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사 53장 1-9절
제 목: 구속(救贖) 자의 모습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bruised for our iniquities : the chastisement of our peace was upon him; 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 (Isa53:5)
오늘은 종려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이번 주는 고난주간으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더욱 경건에 이르는 성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해보셨습니까?
사람들에게 무슨 모욕을 당해 보셨습니까?
어떤 수치와 멸시와 천대를 받아보셨습니까?
어떤 고통을 받거나, 모욕과 수치와 멸시, 천대를 받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이유 없이 당하는 고통은 더 아프고 괴롭습니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봅니다.
더구나 내가 당할 짓을 해서 당한다면 그래도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억울하게 당하면 더 참기가 힘든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약 700년 후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에 죽으심을 너무나도 진솔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고 기록하는 것처럼 증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무자비한 죄를 짓고 극형 당하는 것’ 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누가 "우리 아들! 오늘 사형 당합니다." 라고 한다면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가 멸망당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1:18)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들에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가는 최대의 보증서입니다.
예수 십자가가 믿어진다면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하는 보증서입니다
예수 십자가가 믿어진다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보증서입니다
천국에서 영생을 얻는다는 보증서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갈6:14)
사도 바울이 자신과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생명 내 놓고 전파한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었습니다.
기독교 진리요 핵심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기독교 진리의 진수(眞髓) 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일생 동안 외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교회가 지난 이 천년 동안 주의 종들, 선지자를 통해 전파하였던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었습니다.
부족한 종이 오늘 전하려고 하는 말씀도 예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평생! 사명 다하는 날까지 전하고 싶은 복음이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사도들과 그들의 뒤를 이은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전하려고 한 것은 자기들이 귀중하다고 생각한 것이나, 율법이나 선행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왜 바울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기조차 싫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자신과 모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님의 생애도, 그의 가르치심이 아닙니다.
살신성인으로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으로 살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죄 짖지 말고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복음의 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라, 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영원을 사모하는 종교적인 사람이 되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죽을 목숨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지 않는, 천국의 생명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죽어야할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철수라는 주일학교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본시 성격이 매우 명랑하고, 쾌활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커 갈수록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합니다. 외톨이로 놀기를 좋아합니다.
학교에 가는 것조차도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집에서는 책가방을 싸들고 학교에 간다고 거짓말하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습니다.
타일러 보고 때로는 달래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참다못한 어머니가 회초리를 들고서 사정없이 치면서 다그쳤습니다.
왜! 그러니? 도대체....
그제야 철수는 소리 내어 울면서, 왜 자신이 학교에 가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는지 이유를 밝혔습니다.
"학교에 가면 애들이 자꾸 놀리잖아요!“
너의 어머니 얼굴이 귀신얼굴과 같다고요.
저보고 귀신의 아들이래요. 하면서 엉엉 웁니다.
그러니 제가 무슨 재미로 학교에 가겠어요?
그제야 철수 엄마는 왜 자기의 얼굴이 그토록 흉하게 일그러졌는지 비로소 아들에게 그 까닭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얘야, 나도 이쁜이라고 불려 질 만큼 얼굴이 고운 사람이었단다. 그런데 네가 갓난아이 때 잠시 너를 재워두고서 집 밖으로 나갔다 왔는데
그 사이에 우리 집에서 큰 불이 나고 말았단다.
너무나도 불길이 거세어서 마을 사람들은 발만 둥둥 구르고 있었단다.
그런데 차마 나는 너를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다른 이들이 말렸지만 엄마가 그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 너를 안고 나왔단다.
주위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놀라워했지.
그런데 너를 품안에 안고 나오다가, 그만 화상을 입고서 얼굴이 이렇게 흉하게 일그러지고야 말았단다."
그 말을 들은 철수가 어머니의 품에 와락 안겼습니다.
그리고는 흐느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제가 다시는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철수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동네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는 소리쳤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엄마의 흉한 얼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화상을 입고 흉터가 생겼고, 나는 우리엄마 때문에 살아났단다.
철수는 그때부터 두 번 다시 엄마의 흉한 얼굴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성도여러분!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수 어머니는 철수를 구하기 위해 얼굴에 화상을 입었었습니다.
그러나 철수는 자기를 살리기 위해 화상 입은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부끄러워마세요.
세상 사람들에게 "나(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돌아 가셨다." 라고 자랑하시면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세요.
오늘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8세기 때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감화하심에 따라 믿음의 눈으로 예수 그리 스도를 너무나도 분명하고 선명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나를 대신해서 버림받으실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 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조차도 배척을 당하셨습니까?(사53:1-3)
예수님의 외모는 너무 초라하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연한 순 같이 나약해 보이셨습니다.
마른 땅에서 겨우 나온 줄기처럼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선 고운 모양도 없었고, 위풍당당한 풍채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저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수군거렸습니다.
무슨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겠느냐?" 라고 했습니다.(요1:43-46)
그들은 예수님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예수님을 그저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어떠한 멸시를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은 간고와 온갖 질고, 침 뱉음, 손바닥으로 뺨을 맞는, 옷을 다 벗기는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사람들의 외면과 멸시 속에 죄인 취급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가운데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은 사람들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또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요?
2.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사53:4-6)
1) 왜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조차도 앞을 다투어예수님을 희롱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셨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자신의 잘못으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고, 매를 맞으며 그것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질고와 슬픔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당하신 것입니다.
