니다. 육신의 몸 살리겠다고 영적 상태를 뒷전에 두고 삽니다. 

 

톰 라이너(Thom Rainer)는 ‘죽어가는 교회의 부검’(Autopsy of a Deceased Church)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죽어가는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교회 영안실로 향하는 여행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서 매주 출석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음의 증상이 만연한 교회가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고 했습니다.

 

둘째, 죽어 있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데 교회를 향해 영적 반전을 위한 권면이 뭔가요?

첫째, 깨어 있으라 입니다 .

2절에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일깨어 다시 생각을 가다듬으라.. 죽어 있는 신앙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면 희망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입니다. 지금 사는 방식에서 돌아서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깨닫지 못하고 그저 지금처럼 산다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르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고 경고를 주십니다 .

 

그러니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믿음으로 네 행위를 보이라는 겁니다.

약 2:18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하나님은 사데 교회를 향해 돌아섬의 기회를 주면서 아주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4절 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메시지 버젼에는 “사데에는 여전히 예수를 따르는 이들 몇이 있다.그들은 세상의 길을 따라 쓰레기 더미에서 뒹굴지 않은 사람들이다.그들은 나와 더불어 행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사데 교회 안에 보이지 않지만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죄인의 눈에는 옳은 사람이 보일리가 없습니다.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 봅니다. 왜냐하면 자기 정당성을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주변엔 언제나 신앙에 근거하여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끊임없는 기도가 못된 짓 하고 사는 나를 위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이들 때문에 나에게도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나는 좀 힘들다고 좀 손해 본다고 하나님을 떠나는 일에 쉽게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몇 명 흰옷을 입은 자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고통을 겪더라도 하나님의 방식을 끝까지 존중하고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

 

엘리멜렉 가정이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훌쩍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 합니다 .

흉년이 들었을 당시에 엘리멜렉 가정의 경제적 상태는 어떠 했을까요?

룻 1:21에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고 나오미가 말합니다. 흉년이 들어 떠날 때에 엘리멜렉 가정은 풍족한 상태 였습니다 .  흉년이 들어 어려울때에 남을 돌아보는 행위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과 가정에만 몰입할 뿐입니다.

 

반면에 흉년이 들었지만 끝까지 베들레헴을 지켰던 무명의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부자였던 엘리멜렉 가정이 모압으로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들 또한 왜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들은 근 10년 동안 흉년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삶을 추구 합니다. 한 번도 해보 지 못했던 힘든 일들을 해 가면서 꿋꿋하게 견뎌내였던 가정들입니다. 이들이 흰 옷을 입고 하나님과 함께 흉년을 견뎌내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나오미 가정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인간적인 생각과 감정이 자신의 신앙의 길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안개처럼 희미하게 길이 보인다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길을 갑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람들은 선택해야 할 길목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동 합니다. 

 

하나님이 이들의 신앙을 합당한 자라고 평가 합니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란..결코 자기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이기는 자로 미래를 살아가라 

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로 미래를 살아가자.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고 사는 자 입니다. 불결하지 않는 자, 자기 욕망대로 살아가지 않는 자 입니다. 

 

죽은 신앙을 가진 자가 아니라 산 신앙을 갖고 살아가 는 자 입니다.

 

행함은 예수님처럼 행동하며 사는 삶이다.

선한 사마리아 인의 끝까지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사데 교회에도 임합니니다

비록 과거의 삶이 죽은 신앙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설 수 있는 은총을 허락 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늘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은혜의 기회를 주십니다 .믿음의 이성을 갖고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감사하고 감격하는 부분이 바로 “기회” 라는 단어 입니다 .하나님은 늘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아올 수 있도록 “시간” 이라는 기회를 제공해 주십니다.

 

시간을 주시는 기회를 통해서 과감한 전환을 이루는 겁니다 

 

죽은 신앙에서 살아있는 신앙으로 계속해서 탈바꿈해 가야 합니다 .

죽은 신앙으로 는 소망이 없습니다. 산 신앙으로 팬더믹 시대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변화의 시작은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는 겁니다 . 

십자가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닙니다. 좁은 길입니다. 신앙 여정에는 끊임없는 어려움과 고난이 따를 것입니다. 극복해야 할 역경이 있습니다. 참아내야 할 고통이 있습니다. 이겨내야 할 유혹이 있습니다. 과거를 털고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길로 걸어갈 때에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길로 걸어갈 때에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4절 중반에 “…그들이 나와 함께 걸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신다는 약속 입니다.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습니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요한은 말합니다. “이기는 자” 가 되자는 겁니다. 

이기는 자는 어떤 자 입니까? 5절에 말씀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제 우리의 삶은 “이기는 자”로 살아가는 겁니다 .아멘.

우리의 걸음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의 걸음 방향은 오직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입니다. 

내가 걸음의 방향을 정하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을 따라 날마다 걸어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주님에게 있어서 팬더믹은 십자가 입니다 .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못박히실때까지 아버지의 뜻대로 평생 멈추지 않고 걸으셨습니다 .

 

주님은 걸으면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하늘로 향하는 영생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

 

교회는 팬더믹으로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걸어가야 합니다 .일그러진 교회가 다시 얼굴을 확펴야 합니다. 교회가 외딴섬에 있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잘 걷기 위해서는 자기 부인이  녹슬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우리 삶이 갈등을 빚는 때에는 우리가 변해야 합니다. 자아가 하나님의 뜻과 반목할 때에 자아를 부인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 no 해야 합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한  걸음 걸이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사람을 살리기 위해 걸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걸음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그것이 상생의 길이요. 생명으로 가는 변화와 확신의 길입니다 .

 

예수님께서도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고 하셨습니다 .

 

유혹이 생길때마다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

눈에 보이는 불편함, 두려움, 에 우리의 걸음이 주춤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걷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걷는 사람들입니다 .

 

하나님의 뜻이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 사는 살아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경고성 메세지를 두 번이나 언급 하신 점에 대해서는 깊이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

3절에 도둑 같이 임하리니..5절에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라는 말씀은 지울 수 있다는 말씀 입니다 .

 

그렇습니다 .

사데 교회의 문제의 발단은 혼자 하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주님은 함께 걸어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혼돈과 의심케 하는 현실 속에서 정답을 찾아내는 방법은 주님이 말씀 하시는 대로 듣는 삶이 중요 합니다. 이기적인 나의 생각이 주님의 생각을 앞서게 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절대 순종 입니다. 절대 확신을 갖고 이기는 자의 정체성을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6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살아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하나님이 부드러운 속삭임에 민감한 마음으로 경청해야 합니다. 팬더믹 시대에 은말한 장소에서 하나님의 말슴을 듣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듣지 않으면 여전히 인간의 감정과 경험에 쏠리기 마련입니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실천하는 삶입니다. 

 

제대로 듣고 제대로 실천하는 살아있는 신앙인이 늘어나야 할 때 입니다.

눈과 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죽은 신앙인으로서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질 뿐 입니다. 

 

팬더믹은 우리를 더 두려움에서 움츠리게 할 것입니다. 

그럴수록 귀와 눈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함께 걸어가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팬더믹 상황에서 사데교회처럼 되어서는 안됩니다. 

믿음과 소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늘 기억하는 겁니다.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지금 여기서 일상의 삶을 누리고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기는 자로 삽시다. 주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며 삽시다

이런 미래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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