2)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습니까?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민란이 두려워, 예수님을 십자가의 못 박도록 판결했습니다.(마27:24)
그리하여 예수님은 모진 고문을 받고, 그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에 힘이 겨웠습니다.
쓰러지고, 또 쓰러지시고, 조금 가시다가 또 쓰러졌습니다.
간신히 구레네 시몬의 도움으로 골고다 언덕까지 왔습니다.
로마 병정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뉘었습니다.
예수님의 오른 손을 십자가의 위에 올려놓고, 대못으로 손바닥을 찔러 큰 쇠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피가 손바닥에서 솟아오릅니다.
망치소리가 탕! 탕! 골고다 산을 울렸습니다.
또한 로마 병정은 예수님의 왼손을 십자가위에 올려놓고 또 사정없이 내리칩니다.
대못은 예수님의 살과 뼈를 뚫고 깊이 들어갑니다.
또 두발도 포개어 못을 박았습니다.
손과 발에서 피가 물처럼 나옵니다.
예수님은 입술을 꽉 깨물고 몸을 비틀며 모진 고통을 참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못을 다 박은 후 로마 병정들이 십자가를 들어 올렸습니다.
십자가를 들어 올리자 예수님의 몸무게로 양손과 양발은 더욱 찢어 내립니다.
예수님은 이 고통 속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때 성소의 휘장이 찢겨졌습니다.
태양이 빛을 잃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져나가고, 하늘이 울고, 땅이 울고, 산천이 울고, 하늘의 천사들도 울고, 하나님도 울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운명하셨습니다.
왜 우리 예수님이 이렇게 이마에 가시 면류관과 손과 발에 굵은 못과, 허리에 날카로운 창에 찔리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의 몸과 마음이 상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징계를 받으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우리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습니까?
그것은 죄로 멍든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나음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대학 동창 두 젊은이가 졸업을 하고 세상으로 나섰습니다.
한 친구는 유명한 판사가 되었고, 다른 친구는 사업가가 되어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사업가가 된 친구는 증권에도 손을 대어 짭짤한 재미를 보았는데, 어느 날 그만 주식이 폭락하여 모든 재산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위치를 다시 회복하고자 많은 돈을 횡령하였는데, 그만 그 일이 발각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재판을 담당한 판사가 바로 대학시절 함께 공부했던 옛 친구였습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죄상을 인정하였고, 판사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법정 안은 온통 과거의 우정이 판사의 선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 에 대한 추측으로 술렁거렸습니다.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할 때, 장내에 방청객들이 숨을 죽이고 판결 내용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판결 내용은 법이 정한 가장 무거운 벌금형이었습니다.
그 친구 피고인은 아연질색을 하였습니다.
방청객들도 술렁였고, 너무나 과중하다고 한마디씩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실의에 빠진 피고인이 법정을 막 떠나려 하자, 판사인 옛 친구는 자신의 법복을 벗고 피고인에게 달려가 그를 얼싸안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자네 벌금을 다 지불하겠네."
그러고는 그 죄수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결국 친구의 벌금을 대신 지불함으로 인해, 판사는 심각한 재정적인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판사인 친구가 옛 친구의 벌금을 지불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 주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 흘림 없이는 우리에게 구원도 없고, 피 흘림 없이는 사함도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예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죄의 대가를 갚아 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김 집사님이 저한테 일억 원을 꿨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 이집사가 요즘 왜 무슨 걱정거리가 있느냐? 묻자 자초지종을 솔직히 다 이야기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이 집사님이, “김 집사님! 내가 대신 갚아 줄께!” 그리고 일억 원을 갚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또 김 집사님한테 가서 김 집사님 일억 원 갚으라고 그러면 여러분들은 저보고 무엇이라고 할까요?
“이 나쁜 도둑놈아~” 라고 말하실 것입니다.
김 집사님 대신, 이 집사님이 와서 (빚을) 갚아 줬는데, 어떻게 제가 또 김 집사님한테 가서 또 일억 원을 달라고 합니까?
마찬가지로 제가(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많이 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 죄를 갚아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한테 더 빚을 갚으라고 못 하실 겁니다.
왜! 일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예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우리의 죄의 값을 이미 예수님 십자가의 피로 대신, 다-- 갚아 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이 되셨습니까?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속죄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우리의 자유와 죄사함, 행복, 평화가 있는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삶이 저주에서 축복으로 심판에서 영생으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1:7)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고통 속에서도 침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 이사야 선지자는 고통가운데서도 침묵하시는 예수님을 무엇으로 비유했습니까?(사53: 7-9)
이사야 선지자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잠잠한 어린양’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불의한 법정에서와 헤롯의 궁궐에서도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셨습니다.
로마 군병의 채찍 속에서도 예수님은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침묵하셨습니다.
2) 왜 침묵하셨습니까?
마땅히 형벌 받을 우리의 받을 수치와 고난과 저주를 예수님은 인내하시면서 묵묵히 그 모든 고난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고통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침묵하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3) 9절 말씀은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아리마대 부자 요셉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청해서, 자기를 위해서 바위 속에 파놓은
새 무덤에 예수님을 고이 모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사야 선지자가 700-800년 전에 예언했던 그 말이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정확하게 예수님에게 그대로 성취된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우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뜨거운 보혈로, 우리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뻑 적셔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지금도 죄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십자가의 소리가 작아지고 있고 십자가의 색깔이 변색되어져 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갈6:14)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만이 우리의 능력이요,
우리의 자랑이며, 우리의 승리임을 깨닫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